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진호
홍진호


“저의 십 대, 이십 대는 게임이 전부였죠. 삼십 대요?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네요(웃음).”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홍진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열아홉 살에 데뷔한 이래로 10년간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크래프트의 전설’은 2013년에 방송인이 되어 대중 앞에 섰다. 얼마 전에 그가 케이블채널 tvN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이하 ‘지니어스’)에 출연한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당시만 하더라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가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든 모르든 그에게서 그 이상의 무엇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홍진호가 ‘지니어스’에서 우승한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그것은 프로게이머 출신 방송인의 탄생을 의미할 수도 있고, e스포츠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새로운 진로의 개척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게임(Game)’이 그저 가벼운 유희거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어느 한 영역에서 경지에 오른 사람은 분명 그 만한 자격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냈다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 그 분명한 인과관계의 중심에서 다른 분야로의 성공적인 외도를 이뤄낸 그를 만나봤다.

Q. 반전의 리얼리티 쇼 ‘더 지니어스’의 진짜 반전은 바로 홍진호의 우승이 아니었을까(웃음).
홍진호: 정말 오랜만의 우승이다. 우승하면 미치고 펄쩍 뛸 줄 알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웃음). ‘지니어스’에 출연하며 한동안 잃었던 감각이 다시 돌아왔다. 프로게이머 생활을 접은 지 2년 정도 됐는데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 있다가 일상으로 돌아오니 조금은 맥이 풀린 느낌이었다. 이번 우승은 결과적으로 은퇴 후 새로운 삶을 사는데 활력소가 됐다.

Q. 방송활동은 과거에 게임 채널에서 간간이 얼굴을 비치던 것이 전부였기에 처음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했을 때 의외라고 느꼈다.
홍진호: ‘지니어스’의 의도와 콘셉트를 전해 듣고 나와 잘 맞겠다고 생각했다. 서바이벌 형식으로 누군가와 경쟁을 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프로게이머 중 첫 번째 섭외는 임요환(현 e스포츠 SK Telecom T1 감독)에게 갔을 테지만, 어쨌든 내가 출연하게 된 데는 운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Q. 임요환 감독이 섭외 1순위였다는 것은 확인된 정보인가?
홍진호: 물론 아니다(웃음). 지레짐작이다.

Q. 방송 경험이 없는데도 선뜻 출연 제의를 수락했다. 그것도 제일 첫 번째로 말이다(웃음).
홍진호: 원래 무엇을 하든지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방송에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내 주변에 어디 물어볼 사람이 있었겠는가. 막연히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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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막상 출연해보니 어떻던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나.
홍진호: 예상외 상황에 많이 놀랐다. 나는 완전히 승부사의 마인드로 녹화에 들어갔는데 함께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지니어스’를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고 나온 듯했다. 처음에는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모르겠더라. 첫 녹화 이후 조금 방향성을 잡았다. 이준석과 김민서 중 한명을 떨어뜨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자 서바이벌이라는 주제가 확 와 닿았다. 겉으로는 서로 웃고 친밀한 것 같아도 결국에는 누군가는 떨어져야 했던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Q. ‘지니어스’ 프로그램의 특성상 대인관계가 게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실제로 방송에서 베테랑 방송인들도 애를 먹는 기색이 역력했다.
홍진호: 게임을 하다보면 명확하게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군’이라는 경구의 의미를 실감했다. 솔직히 내가 그런 걸 잘 못해서 혼자서 아등바등하다보니 이미지가 좋게 형성된 것일 수도 있다. 한 명에게만 올인해서 확실히 내 편으로 만들자는 생각도 그때 하게 됐다. 매 순간 누군가를 믿고 따르기에는 리스크가 크더라. 원래 김구라 라인에 속해 있던 김풍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공을 들였다. 결과는 보시는 대로다(웃음).

