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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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있었다. 모델다운 훤칠한 신체조건과 이국적인 외모는 이수혁을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에 불과했다. 어릴 적부터 배우를 꿈꿨고, 그래서 연극영화과에 지원했고, “단 한 순간도 배우의 꿈을 잊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연기에 대한 그의 열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KBS2 ‘상어’에 출연해 관심을 얻은 이수혁은 모델보다는 배우로 불리고 싶어 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런 그의 바람이 그가 톱 모델로 성공을 거둔 뒤라서가 아니고, 이미 10편의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올려놓았기 때문도 아니었다는 것. 나직이 울리는 그의 목소리처럼 배우로서 한 걸음씩 자신을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고 있는 그의 눈빛에는 스타가 아닌 배우를 꿈꾸는 이의 진정성이 담겨있었다.

Q. ‘상어’는 처음 느낌 그대로 슬프고 아련하게 끝맺었다.
이수혁: 스토리가 가진 무게감이 컸다. 새드엔딩을 통해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려 했다. ‘상어’가 의도한 메시지가 잘 전달됐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Q. 김수현은 극 중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이었다. 후반부로 가면서 캐릭터 내면의 갈등을 담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을 듯한데.
이수혁: 캐릭터를 좀 더 입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수현이 자신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된 뒤 한이수(김남길)를 찾아가는 장면과 조상국(이정길)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다. 후반부를 10일 만에 몰아서 찍다 보니 극의 흐름에 따라 감정의 수위를 조절하는데 애를 먹었다. 수현은 모든 걸 알고 있지만, 극의 후반부에 무게를 실어주려면 일부러 모르는 척 숨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걱정한 PD가 내게 “연기가 앞서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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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한이현(남보라)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극에 재미를 더하는 역할도 맡았다.
이수혁: 개인적으로 수현은 ‘상어’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밝고 착한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웃음). 보라가 어린 나이에 비해서 표현력이 좋아서 덕을 본 것 같다. 애초에 수현의 캐릭터 포지션이 좋기도 했고.

Q. ‘상어’를 찍기 전에는 10개월간 활동을 쉬었다.
이수혁: 작년에 활동을 쉬기 직전에 장르가 다른 세 작품을 동시에 찍었다. 시트콤, 영화, 사극에 출연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 특히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처절하게 깨달았다. 촬영 후 모니터하면서도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느꼈나.
이수혁: 훈련이 덜 된 상태로는 좋은 작품이 들어와도 제대로 소화해낼 수가 없겠더라. SBS ‘뿌리깊은 나무’도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당시에는 그러지 못했다. ‘준비를 충분히 하고 다시 도전하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Q. 10개월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다. 기다리는 팬들은 굉장히 애가 탔을 거다(웃음).
이수혁: 쉬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팬들의 사랑이다. 크게 임팩트 있는 무언가를 보여드리지도 못한 거 같은데 팬들은 한결같이 나를 믿고 기다려주시더라. ‘조급해하지 말자’고 수차례 마음을 다잡았다. 결과적으론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같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니까 연기에 대한 욕심이 더 커졌다. 그 시점에 ‘상어’와 영화 ‘무서운 이야기2’를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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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무서운 이야기2’를 보고 솔직히 놀랐다(웃음). 배우로서 다양한 연기를 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다.
이수혁: 공포 장르는 좋아하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꺼렸었다. ‘무서운 이야기2’에 출연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스릴러 성향이 강하다는 점과 1인 2역의 배역에서 매력을 느꼈다. 죽은 형과 동생 배역 사이에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지만, 머리와 안경 외에는 차이가 없었는지 시사회에 왔던 친구들은 영화를 보고 웃더라(웃음).

Q. 화제를 모았던 웹툰 ‘패션왕’의 이혁수 캐릭터를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아직은 배우보다는 모델의 이미지가 강한 것 같다.
이수혁: 좋은 옷을 안 입혀주면 밥을 안 먹고, 첫 등장 때 주변 온도가 내려가는 장면은 지금 봐도 정말 재밌다(웃음). 그렇게 인기가 대단했던 웹툰에 내가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 아닌가. 좋은 것과 별개로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행사장에 가도 기사에 배우가 아닌 모델로 표기되는 것이 예전에는 굉장히 싫었다. 하지만 작년에 쉬면서 생각을 해보니 ‘모델’이라는 타이틀도 분명히 나의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더라. 이제는 배우든 모델이든 호칭은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Q. 2006년에 모델로 데뷔하긴 했지만, 대학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원래 배우를 꿈꿨나.
이수혁: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연기였다. 어릴 적부터 영화에 나오는 게 꿈이었다. 아직도 아버지랑 함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남아있다. 하루에 3~4편도 더 봤던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서 패션에도 관심을 두게 됐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부터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지만 단 한순간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잊어본 적은 없다.

Q. 첫 주연을 맡은 영화 ‘이파네마 소년’(2010)을 찍을 때가 돼서야 소속사에 들어갔다. 한창 모델 활동을 할 때도 에이전시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활동했다.
이수혁: 모델 일을 하면서도 항상 배우 전문 소속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델 에이전시에서 계속 연락이 왔지만, 일부러 들어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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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혼자서 활동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 같다. 소속사에 들어오고 나서 크게 느끼는 변화가 있는가.
이수혁: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다 보니 실수도 잦았다. 핸드폰에 일정을 저장해놓고 다녔는데 한 달에 3~4일을 빼곤 모두 스케줄이 있다 보니 장소를 착각하거나 지각하는 일도 많았다. 다 어리니까 용서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웃음). 그런 경험을 했더니 지금은 소속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마치 보호받는 것과 같은 느낌도 받는다. 촬영과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은 것 같다.

Q. 모델 출신의 배우들이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수혁: ‘모델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에 모델 후배를 만났는데 “저도 언젠가는 배우가 되겠죠.”라고 하더라. 위험한 생각이다. 출발지가 어디였든 간에 배우의 꿈을 갖고 계속해서 준비를 해왔던 사람들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비슷한 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잘 되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웃음).

Q.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나.
이수혁: 얼마 전에 “김영광과 이수혁은 핵잠수함이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쭉 가라앉아서 다시 안 올라온다’는 의미더라(웃음). ‘아직은 내가 갈 길이 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Q. 케이블채널 온스타일 ‘스타일로그’의 MC를 맡았다고 들었다. 이제 방송까지 넘보는 건가.
이수혁: 새로운 도전이지만 낯설지는 않다. 모델 일이든 ‘스타일로그’의 MC든 패션이라는 키워드는 같지 않나. 모델이라는 직업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은 만큼, 모델로서 나의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나에게도 잘 맞을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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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모델과 배우, 서로 다른 두 직종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계속해나갈 생각인가.
이수혁: 차승원 선배나 강동원 선배를 보며 많은 것을 느낀다. 내가 모델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모델이 연기한다고 하면 관계자들은 “쟤들이 무슨 연기를 하겠어!”라고 말했다. 그런 곱지 않은 시선들이 점차 긍정적으로 변화한 데는 선배들의 노력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든 생각이지만 이쪽 방면으로 진출할 후배들을 위해 길을 잘 닦아 놓아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Q. 마지막으로 배우 이수혁에게 묻고 싶다. 어떤 연기를 하고 싶나.
이수혁: ‘상어’를 선택했던 이유도 기존에 내가 맡았던 역할들과 달리 사람냄새가 나는 배역 때문이었다. 로맨스, 청춘물 등 다양한 연기를 해보고 싶다. 요즘 거울을 보면 점점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웃음). 이른 시일 내에 나의 20대 모습을 임팩트 있게 남길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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