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제1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제1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제1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가 5일간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26일에 폐막했다. 홍보대사(애니멀 프렌즈)로 활동한 김민준의 ‘개념 발언(길고양이를 10마리 돌보고 있다고 고백)’도 훈훈하고, 국민귀요미 갈소원이나 마음이의 등장도 시선을 끌었지만, 무엇보다 순천이란 도시가 정말 매력적이었다. 개막식에 참석한 후 돌아오자, 몇 명의 언론인들이 “그 영화제는 내년에도 할까요?”라고 질문했다. 그것이 서울의 언론이나 영화인들이 영화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직 의구심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물론 “당연하죠!”라고 답했다. 이제 첫 단추를 낀 영화제에 대한 우려는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다. 일단 동물을 테마로 해마다 괜찮은 영화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제일 많았다. 아주 냉정한 지적이다. 올해는 좋은 영화가 많았지만, 월드 프리미어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즉 영화제라면 최초로 공개하는 작품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해마다 ‘마음이’ 같은 영화가 제작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동물과 관련된 극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영화제 측이 직접 제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동물영화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이슈가 필요하다. 1회 때는 영화제의 마스코트 ‘수리’가 그 역할을 멋지게 담당했다.

순천호수정원
순천호수정원
순천호수정원

영화인들은 으레 국내에는 영화제가 너무 많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단편이나 다큐멘터리 장르를 포함하면 영화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특화된 영역을 갖은 영화제는 그리 많지 않다. 기존의 영화제가 규모를 추구하며 백화점식으로 모든 것을 배치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는 차별화된 영화제가 필요하다. 동물에 방점을 찍은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는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휴양’이나 ‘힐링’에 더욱 어울리는 영화제라는 점에서 아주 큰 가능성이 있다. 이제 극장에 와서 영화만 하루 종일 보는 영화광들의 영화제는 더 이상 매력이 없다. 오히려 영화제가 자연과 함께 하며 새로운 휴식 문화를 창조할 때 더욱 가치가 있다. 이 영화제는 느리게 걷는 것이 가능한 영화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순천만의 자연 환경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조례호수공원뿐만 아니라 정원박람회 안의 무대를 심야 야외 상영 장소로 활용하면 더욱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영화제가 아름다운 순천만 정원과 함께 할 때, 타 지역 사람들에게도 생태도시의 가치를 전할 수 있으리라. 특히 영화제의 이벤트 기획이 나쁘지 않았다. 주인이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동물버스나 숲 속 캠핑영화제가 더욱 관심을 모았다. 이렇게 좋은 부대행사를 준비하는 것이 이 영화제만의 이색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는 예산(6억 원)이 작은 영화제지만, 볼거리도 충분하고 인심도 넉넉한 영화제였다.

테마정원 ‘갯지렁이 다니는 길’
테마정원 ‘갯지렁이 다니는 길’
테마정원 ‘갯지렁이 다니는 길’

잠깐, 영화제를 놓쳤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10월 20일까지 계속 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름 휴가를 놓치신 분들이라면 주말에 1박 2일로 순천을 다녀오는 것도 좋다. 그저 가볍게 정원을 거닌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개인적으로는 테마 정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첼시 플라워쇼에서 입상한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 작가의 ‘갯지렁이 다니는 길’이 수수하고 소박하다면, 영국 조경가이자 건축가인 찰스 젱스가 순천만에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순천호수정원’은 자연의 숭고함을 고스란히 전한다. 여섯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진 정원으로, 16미터 높이의 봉화 언덕에 올라가면 박람회장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순천호수정원을 바라보면 절로 탄성이 나오니, 이야 말로 순천의 랜드마크가 아닐 수 없다. 또한 10개국이 참여한 세계정원에는 각각의 정원들이 멋을 뽐내고 있어서, 나라별로 그 특성을 비교해 보면 더욱 흥미롭다. 박람회 측에서 관람 유형별 추천 코스를 제안하고 있으니, 팸플릿이나 지도를 보면서 미리 코스를 계획하는 것도 괜찮다. 모든 것을 볼 수 없다면, 취향에 따라 추천 관람 동선을 따라가면 된다.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많이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원박람회가 군대식 행군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가끔은 정원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서 시간이 정지된 정원을 즐겨보도록 하자. 정원이란 모름지기 동적인 것이 아니라 정적인 것이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감지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있을까!

권진욱의 책 ‘쇼몽 가든 페스티벌과 정원 디자인’(왼쪽), 오경아의 책 ‘영국 정원 산책’
권진욱의 책 ‘쇼몽 가든 페스티벌과 정원 디자인’(왼쪽), 오경아의 책 ‘영국 정원 산책’
권진욱의 책 ‘쇼몽 가든 페스티벌과 정원 디자인’(왼쪽), 오경아의 책 ‘영국 정원 산책’

이왕이면 책도 정원에 관한 책을 추천한다. 때로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즐길 수 있다. 가끔 외국에 출장을 가면 새벽에 일어나 공원을 거니는 것이 큰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정작 서울에선 공원을 거닐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순천에 간다는 것이 더욱 설레는 일이었다. 정원에서 뭔가 색다른 아이디어를 얻고 싶어서 책도 미리 준비했다. 순천을 오가는 버스 속에서 읽은 책은 권진욱의 ‘쇼몽 가든 페스티벌과 정원 디자인’과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의 ‘영국 정원 산책’이었다. 물론 이 책들은 정원 디자이너를 위한 팁이나 정원 애호가들을 위한 감상법을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각종 패션지에서 가든 페스티벌에 관한 기사는 많이 봤지만, 단행본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전문서로는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초심자들에게 정원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는 충분했다. 꼭 이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겠지만, 정원에 관한 책을 꼭 한 권 들고 순천으로 향한다면 더 많은 것을 꿈꾸게 될 것은 분명하다. 두 번째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정원 문화가 성숙할 대로 성숙한 영국에선 정원을 산책하며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에 담고 싶기도 하련만, 이들은 그냥 걷는다.” 너무 놀라운 것이 많아서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년에 갈 때는 그냥 걷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물론 내년 이 무렵에도, 영화제와 정원을 즐기기 위해 순천만으로 향하게 될 것이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기명균 kikik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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