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필순 (10)
장필순 (10)
장필순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얼마 전 푸른곰팡이 사무실에 갔다가 책상 유리 밑에 있는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다시 찍은 사진이다. 오랜 세월에 빛이 약간 바랜 사진 속에는 하나음악 뮤지션들이 단체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가족사진 같다. 장필순은 사진 속 인물들을 한 명 한 명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름을 말해줬다.

“이거 제 공연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찍은 사진이에요. 1993~1994년쯤인 것 같은데. 가운데가 동진 형님, 그 옆에 베이스 연주해준 동익 선배, 기타 쳐준 혁진 형과 영배, 여기 뒤에 낯선 사람들이랑 한동준, 이규호, 박용준, 이한철, 허은영, 이경, 안지혜…”

약 20년 전에 찍은 사진 속의 사람들은 여전히 장필순 곁에 있다. 이들은 11년 만에 나온 장필순의 새 앨범이자 7집인 ‘Soony Seven’에도 프로듀서로, 작곡가로, 연주자로, 또 뮤직비디오 연출로 함께 하고 있다. 동료라는 말보다는 가족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사진을 보고 장필순의 새 앨범을 들어보니 켜켜이 쌓인 세월, 사람 사이의 정이 음악으로 발현되는 아름다운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 20일 서교동 카페 밤삼킨별에서 장필순을 만났다. 9년째 살고 있다는 제주도 이야기부터 꺼냈다.

Q. 11년 만에 새 앨범이 나왔다. 제주도에 정착한 지는 9년이 흘렀다. 제주도에는 어떻게 내려가 살게 됐나?
장필순: 2005년에 내려갔다. 6집을 내고 음악을 다시 하기에 심신이 너무 지친 상황이었다. 서울보다는 제주도가 휴식을 취하기에 더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가보니 머리는 많이 쉬었다. 몸은 더 바빠졌지만.

Q.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일상이 궁금한 이유는 장필순의 음악에 그것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짐작하기 때문이다.
장필순: 시골생활이 단순한데 노동이 많다. 내가 사는 데는 산이 있는 외진 곳이라 밤이면 별빛, 달빛으로 주변이 밝아진다. 서울 살 때와 바뀐 것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됐다는 거다. 아침 6~7시쯤 일어난다. 서울에서는 보통 밤샘 작업을 하면 그 시간에 잤다.(웃음)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한 번 나가본다. 강아지, 고양이를 일곱 마리 키운다. 그 중 두 마리는 이제 8개월 정도 된 애기들이라 아침에 보면 화분을 엎어놓거나 모종을 밟아놓기 일쑤다. 그걸 정리 한 번 해주고 텃밭을 돌봐주면 아침 먹을 시간이다. 서울 살 때보다는 자급자족할 일들이 많다. 커피도 직접 볶는다.

Q. 새 앨범이 나오기까지 11년이라는 꽤 긴 세월이 걸렸다.
장필순: 그동안 음악이 손에 잘 안 잡힌 것 같다. 억지로 새 앨범을 내고 싶지는 않았다. 음반을 다시 내기까지는 음악을 만드는 것 외에 여러 번거로운 일들이 뒤따라오는데, 내가 그런 것에 지쳐 있었다. 그런데 푸른곰팡이로 후배들이 다시 모여 쿵닥거리는 것을 보니 슬슬 선배로서 내가 할 일이 보였다.

Q. 특별한 계기는 없었나?
장필순: 후배들이 제주도에 자주 내려오기 시작했다. 대개 여행 삼아 내려왔다. 박용준은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와서 며칠간 소파에 누워 영화만 보다 가기도 했다. 또 이규호, 고찬용 같은 친구들이 왔는데 언젠가부터 “누나 음반 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더라. 그 친구들도 내가 선배라 그런 이야기 꺼내기까지 조심스러웠을 거다. 몇 년 전에 함춘호 오빠와 함께 CCM 앨범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내 솔로앨범을 다시 내는데 하나의 계기가 됐다.
장필순 (2)
장필순 (2)
Q. 작년에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서울 레코드페어’ 장필순의 공연을 보니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더라. 후배들과 함께 공연할 때에는 매우 즐거워보였다.
장필순: 제주도에서 노동을 해서 그럴까?(웃음) 어느새 내가 선배가 됐다. 하나음악에서는 내가 항상 막내일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자리바꿈이 됐다.

