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 신수원 감독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인터뷰)
을 연출한 신수원 감독." />영화 <명왕성>을 연출한 신수원 감독.

서울대를 졸업하고, 중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교편을 잡은지 10여 년, 어느날 갑자기 메가폰을 잡았다. 소설을 써보겠다고 기웃거렸던 영화, 어느덧 그 매력에 푹 빠졌다. 교편을 내려놓고, 본격적인 감독으로 나섰다. 그런데 아무래도 교사보다는, 소설가보다는 영화 감독에 더 재능이 있었나 보다. 단편 <순환선>으로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카날플러스 상을 수상했고, 장편 <명왕성>으로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의미 있는 트로피를 연이어 들어올렸다. 신수원 감독, 충무로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기대하는 감독이 됐다. 영화 감독으로서 재능을 뒤늦게 발견했다고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소녀다.

하지만 영화 <명왕성>을 떠올리면, 그 천진난만함은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진다. 입시 지옥에 내몰린 고등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정도다. 묵직한 기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이 보인다. 교사였기에 더더욱 구석구석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사실적인 표현이 가능했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이처럼 무서운 영화를 들고 온 신수원 감독,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을까. <명왕성> 개봉을 앞두고 신수원 감독을 만나 잠시나마 그의 생각을 공유했다.

Q. 이력이 흥미롭다. 학생을 가르치다가 영화 감독으로 돌아섰다.
신수원 감독 : 교사를 하다가 어느 순간 매너리즘이 느껴졌다. 그리고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그만두긴 힘들고. 그러던 중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광고를 보게 된 것이다. 알아보니 등록금도 싸고, 문창과는 없었어도 시나리오 전공은 있고. 사실 시간을 벌어서 그 시간에 소설을 쓰고, 시나리오 형식도 기웃거려 보자는 흑심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16미리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너무 재밌더라. 소설하고 완전 다르고, 여러 명이 같이 하고, 영상으로 표현되는 게 좋았다. 졸업한 다음에도 계속 기웃거리게 되더라. 결국은 (학교에) 사표를 내게 됐다. 돌이켜보면 애초 영상원 들어갈 때 사표를 내는 게 좋았을 텐데. 하하.

Q. 소설을 쓰겠다는 ‘흑심’을 품고 영상원에 들어갔는데 결과적으로 소설보다 영화에 더 재능이 있었던 것 아니냐.
신수원 감독 : 그렇죠. 뒤늦게 자아발견을 한 거죠. 또 소설을 하고 있었으면 아직까지 한 작품도 못했을 수도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샛길로 빠지는 게 취미인 것 같다. 가려고 했던 것은 안 되는데 옆길로 빠지면 그게 내 길이 되더라. 살면서 그런 일이 많이 있더라.

Q. <명왕성>이란 제목이 참 인상 깊다. 어떻게 생각해 냈나.
신수원 감독 : 우연히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시나리오를 쓰다 (잘 안 풀려서) 접었을 때인데 그 즈음 명왕성 퇴출을 듣고, 그 테마를 가져오면 괜찮겠다 싶었다. 재밌는 게 기준에 맞지 않는 인간들을 방출해 버리는, 학교든 사회든 똑같은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과학적인 자료조사를 하긴 했는데 극 중 유진과 준이 명왕성 퇴출을 놓고 공방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그냥 생각하면서 쓴 거다. 이를 두고 과학자들이 따진다면 ‘고등학생이 이런 생각할 수 있지 않느냐. 오히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대단한 거 아니냐’고 변명하려고 한다. 하하하.

신수원 감독
신수원 감독
신수원 감독

Q. <명왕성>을 통해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
신수원 감독 : 영화 속에도 나오지만 ‘명왕성 퇴출에 대한 항명’, 그것과 맞는 것 같다. 결국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자체가 서열을 매기고, 점점 1%를 위한 사회가 되는 것 같다. 이런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입시 쪽에 관심이 많아서 입시 교육을 가지고 충분히 얘길 할 수 있겠다 싶었다. 특히나 아이들의 성적순이 사회까지 가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것들이 섬뜩하게 느껴진 적이 많았다. 분명 별이 될 수 있었던 아이인데 결국 밀려나고, 밀려나 자존감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Q. 과거 교편을 잡았던 경험이 영화의 디테일을 표현하는데 분명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신수원 감독 : 극 중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가산점 줄게’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내가 학교에 있을 때도 그랬는데 지금은 더할 거다. 진학재를 다룬 부분은 실제 들었던 이야기다. 아무래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밖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이 보게 된다. 또 이번 영화를 위해 취재도 했는데 교사였기 때문에 좀 더 파고들 수 있는 것도 있다. 밖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걸러서 들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리고 보통 아이들은 착하고 선하다 하는데 이런 기준이 무너진 적이 있었다.

