[INTERVIEW] H2O “전성기? 아직 안 온지도 모르지”
[INTERVIEW] H2O “전성기? 아직 안 온지도 모르지”
“내가 말이야. 에이치투오(H2O)를 너무 좋아해서 쫓아다니면서 거의 매니저 역할을 할 정도였다니까. 그때 진짜 멋있었지. 여성 팬들도 정말 많았어.” 빅뱅 지드래곤의 단독콘서트 뒤풀이 겸 가진 한 술자리. 이제는 ‘레전드’급이 된 한 중견 언론인이 에이치투오에 대한 추억을 늘어놨다. “그런데 에이치투오가 아직도 활동을 하는구나. 여전히 쌩쌩하신가?”

그 물음에 엄지를 치켜들고 자신 있게 “물론입니다”라고 답했다. 에이치투오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은 작년 여름. 공연장에 들어서자 보컬 김준원이 날렵한 몸짓과 함께 ‘오늘 나는’을 노래하고 있었다. 쉰의 나이임에도 그는 여전히 섹시한 모습으로 리듬을 탔다. 데뷔 27년차인 노장 로커의 믿기지 않는 춤과 몸매를 보면서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를 떠올렸더란다. 공연이 끝나자 10세는 족히 많아 보이는 중년의 밴드 후배들이 김준원에게 절을 했다. 한 스무 살짜리 팬은 에이치투오의 1집 〈안개도시〉의 LP를 가져와 사인을 받았다. 그런 광경들이 국내 록계에서 대선배이자 현역인 에이치투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최근 9년 만에 새 앨범 〈유혹〉을 발표하고 기념공연(5월 31일 디딤홀)을 준비 중인 에이치투오의 김준원(보컬), 타미김(기타), 김영진(베이스), 장혁(드럼)을 장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Q. 에이치투오의 터줏대감인 김준원을 비롯해 시나위, 아시아나, 카리스마 등을 거친 김영진, 작은하늘의 장혁, 김종서 밴드 출신의 타미김은 국내 록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베테랑 뮤지션들이다. 첫 만남이 궁금하다.
김준원: 김영진과 처음 만난 것은 1987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집 〈안개도시〉로 활동할 때인데 난 밴드의 막내였다. 당시 멤버가 바뀌면서 김영진이 에이치투오에 들어올 뻔 했던 적이 있다. 이후 1989년에 김영진이 김도균, 임재범, 유상원과 함께 했던 아시아나가 라우드니스와 88체육관에서 같이 공연할 때 내가 후배들을 데려가서 스태프 일을 도와줬다. 라우드니스는 일본에서 데려온 인력이 거창한데 서라벌 레코드 소속이었던 아시아나는 딱히 스태프가 없는 거다. 후배들한테 아시아나가 국가대표처럼 공연하니 가서 도와주자고 했다.
김영진: 그때 〈프라이데이 애프터눈〉(헤비메탈 컴필레이션 앨범) 멤버들이 와서 테크니션을 해줬다. 김준원은 원래 임재범과 의형제와 같은 사이였고, 나랑은 그때부터 친해지기 시작했다.
김준원: 에이치투오 3집 〈오늘 나는〉에 ‘바쿨이란 카페에서’란 연주곡이 있는데 타미는 그 바쿨 주인장 동생의 친구였다. 고등학교 갓 졸업한 아이가 바쿨에 들락날락하더라. 그때는 기타 치는 줄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 김종서 밴드를 하고 있었다. 타미 말랐을 때 별명이 탐 크루즈였다.(웃음) 혁이는 에이치투오와 작은하늘이 조인트 공연 할 때 처음 만났는데 이후에는 타미와 함께 레코딩 세션을 많이 했다.

Q. 김영진과 타미김은 4집 〈Boiling Point〉(2004)부터 에이치투오에 본격적으로 함께 했다. 장혁은 이번 앨범부터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김준원: 1998년에 내가 뮤지컬 〈하드록카페〉 음악감독을 맡았을 때 김영진, 타미김에게 연주를 부탁하면서 뭉치기 시작했고, 2002~2003년경에 에이치투오 정식 멤버가 됐다. 사실 난 3집 멤버들인 기영이, 현준이, 민기, 그리고 원년멤버인 장화영까지 끌어들여 에이치투오를 재건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다들 에이치투오를 과거의 밴드로 생각하는 것 같더라. 하지만 난 계속 지켜내고 싶었다.
장혁: 김민기를 비롯해 신윤철, 손경호, 오태호, 박현준, 손무현 등과는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몰려다니면서 음악을 했던 친구 사이다. 자연스럽게 김민기의 뒤를 이어 에이치투오에 합류하게 됐다.