Q. 라운드가 거듭됨에 따라 김구라와의 마찰도 잦아졌었다.
홍진호: 김구라는 예전에 인터넷 방송을 할 때부터 팬이었다. 팬클럽에도 들었다. 방송 같이한다고 해서 정말 좋아했는데 아무래도 승부를 놓고 경쟁을 하다 보니 서로의 색깔이 잘 맞지 않는 다는 걸 느꼈다. 사람으로서는 같이 가고 싶은데 경쟁 구도 속에서는 그를 빨리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 같았다.

Q. 김구라를 데스 매치 상대로 지목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듯하다.
홍진호: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순간도 바로 그 시점이다. 물론 방송에는 오픈 패스 게임을 할 때가 멋있게 다뤄졌지만, 김구라를 데스 매치 상대로 지목한 것은 내게도 큰 전환점이 됐다. 오히려 게임할 때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선택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려웠다. 워낙 센 분이 아닌가.

Q. 결승전 무대에서는 “준우승자가 진정한 패배자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로게이머 시절 유독 준우승을 자주했던 본인의 경험에 빗댄 표현이었나.
홍진호: 16강, 8강 무대에서 일찌감치 떨어진 사람들은 쉽게 잊혀 진다. 결승은 쉽게 말해 가장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지는 것이다. 그 만큼 좌절감도 크다.
홍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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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니어스’에서 보여준 승부사 기질은 프로게이머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홍진호: 나는 개인전에 강하다. 문제가 생기면 혼자 고민하고 해결 방법을 찾는 편인데 모두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것들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스스로를 궁지에 모는 경향이 있다.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나만의 표현 방식이랄까. 정말 넘어야할 대상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Q. 프로게이머에서 감독으로, 그리고 방송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겠다.
홍진호: 프로게이머 은퇴는 막연하게 했었다.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후배들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은퇴를 안 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게임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상태에서 생명줄만 붙잡고 있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스타크래프트’라는 단어만 들어도 만감이 교차한다. 평생을 바쳤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데 징검다리가 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Q.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이렇게 직접적으로 방송활동을 시작한 것은 당신이 처음이다.
홍진호: 초창기 프로게이머로서 나름대로 방향성을 제시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를 은퇴하고 나면 마땅히 할 게 없었다. e스포츠가 많이 발전하긴 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방송은 전문분야가 아니라서 부담을 많이 느낀다.

Q. 본인이 가진 패가 방송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가.
홍진호: 프로게이머 시절의 경험은 도움이 많이 된다. 하지만 아직 방송인으로 거듭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나는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는 캐릭터를 잡고 들어가는데 그게 모든 방송에서 통용되는 캐릭터는 아니다. 어떻게 하면 ‘홍진호’라는 사람 자체로 방송에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심 중이다. 물론 좋지 않은 딕션(발음)도 고쳐야 한다(웃음).

Q. ‘지니어스’같은 프로그램은 많지 않다. 어떤 프로그램이 본인에게 잘 맞을 거라 생각하는가.
홍진호: 아직은 어떤 프로그램을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서 있지 않다. 사람은 결국 즐거운 것을 좋아하지 않나. 방송도 재밌고 즐거운 것이기에 어떤 프로그램을 하게 되든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한다.
홍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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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즐기고 논다’는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홍진호: 노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웃음). 나의 인생을 요약하자면 ‘즐거움을 쫓는 여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다. 십 대에 게임이 좋아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한 것처럼 계속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다. 먹고 살기 위해서 무언가를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다.

Q. 열아홉에 데뷔한 홍진호도 어느덧 서른 줄에 들어섰다. 하고 싶은 일들보다도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지 않았나.
홍진호: 서른이 되기 전에는 정말 슬펐다. 막상 서른을 넘어서니 담담했다. 그때 내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니 아직도 어린 시절 그대로더라. 나이는 허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적 책임과 금전적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웃음).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세상과 타협을 해나가겠지만, 삶의 방향성에 대한 생각은 변함이 없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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