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잭 더 리퍼’
뮤지컬 ‘잭 더 리퍼’
뮤지컬 ‘잭 더 리퍼’

런던의 화이트채플에서 실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든 뮤지컬 ‘잭 더 리퍼’. 타이틀 잭(Jack)은 범인을 알 수 없어 영국 시민들이 붙인 별명이다. 주목할 건 이 뮤지컬을 만든 곳이 사건이 일어난 영국이 아닌 체코라는 사실. 하긴 실존했던 루마니아 귀족 드라큘라를 흡혈귀로 바꾸어 소설로 출간한 곳이 영국이었으니, 굳이 만든 장소가 실제 그 곳인지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유사한 현상이 뮤지컬에도 나타났다. ‘잭 더 리퍼’의 경우 원작인 체코 버전보다 국내 스텝진에 의해 재창작된 뮤지컬이 훨씬 인기가 높다는 것. 더욱이 일본 공연에서 생생한 한국어 버전이 엄청난 흥행몰이를 했으니 말이다.

작품 속 런던의 실상

뮤지컬 ‘잭 더 리퍼’
뮤지컬 ‘잭 더 리퍼’
뮤지컬 ‘잭 더 리퍼’

이 뮤지컬의 시대배경은 1888년, 영국 역사상 가장 번영을 구가하던 빅토리아 여왕 때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전 세계를 지배했으나, 이와는 대조적인 현상이 국내에 만연했다. 수도인 런던의 영아(태어난 지 1년이 안된 아기) 사망률이 90%에 달할 정도로 빈부격차가 심각했으며, 그에 따라 강력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다. 오죽하면 런던에 더 이상 교도소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죄수가 넘쳐나 오스트레일리아를 범죄자 수감 장소로 개발하고 그 곳으로 1860년대까지 죄수를 수송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이 뮤지컬의 실제 소재인 1888년 8월 31일부터 11월 9일까지 2개월에 걸쳐 피해자의 목을 자르고 내장을 꺼내는 엽기적인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날 사회적 배경은 충분하다. 그만큼 당시 런던 사회는 비정할 정도로 각박하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으며, 이런 분위기를 뮤지컬 ‘잭 더 리퍼’와 여러 편의 영화에서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음으로 타이틀 잭(Jack)은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없어 영국 시민들이 붙인 별명이다. 매춘부만 최소 다섯 명 이상을 끔찍한 방법으로 살해했다는 점에서 범행동기가 원한으로 추정되지만 확인된 바는 없다. 더욱이 이 연쇄살인 사건의 수혜자(?)가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즉 살인사건이 벌어진 시점에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 1887)를 시작으로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한 추리소설이 연재되고 있었는데, 이 사건으로 홈즈의 인기가 올라갔다. 가공인물인 탐정과 실제 연쇄살인범이 대결을 벌이면, 누가 이길까라는 런던 시민들의 만화 같은 호기심이 작용한 것이다.

영화 ‘프롬 헬’ 포스터
영화 ‘프롬 헬’ 포스터
영화 ‘프롬 헬’ 포스터

영화 그 이상의 매력

미해결로 끝남으로서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결코 멀어질 수 없게 된 화이트채플 연쇄살인사건. 그 후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비교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모티브로 작용하기도 했다. 특히 조니 뎁 주연의 ‘프롬 헬’(From Hell, 2001)은 당시 범인이 자행한 살해 방법을 구체적으로 재연해 사실성을 부각시켰으나, 다른 한편으로 범인의 배후에 빅토리아 여왕과 매독에 걸린 왕세자를 개입시켜 극의 개연성을 약하게 했다. 게다가 이 사건을 조사하는 주인공 형사 역의 애인으로 매춘부를 등장시켜 범인의 표적이 된다는 판에 박힌 줄거리도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뮤지컬 ‘잭 더 리퍼’는 ‘프롬 헬’에 비해 극적 구성이 훨씬 치밀했다. 스포일러라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라스트의 극적 반전은 잘 만든 스릴러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다. (팁 하나를 보탠다면, 이 공연에서 ‘지킬 앤 하이드’라는 또 다른 뮤지컬을 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원작인 체코버전보다 국내에서 창작된 라이선스 뮤지컬이 훨씬 인기를 끈 요인이 있다. 그건 원작에 없는 ‘어쩌면’과 ‘이 밤이 난 좋아’ 등 한국인의 정서에 딱 맞는 뮤직 넘버를 추가한 것을 비롯해 주요 배우들의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환상적인 조명 아래 관능적인 춤을 추는 매춘부들에게 다가가 잭이 살인을 저지르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은 소름끼치면서도 에로틱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점에서 ‘잭 더 리퍼’는 한 여름 폭염에 지친 사람들에게 좋은 피서지가 될 것 같다.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와 잔혹한 살인 장면을 통해선 납량물을 본 듯한 기분을, 환상적인 조명과 역동적인 춤에선 뮤지컬의 진수를 동시에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씨네컬은 시네마(Cinema)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말로, 각기 다른 두 장르를 비교 분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편집자주>


글. 문화평론가 연동원 yeon0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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