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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은퇴로 충격을 안겼던 서태지가 컴백했을 때 전국 투어에 동행하며 기대감을 안겨준 밴드가 있었다. 5인조 하드코어 록 밴드 코어매거진이다. 잘 나가던 시기에 갑자기 사라졌던 이들은 원년멤버 류정헌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라인업으로 돌아왔다. 음악도 거친 하드코어에서 신나고 감성적인 신스팝으로 체질개선을 했다. 재결성이후 각종 오디션을 휩쓸며 최고의 루키밴드로 떠오른 이들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코어매거진의 갑작스런 해체와 재결성후 데뷔 싱글을 발표하기까지의 사연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창립 당시의 이야기와 해체, 10여년의 공백기, 그리고 새로운 멤버들과의 재결성 이야기는 인생의 단면을 보여주듯 흥미진진했다. 부활한 밴드 코어매거진은 류정헌(기타), 이정호(보컬), 이동훈(베이스), 김기원(드럼), 강민규(키보드)로 구성된 5인조 라인업이다. 이들은 처음 들어도 친숙하게 다가오는 수려한 멜로디와 경쾌한 복고풍 사운드로 신나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결성 초기에 불발에 그쳤던 데뷔음반은 2012년 5월에 발표되어 포털사이트 다음의 ‘이달의 앨범’에 선정되며 부활의 신호탄이 되었다. 이어 8월 EBS 〈스페이스 공감〉 ‘이달의 헬로루키’, 9월 올레뮤직 인디어워즈 ‘이달의 루키’, 10월 CJ문화재단 아지트의 ‘튠업 신인 아티스트’ 선정에 이어 ‘2012 올해의 헬로루키’ 연말결선 무대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최고의 루키밴드로 등극했다.

코어 매거진의 역사는 1998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강원도 춘천에 소재한 한림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리더 류정헌은 2학년 때 5인조 헤비메탈 캠퍼스 밴드 코다에 들어갔다. 당시 한림대에는 X-RAY라는 밴드가 하나 더 있었다. 두 밴드의 동기들 상당수가 군에 가면서 양쪽 밴드의 복학생 OB들과 남아있는 멤버들이 코어매거진으로 합체했다. 트윈 기타 체제로 세계적 밴드 유럽과 같은 화려한 음악을 지향했다. 오리지널 멤버는 보컬 곽창훈, 트윈기타 류정헌, 박상욱(훗날 서태지 밴드 베이스), 드럼 임종길, 베이스 이승엽의 5인조 라인업이다. 류정헌을 빼곤 음악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멤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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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무대는 속초 대명콘도에서 열린 한림대 99학번 신입생 환영회. 이후 ‘비관주의’란 노래로 제 1회 쌈지사운드페스티발에서 숨은 고수로 선발되었다. “당시 클럽 관계자들이 너희처럼 반 년 만에 급성장한 밴드는 없다고 했어요. 서태지컴퍼니 계약 전에 쌈지 1회 음반에 저희 노래 ‘인사이드 미’가 들어있습니다. 가사 없이 랩을 겁나게 웃기게 부른 그 노래는 세상에서 가장 쪽팔리는 영상입니다(웃음). 당시 저희 밴드는 멤버 교체가 심했는데 거의 반년에 한 번씩 변해 드럼은 무려 6명이나 교체되었죠.”

서태지는 컴백 전에 비밀리에 미국에서 밴드 라인업을 구축해 ‘울트라맨이야’ 연습에 들어갔었다. 그때 몇몇 인디밴드의 뮤지션들이 선발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현지에서 베이시스트가 도중하차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코어매거진의 기타 박상욱이 베이스로 합류했다. 귀국한 서태지는 멤버들을 공연에만 집중시키기 위해 국내 최초로 악기 파트 별로 테크니션 시스템을 도입했다. 테크니션들은 리허설, 기타 튜닝, 세팅, 톤 잡는 일을 맡았다. “당시 월급을 100만원씩이나 주는 엄청난 대우를 해줬습니다. 전국 투어를 앞두고 태지 형이 공연에 함께 할 서브 밴드를 요청했죠. 그때 레이니 선, 디아블로, 크로우가 오디션을 봤는데 코어매거진을 아예 제외시켜 기타 테크니션을 그만두고 오디션을 보겠다고 해 추가로 합격해 함께 공연을 했습니다.(류정헌)”