Q. 하나음악을 계승하는 레이블 푸른곰팡이가 다시 생겨난 것이 장필순에게도 큰 힘이 됐을 것 같다.
장필순: 내가 동아기획에서 처음 프로로 데뷔를 할 때 선배들이 나에게 줬던 에너지가 있다. 그런 것들이 문득 생각이 났다. 내가 초심으로 돌아간다기보다는, 그때 선배들의 마음이 이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게을렀지만 열심히 만든 음악이 후배들에게도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Q. 가장 먼저 공개된 노래 ‘맴맴’은 이규호가 만들었다. 그 외에 고찬용, 박용준이 이번 앨범에 작곡가로 참여했다.
장필순: 이규호, 고찬용, 박용준 모두 20년 지기들이다. 그런데 내가 앨범에서 그 친구들의 노래를 불러본 적이 한 번도 없더라. 난 앨범을 만들 때 다른 이들의 동참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들의 곡 꼭 앨범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내 곡과 조동익 선배의 곡을 추려냈다. ‘맴맴’은 규호가 제주도에서 만들었다. 제주도에 가장 많이 내려오는 친구다. 우리 집 거실에서 곡을 만들어 들려주는데, 마당을 바라보며 듣고 있으니 너무 좋았다.

Q. 녹음을 제주도에서 진행했다고 하던데?
장필순: 거의 90퍼센트를 제주도 집에서 하고 기타, 그랜드피아노, 드럼은 서울의 스튜디오 사운드솔루션에서 했다. 연주자들과 화상통화를 하며 거의 실시간으로 녹음했다. 기타를 맡은 춘호 오빠가 워낙 바빠서 원격으로 녹음했다. 신석철은 드럼을 싣고 제주도로 오겠다는 것을 말렸다. 나머지 건반은 용준이가, 베이스는 조동익 선배가 집에서 녹음했다.
장필순 (1)
장필순 (1)
Q. 쭉 그래왔듯이 조동익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오래 활동을 쉬었던 조동익이 스튜디오로 복귀한 것은 2012년에 나온 윤영배의 두 번째 앨범 ‘좀 웃긴’부터다. 복귀 후 장필순 앨범이 두 번째 작업인데 그는 어떻게 다시 돌아오게 됐나?
장필순: 동익 선배, 영배와는 참 오랫동안 함께 작업해왔다. 특히 영배는 내 앨범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줬다. 영배가 첫 솔로앨범을 거의 혼자서 만들고, 두 번째 앨범을 만들 때에는 조금 고민을 하더라. 그래서 동익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꼭 도와줘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동익 선배가 다시 활동을 재개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아주 순수한 감정으로 영배 앨범을 돕기 위해 참여한 것이다. 우리는 정말 온전히 마음을 쏟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들을 함께 해왔다. 서로에게 고마운 점이 많다. 영배는 소리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다.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Q. ‘Soony Seven’을 작업하면서 조동익이 굉장히 치밀하게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업을 하면서 혹시 힘들거나 부딪히는 일은 없었나?
장필순: 그런 것이 없어진 지 너무 오래 됐다. 예전처럼 눈에 불을 켜고 싸우는 일은 없다. 예전에는 많이 싸웠다. 왜 안 싸웠겠는가? 둘 다 음반을 만들 때 아주 조그만 것까지 들여다보는 성격이다. 주변에서는 피곤해 할 수도 있다. 서로의 고집을 인상 안 쓰고 받아주니 결국 앨범이 나오는 거겠지?(웃음)

Q. 조동진의 곡을 리메이크한 ‘눈부신 세상’이 앨범의 첫 곡이다. 중반에 소리 지르는 부분이 장필순의 목소리가 맞나? 남자 목소리처럼 들려서 깜짝 놀랐다.
장필순: 내 목소리가 맞다. 허스키한 음색이라 육성으로 내지르면 남자 목소리가 나온다. 동익 선배도 놀라더라. 전에는 그런 식으로 잘 노래하지 않았다. ‘눈부신 세상’은 조동진 5집에 실린 곡인데 처음 들었을 때부터 너무 좋았다. 언젠가 내 앨범에서 꼭 불러보고 싶었다. 앨범에서 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랫말인 것 같아서 첫 곡으로 했다.

Q. ‘휘어진 길’에는 랩이 들어간다. 장필순 노래에 랩이 들어간 것은 처음 아닌가?
장필순: 재밌는 리듬이 나와서 랩을 넣어보면 좋을 것 같았다. 랩을 한 조민구가 조동익의 아들인데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한 친구다. 프로듀싱, 작곡, 편곡, 프로그래밍에 재능이 있다. 앞으로 좋은 음악을 할 것 같다.

Q. 오랜만에 새 앨범 작업인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것 같다.
장필순: 예전엔 내 이야기를 많이 하려 했다. 이번에는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고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들 하고 싶지만 꺼내기조차 힘든 이야기들이 많지 않나?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자기를 돌아볼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들에게 ‘너의 진심은 이거 아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라고 말해주려 했다. 위로하고 싶었다.