Q. 말을 듣고 있으니 아이들을 너무 나쁘게만 보는 것 아니냐.
신수원 감독 : 귀엽고 예쁜 아이들도 많다. 하하하.

Q. 영화에서 학생들의 목표가 서울대인데 서울대 출신들이 보면 썩 유쾌하진 않겠다. 그리고 감독님도 서울대 출신 아니냐.
신수원 감독 : 지난 부산영화제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이 나오면서 ‘서울대 가는 아이는 쓰레기라는 거네’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하하. 어찌됐던 내가 학교 다닐 땐 부모가 모든 것을 돌봐주진 않았다. 지금은 초등학교 때부터 관리를 하지 않나. 물론 아닌 사람도 있지만 그 비중이 과거보다 높아졌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개천에서 용 나기’는 더 힘들어졌다.

Q. 감독님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그땐 어땠나.
신수원 감독 : 공부를 잘하는 학교는 아니었지만 학교 내에 모범생 그룹이 있었다. 그 그룹에 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당시 그 그룹의 아이들은 과외 금지였는데도 과외를 받고 그랬다. 오래전이라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 아이들이 부러웠고, 소속되고 싶은 열망을 가졌던 것 같다. 오래전이라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무의식 중에 그런 단초들이 이 영화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Q. 참교육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보는가.
신수원 감독 : 흔히들 이야기하는 전인교육이 필요하다. 입시교육은 입시만을 위한 건데 학교가 해야 될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진학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독립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게 힘을 배양해 주는 게 학교의 기능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돌아가야 맞는데 돌아갈 수 있을지…

Q. 정말 돌아갈 수 있을까요.
신수원 감독 : 사실은 학교에서 선생이 전인교육을 하더라도 불만이 많다. 족집게 선생님이 유능한 선생이 되고, 전인교육 하는 선생은 찍힐 가능성이 많다. 요즘 체육 시간 제대로 하는 학교가 있을까. 역사도 마찬가지고. 그렇다고 영어 시간에 영어 공부하나, 학원에서 더 배우니까. 가장 큰 문제는 이 아이들이 안정되게 살 수 있게 복지 자체가 돼 있어야 하는데 그것 자체가 엉망이다. 청년실업, 복지 등 이런 문제가 고스란히 학교 문제로 오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사회가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됐을 때 자연적으로 치유가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보면 학교가 ‘루저’를 키우는 것 같다. 소수의 아이들을 빼놓고, 무기력감과 자존감이 없는 상태로 학교에서 사회로 방출된다는 거다. 자긍심을 주고, 잘할 수 있는 것을 개발시켜줘야 하는데. 그럴 바엔 학교가 왜 필요하고, 과목은 왜 있는지 잘 모르겠다.

Q. 입시 말고 왕따 등 다른 문제들도 있지 않나. 가령 ‘학교 3부작’처럼 시리즈로 할 생각은 없나. 만약 감독님께서 또 학교 관련된 이야기를 들고 나온다면 감독님은 아니라도 해도 언론에서 ‘학교 시리즈’라고 이름 지어 부를 것 같다.
신수원 감독 : 이제 학교 이야기는 끝이다. 다른 것 하고 싶다. 하하하. 나중에 (할 이야기가) 없으면 또 하겠지만 당장 다음 것은 학교에서 먼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명왕성〉 신수원 감독 &quot;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quot;(인터뷰)
스틸 이미지." />영화 <명왕성> 스틸 이미지.

Q. 이다윗, 성준 등 그 분위기가 잘 맞아 떨어지더라. 그리고 진짜 학생들 같더라. 캐스팅에 꽤나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신수원 감독 : 캐스팅은 이미지를 일단 떠올렸다. 연기보다 이미지에 맞는 배우를 선택하고, 그 다음에 연기를 봤다. 이다윗은 ‘준’이란 인물과 잘 맞아떨어졌다.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변할 수 있는, 충분히 가능할거라 생각했다. 성준은 잘 생겼으면서도 어두운 느낌이 느껴졌다. 성준은 tvN <닥치고 꽃미남밴드>를 봤더니 (연기가) 볼만하더라. 만들 수 있겠더라. 성실한 것도 보였다. 이다윗은 <시>에서 워낙 좋았지 않나.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오디션을 봤다.