당시 코어매거진의 음악을 좋아했던 서태지는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밴드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 약속을 했다. 경기도 성남에 있던 연습실에서 두문불출하며 데뷔 EP를 준비하던 와중에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밴드에서 방출 당했던 류정헌은 1년 반 동안 좌절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2004년부터 수원 방위산업체에서 군복무를 했다. “속이 너무 상해서 눈물만 나오더군요. 3년 후에 자신들이 너무 욕심을 부려 미안했다고 쪽지를 보내왔어요. 시간이 지나니 그냥 술안주 같은 이야기가 돼버렸네요. 하지만 그때 경험한 박탈감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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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서울 능동에서 태어난 류정헌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소방차나 박남정을 좋아했던 친구들과 달리 동물원의 혜화동, 박학기 같은 통기타 음악을 좋아했다. 중2때 어머니가 악기 하나를 배우라며 세운상가에서 기타를 구해줘 동네 사회체육센터의 2주짜리 여름기타교실에 다녔다. 당시 DJ 김광한이 진행한 지구촌음악을 통해 접한 보이스투맨, MC 햄머 같은 블랙음악에 열광했던 그는 고등학교 때 까지 기타 연주보다 춤추기를 더 좋아해 3인조 댄스그룹을 결성했을 정도. “동북고 3학년 때 5인조 스쿨밴드를 처음 결성했어요. 학교 가요제가 워낙 유명해 강동송파 지역 아이들이 몇 천 명씩 구경 왔죠. 밴드 이름이 의학용어인데 가물가물하고 부활 노래 카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코어매거진에서 나온 류정헌은 2001년 밴드 015B에서 파생되어 조성민이 만든 4인조 밴드 서브웨이와 2006년 4인조 스타보우, 2008년부터 김바다와 함께 4인조 밴드 레이시오스, 킬러 커츠 등 다양한 밴드를 거치며 음악내공을 쌓았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밴드들이 매번 해체를 반복하자 “죽기 전에 해체되지 않는 밴드를 스스로 만들어보자”는 결심을 했다. 미국밴드 킬러스와 영국밴드 하드 파이의 음악에 매료되었던 그는 밴드 스타보우에 베이스로 자청해 들어가면서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찾았다.
스타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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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밴드결성을 준비했던 류정헌은 긴 머리에 허스키한 보컬을 구사했던 밴드 에이첼인어스토리의 보컬 이정호가 생각나 수소문했다. 밴드가 깨져 밴드 몽구스의 매니저 일을 하고 있던 이정호는 2000년 4인조 밴드 더 버퍼링 활동시절에 코어매거진으로 주가를 날리던 류정헌을 클럽 프리버드 무대에서 처음 보았다. “2007년 취미로 밴드들 사진 찍는 성신여대 영어강사 누나가 친한 밴드들을 모아 사운드홀릭에서 기획공연을 같이 했어요. 서로 공연은 보지 못하고 뒤풀이 때 처음 인사를 했죠. 그때 이상하게도 정헌이 형과 밴드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매니저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아 그만두려했는데 형이 처음으로 연락을 했어요.” 밴드 결성에는 의기투합했지만 두 사람이 지향했던 음악 스타일이 달랐고 밴드 이름에 대한 생각도 달라 갈등이 빚어졌다.

음악의 전체 분위기를 중시하는 류정헌과 달리 멜로디가 진한 미국 팝 스타일을 좋아하는 이정호는 질감이 달랐던 음악적 고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무작정 합류했다. 사실 코어매거진의 원래 의미는 ‘폭발력 있는 장소’, ‘탄창 창고’이지만 ‘도색 잡지’로 오해를 받는다. 새 출발을 하면서 굳이 밴드 명을 코어매거진으로 고집한 이유가 궁금했다. “개인적인 이유죠. 아무 것도 못해보고 내가 만든 밴드에서 ?겨나고 밴드도 결국 허무하게 해체되어 맺힌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류정헌)” “재결성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밴드이름입니다. 코어매거진은 이미 해체한 한물 간 밴드고 특히 ‘코어’라는 이름이 싫어 반대했지만 형이 이름에 대한 애착이 완강해 포기했습니다.(이정호)”(part2에 계속)
코어매거진 멤버 프로필
1기 보컬 곽창훈, 트윈기타 류정헌, 박상욱, 드럼 임종길, 베이스 이승엽
2기 류정헌-리드기타 1977년 8월 15일, 이정호-리드보컬 1981년 1월 10일, 이동훈-베이스 1986년 3월 16일, 김기원-드럼 1987년 6월 3일, 강민규-키보드 1988년 11월 15일

1998년 5인조 하드코어 밴드 코어매거진 결성
1999년 제1회 쌈지사운드페스티발 숨은 고수 선발
2000년 서태지밴드 전국 투어 참여
2010년 3인조 밴드 코어매거진 재결성
2012년 데뷔EP 포털사이트 다음 5월 이달의 앨범 선정, EBS 스페이스 공감 8월 이달의 헬로루키 선정, 올레뮤직 인디어워즈 9월 이달의 루키 선정, CJ문화재단 아지트의 튠업 신인 아티스트 선정, EBS 2012 올해의 헬로루키 연말결선 대상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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