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원의 씨네컬 문화 읽기,브로드웨이 42번가
공연 장면."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공연 장면.

단어 그 자체로 마음 설레게 하는 ‘브로드웨이’

타이틀과 무대가 모두 동일한 브로드웨이. 그럼 어째서 이곳이 ‘꿈의 공장’ 할리우드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까. 이러한 배경에는 <브로드웨이 42번가>가 실제 존재하는 뉴욕 맨해튼의 주요 거리이자, 세계 유명 공연무대의 열기로 북적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톱스타가 되기 위해 할리우드를 찾듯이, 단 한번이라도 공연 무대에 서보기를 염원하는 곳이 바로 브로드웨이이다. 따라서 이 공연의 여주인공 페기(정단영)가 스타의 꿈을 안고 이곳을 찾아온 것이나, 연출가 줄리안(박상원)이 투자를 얻기 위해 스폰서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 모두 작품 속 허구가 아닌,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영화 그 이상의 매력


연동원의 씨네컬 문화 읽기,브로드웨이 42번가
포스터." />영화 <브로드웨이 42번가> 포스터.

최근 국내 공연의 대세는 단연 뮤지컬이다. 그럼 ‘연기’라는 공통 요소를 지닌 연극과 오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관객이 몰리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 요인을 지적할 수 있겠으나, 결국 한 가지로 통하는 건 ‘대중성’에 있다. 그 분야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춰야 공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연극과 오페라에 비해 뮤지컬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화려한 무대 연출과 역동적이고 다양한 춤과 노래 그리고 애드리브를 비롯한 즉흥 연기에 관객들은 만족해한다. 그냥 보면 즐겁고 흥이 나는 것,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이제 뮤지컬의 영역은 참으로 넓다. 연극과 오페라를 뮤지컬로 각색하기도 하고,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를 원작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아이다>와 <투란도투> 그리고 <파리의 연인>, <대장금>, <해를 품은 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주목할 점은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인데, 실상 영화와 뮤지컬은 예전부터 상대 영역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작품을 원작으로 사용하였다. 소위 흥행이 검증된 작품을 리메이크하여 인기를 지속하자는 의도인데 반드시 들어맞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으로 유명한 <미션>과 러시아혁명을 소재로 한 <닥터지바고> 그리고 이번에 소개하는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결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미션>과 <닥터 지바고>가 영화에선 작품성과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둔 반면, 뮤지컬로 변신한 후에는 적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와는 달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영화(1933년 개봉)는 물론이고 뮤지컬(1980년 초연)로서도 엄청난 흥행 신화를 일구었다. 그럼 이러한 대조적인 결과가 나온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미션>과 <닥터 지바고>는 영화의 무대 배경이 관객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즉 스크린에 펼쳐지는 장엄한 이구아수 폭포와 끝없이 이어지는 시베리아 설경이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는데, 바로 이 장면을 뮤지컬에서도 어느 정도 기대했다. 그러나 뮤지컬에선 영화로 한껏 높아진 관객의 눈높이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조악한 무대 장치를 배경으로 배우의 가창력과 춤으로 승부를 보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흥행 부진 내지 기대했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원작인 영화 이상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영화에선 느낄 수 없는 흥행 요소가 깃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상상해보라. 화려한 조명 아래 수십 명의 배우들이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역동적인 퍼포먼스와 함께 탭댄스를 추는 장면을. 즉 타이틀이자 무대 배경인 브로드웨이는 스크린이 아닌 무대현장에서 진정한 공연 예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겉만 화려한 고난의 시대


연동원의 씨네컬 문화 읽기,브로드웨이 42번가
"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이 뮤지컬을 처음 본 느낌을 요약하자면 ‘밝고 화려하다’. 여기서 밝다는 건 무명의 코러스걸이 역경을 딛고 스타로 탄생한다는 해피엔드 내용을 담고 있어서이며, 화려한 이유는 수십 명의 배우들이 환상적인 조명 아래 온갖 다양한 탭댄스로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화려한 분위기와 낙관적인 내용과 달리 이 뮤지컬이 묘사하는 실제 시대 배경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이 뮤지컬에 나오는 시대가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불황기인 1930년대 대공황기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재즈싱어>(1927)가 최초로 영화에 사운드를 도입한 이후 브로드웨이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다. 사운드가 영화에 도입됨으로써, 가뜩이나 영상매체인 영화에 경계심을 갖고 있던 미 공연 예술계가 경쟁력이 없다고 좌불안석이 된 것이다. 한 예로 사운드가 도입됨으로써 영화산업에 새로이 추가된 장르가 바로 ‘뮤지컬영화’다. 마치 새로운 영상매체인 TV가 등장했을 당시 할리우드가 느꼈던 두려움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당시 공연계의 이러한 총체적 위기와는 달리 <브로드웨이 42번가>에는 어두운 분위기가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줄리안과 생계를 유지하려는 단원들 그리고 이젠 퇴물로 접어든 배우 도로시(김영주)가 공연을 올리기 위해 스폰서에게 마음에도 없는 빈말을 날리는 장면 정도다. 그렇다면 이 뮤지컬의 내용은 실제 그 시대와는 철저히 유리된 단지 상상과 허구의 산물로 간주할 수 있을까. 그러나 할리우드의 호황기가 1930년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당시 미 국민이 어려운 경제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일탈의 수단으로 영화를 택했을 때, 영화관은 인테리어를 예전보다 훨씬 화려하게 꾸며 관객을 맞이했다. 마치 고난한 삶에 지친 대중들을 잠시나마 스크린이라는 상상의 안식처에 쉬게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주인공 페기를 비롯한 수십명이 펼치는 화려한 무대 분위기 역시 빈곤과 역경에 꺾이지 않으려하는 마인드컨트롤로서의 낙관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또 하는데 기대가 된다.” 이 뮤지컬의 연출가 한진섭의 말이다. 필자 역시 세 번째로 보는 건데, 이번 공연에도 그 기대감은 어느 정도 충족된 것 같다. 특히 페기와 동료 단원들이 벌이는 탭 댄스 경연에 나오는 다양한 탭 소리가 일품이다. 또한 현재 공연 중인 <잭 더 리퍼>,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엘리자벳> 등이 주인공의 가창력에 큰 비중을 두는 것과는 달리 이 뮤지컬은 전체 배우들 간의 정교한 댄스 연기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페기를 비롯한 주요 인물의 연기나 가창력이 아닌 수십 명의 배우들이 정교한 카드섹션을 펼치듯 일사분란한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야말로 <브로드웨이 42번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자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풍겨나는 장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사진제공. 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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