장혁(왼쪽), 김영진
장혁(왼쪽), 김영진
장혁(왼쪽), 김영진

Q. 재작년에 김준원이 솔로앨범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솔로 작업을 접고 에이치투오를 돌아오게 된 계기는?
김준원: 밴드가 싫어서 솔로를 하려던 게 아니다. 밴드 유지가 힘들어 나 혼자라도 어떻게든 음악을 계속 하기 위해 솔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로 주변 동료들에게 곡도 받고 앨범 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는 것 같아 답답했다. 나 혼자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두렵더라. 그 와중에 김영진이 최근 밴드 분위기가 다시 좋아지는데 왜 솔로를 하려고 하느냐고 말려서 다시 에이치투오로 의기투합하게 됐다.
김영진: 물론 지금 밴드가 예전처럼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밴드 뮤지션이 솔로로 데뷔하는 것은 뮤지션 생활의 마지노선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헤비메탈 시절부터 함께 음악을 했던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김준원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거기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든 받게 돼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Q. 새 앨범 〈유혹〉은 팬들이 자금을 지원한 소셜펀딩 방식으로 제작됐다. 언제부터 작업에 돌입했나?
타미김: 1월부터 녹음에 들어갔다. 음악감독은 영진이 형이 맡았다. 물론 각자 파트는 연주자들이 만든 것이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그림이 펼쳐질지 우리도 궁금했다.

Q. 김영진, 장혁, 타미김은 록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연주자들이 아닌가? 에이치투오로 모였을 때 어떤 스타일을 하려 했나?
김준원: 전체적인 방향성은 대중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음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타미김: 대중적인 록을 하려 했지만, 대중가요를 녹음하는 것과는 물론 차이가 있다. 각자 좋아하는 음악들이 잘 섞였다. 에이치투오라는 팀 이름처럼 네 명의 음악이 물처럼 잘 어우러졌다. 결국은 에이치투오다운 음악이다. 여기서 뭘 듣느냐는 팬들의 자유다.
장혁: 뭔가 대단한 음악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계속 즐기는 것이다. 누가 데모를 가져오면 연주자들이 각자 해석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서로 맞추고 견제해가면서 뭔가 다른 음악이 나오는 것이다. 결국은 연주자들 모두가 기분 좋은 쪽으로 간다. 장르, 스타일 상관없이 앙상블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Q. ‘유혹’ ‘Me And My Brother’과 같은 펑키한 곡들이 귀에 잘 들어온다.
김영진: 춤을 출 수 있는 곡들이다. 김준원은 다른 보컬들과 다르게 춤이 되니까.(웃음) 리드미컬한 록을 해보고 싶었다.
타미김: 내가 알고 있는 준원 형의 동선이 있다. 곡 중간에 특유의 춤을 추곤 하는데 그게 매우 멋지다. 준원 형이 예전처럼 무대 위에서 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준원: 내가 펑키한 리듬 위로 춤추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1970년대부터 록을 들어왔지만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 내 뿌리는 뉴웨이브였다. 미국에서 살던 시절 많은 공연을 봤지만 예쁜 여성들이 가장 많이 오는 것은 카스(The Cars)의 공연이더라. 여성들이 춤추기 좋은 록이랄까? 우리 공연에서 여성들이 가만히 서서 보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우리가 흔들면 그들도 흔들어야 용납이 된다.

김준원(왼쪽), 타미김
김준원(왼쪽), 타미김
김준원(왼쪽), 타미김

Q. 김영진, 타미김, 장혁은 세션 위주로 활동하다보니 밴드에 대한 갈증이 컸을 것 같다.
장혁: 자기 음악을 하는 것과 세션을 하는 것은 아티스트와 뮤지션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세션은 어디까지나 직업적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음악을 먹고 사는 것은 멋진 일이다. 세션에도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레드 제플린과 같은 진짜 밴드를 해보고 싶은 것이 연주자 모두의 꿈일 것이다.

Q. 요새는 에이치투오를 비롯해 마스터포(손무현, 이태윤, 장혁, 조범진), S.L.K(신현권, 이근형, 김민기) 등 연주자들이 다시 밴드로 뭉치는 분위기다.
장혁: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진즉 했어야 한다.
김준원: 많은 연주자들이 그동안 밴드를 하기 싫어서 안 한 것이라기보다는 밴드를 유지하기 힘든 가요계 분위기가 컸다. 2004년 4집 때에도 제작자들이 아무도 하지 않으려 해서 결국 자비로 만들었다.
타미김: 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여태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Q. 이제는 다들 젊은 나이가 아니다. 혈기 왕성한 시절과 지금은 아무래도 음악을 하는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김영진: 우리 어렸을 때는 정말 사명감을 가지고 밴드를 했다. 죽든 살든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결의가 있었다. 요즘 친구들은 밴드를 일종의 프로젝트로 보는 것 같다. 자기 음악을 하기 보다는 시스템에 적응하면서 그냥 좋은 음악을 하자는 분위기인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전성기가 지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생물학적 나이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은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지금이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가는 시점인지도 모르지.
김준원: 나를 돌아보면 예전에는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마인드가 컸다. 전투 마인드로 무대 위에서 잘난 체를 해야 속이 후련했는데 지금은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컨디션이 안 좋아도 상황에 맞게 즐길 줄 알게 됐다.

Q. 김준원을 보면 믹 재거가 떠오르기도 한다.
김영진: 롤링 스톤즈처럼 자기 음악을 꾸준히 하는 이들이 오래 간다. 단출하게 포 리듬으로 가는 것 말이다. 갑자기 록에 일렉트로니카를 섞고 그런 것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리듬도 바뀌기 마련이다. 자기 고유의 스타일을 각 시대에 맞게 심플하게 보여주면 그만이다. 그런 면에서 〈유혹〉은 2013년에 맞는 옷을 입은 에이치투오의 록이라 할 수 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편집. 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H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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