Q. 청소년들이 보면 뭘 느낄 것 같나. 그리고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나.
신수원 감독
: 우선은 영화니까 영화로 보겠죠. 그리고 보고 나서는 꼭 대학만이 아니고, 또 다른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친한 사이도 어느 순간에는 경쟁을 해야만 한다. 영화에선 극단으로 표현됐지만 어쩔 수 없이 경쟁이 내재돼 있다. 그러면서 좌절도 많이 느끼고, 무기력감도 커지는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을 좀 돌아보면 어떨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Q. 고등학생들이 나오지만 우리사회가 보이더라. 기득권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유지해나가는지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도 이익에 맞지 않으면 바로 돌아서는 비정함까지. 경찰이나 교사들도 그런 학생들을 딱히 막을 수 없고.
신수원 감독 : 단지 학원물로만 그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회의 축소판이 학교라고 생각했다. 방금 말한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담은 게 있다. 실제 어떤 아이들을 보면 겉만 학생이지 생각이나 이런 것들은 기성세대와 똑같다. 보고 배운 게 이런 것 밖에 없나 싶기도 하다.

Q. 사실 어떤 면에서는 어른이 꼭 봐야할 영화다.
신수원 감독 : 사회 전반에 대한 이야기다. IMF때부터지만 중산층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실직자가 되고. 그리고 점점 기득권을 위한 사회가 되어간다. 분명 잘못된 거라 생각한다. 교육도 사회에 맞춰가는 거라 생각하는데 학교 시스템도 이렇게 가다가는 국가적인 위기가 될 수 있다. 시작할 때부터 단순히 학원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영화제에서 본 사람들도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하더라.

Q. <명왕성> 등급을 놓고 논란이 있었다. 애초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나왔는데 그 이유가 뭐라 생각하나. 그리고 재분류(편집 없이 등급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하는 것)에서 15세 관람가로 낮아지지 않았나.
신수원 감독 :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내려진 게 불편한 영화여서가 아닌가 싶다. 사실 폭력이 과도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입시는 많이 다뤄왔던 것 아닌가. 왜 ‘청불’이 나왔는지는 나 역시 궁금하다. 결국 불편한 거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이들은 가르치는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아이들은 어리기 때문에 예쁜 것만 보여줘야 하고, 가르쳐야 하고. 설마 그랬을까 싶지만. 본심 때는 그게 뒤집어 진 건데 처음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었나 보더라.

신수원 감독
신수원 감독
신수원 감독

Q. 어떻게 보면 ‘청불’에서 ‘15세 관람가’ 나온 것도 웃기긴 하다. 여하튼 등급 논란에 있어 뭐가 문제라 생각하나.
신수원 감독 : 등급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몇몇 사람들의 기준과 판단으로 그렇게 해도 되는 건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영화란 게 하나의 산업인데 그걸 몇몇 사람이 재단하는 것 아니냐. 상품이 나왔는데 어떤 경우엔 나오자마자 재고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 그리고 그 기준은 개인의 주관과 취향으로 판단돼서는 안 된다. 가령 ‘청불’은 어차피 청소년이 못 보는 등급인데 청소년에게 위해할 수 있다는 논리로 제한상영가를 내리는 건 논리적으로 이상하지 않나.

Q. 그런데 청소년이 주인공인데 청소년이 못 본다, 또는 베를린에서는 보는데 우리나라는 못 본다 식의 논의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다. 감성적이 아닌 이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신수원 감독 : 맞다. 그 점은 동의한다. 교복을 입고 있어도 그게 에로 영화면 ‘청불’이 맞다. 다만 이해가 안 됐던 건 기준이다. <명왕성>이 폭탄이 문제가 됐는데 수잔 비에르 감독의 <인 어 베러 월드>에도 어린 아이가 폭탄을 폭파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그건 12세 관람가다. 외국인이 터트리면 문제가 안 되는 건가. 그리고 내가 표현한 수위가 ‘청불’이 아닌 다른 영화보다 ‘높나’라고 했을 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재분류에서 다시 판단을 해줘서 다행이지 안 그랬음 계속 갑갑했을 것 같다.

Q. 단편 <순환선>으로 칸 영화제 카날플러스를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 <명왕성>으로 베를린영화제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이후 좀 달라진 게 있나.
신수원 감독 : 잘 모르겠다. 달라진 거는 종이 한 장, 상장 받은 거. 하하하. 상 받고 나면 기분은 좋다. 칸에 가는 것도 영광이고. 베를린은 작품수가 많아서 <명왕성>이 묻힐까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고민을 하긴 했는데 더 큰 영화제에 간다는 보장도 없고, 베를린도 안 가봤으니까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골라갈 수 있는 처지도 아니고. 하하.

Q. 그런 수상으로 상업 영화 감독 제안도 꽤 들어올 것 같다. 달라진 게 있냐는 말은 그런 제안이 많냐는 것이다.
신수원 감독 : 분명 관심 있어 하는 분들이 생겼다. 그리고 상업영화도 하고 싶다. 허나 시나리오가 중요하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한다.

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사진제공. 워너비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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