Q. 장필순의 이미지 중 하나는 따스한 누님이 아닐까? 청자를 안아주는 목소리 말이다.
장필순: 내가 그렇게만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내 목소리에서 무엇을 느끼는 가는 청자의 권리다. 난 노래 할 때 최대한 감정을 빼는 편이다. 정직하게 노래하고 싶다. 그러 내 노래에 위로를 받는다면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Q. 앨범을 완성하고 후련함은 좀 있었나?
장필순: 후련하기보다는 지치더라. 한 번씩 만들 때마다 너무 진을 빼니까. ‘이만하면 됐다’까지 가는 것이 너무 멀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앨범을 만드는 고통은 아무도 모를 것 같다.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모를 일이다. 그 노고는 앨범 속에 담기는 것이겠지. 그런 실천이 에너지로 옮겨갔으면 좋겠다. 사실 앨범을 잘 홍보해서 다음 앨범 만들 수 있는 돈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을 접고 산 지 오래 됐다.(웃음) 하지만 많은 동료들이 힘들어도 여전히 음악을 해나가고 있지 않나? 나 역시도 변하지 않고 여기에 있다. 우리의 음악이 나무가 돼서 후배들에게 그늘이 돼줬으면 좋겠다.

Q. 평론가들이 모인 웹진 100비트에서 장필순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90년대 앨범 중 1위, 6집 ‘Soony 6’를 2000년대 국내 앨범 중 1위로 뽑았다. 한 뮤지션이 이렇게 20년에 걸쳐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장필순: 물론 기분이 좋다. 열심히 한 것에 대한 선물을 받는 느낌이다. 꼭 평론가들이 좋은 평가를 해줘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들도 음악을 듣는 청자의 일부가 아닌가? 내 음악에 귀 기울여 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Q. 이번 앨범에서도 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 같다.
장필순: 앨범의 반응에 대해서는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후배들이 ‘누나 멋지게 했구나! 나도 같이 열심히 해야지’라고 힘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가장 크다. 또 내 음악을 오래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 분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다. 진심이 전해졌으면 한다.
장필순 (4)
장필순 (4)
Q. 이제 데뷔한지 30년이 돼간다. 장필순에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장필순: 반반이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진 것다면, 그에 반해 내 스스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약을 하는 것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 두 가지에서 중용을 지키는 것이 나이 듦 아닐까?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도 그것을 지키려 했다. 내 고집도 세졌지만 많이 수용할 줄도 알게 됐다.

Q. 이제 푸른곰팡이에서 어른이다. 그 모체였던 하나음악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장필순: 노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하나음악의 사람들과 함께 했다. 아마추어 시절에 조동진을 만났다. 들국화의 코러스를 맡고 ‘우리 노래 전시회’ 2집에 소리두울로 참여할 때에도 옆에 조동진, 조동익, 함춘호가 있었다. 하나음악이라는 명칭, 사무실만 생겼다 없어졌을 뿐이지 마음은 항상 함께 했다. 그곳에서 벗어나려 애쓴 적이 없다. 그곳이 좋았으니까. 제주도가 내가 살고 있는 집이면, 하나음악은 음악의 집이다. 그만큼 소중한 곳이고 내가 있어야 할 곳, 내게 너무 익숙한 곳이다. 음악을 하면서 하나음악과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만드는 분들과도 많이 교류했다. 그 와중에 고민도 있었지만 결국 이 곳에 남았다.

Q. 장필순 음악 인생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조동익은 언제 처음 만났나?
장필순: 조동익이 어떤날로 앨범을 내기 전이다. 80년대 중반에 샘터 파랑새에서 들국화 오빠들이 소극장 공연을 막 시작했을 즈음에 처음 만난 것으로 기억한다. 들국화, 하덕규 오빠들이 돌아가면서 공연을 하고 조동익, 이병우가 연주를 했다. 그때 난 들국화 코러스를 했었고. 내가 1989년에 동아기획에 들어가기 4~5년 전이었다. 소리두울 단독 공연에서도 조동익이 베이스를 연주해줬다. 내 솔로 1집부터 모든 앨범에 참여했고 3집부터는 쭉 프로듀서를 맡았다. 나에게는 베스트 파트너다. 20년 넘게 내 앨범에 프로듀서를 해주고 있는데 이렇게 오래된 음악 동지가 있다는 것을 주변에서도 참 부러워한다. 조동익은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음악을 계속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Q. 조동익 본인의 새 앨범을 정말 많은 이들이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혹시 계획이 없나?
장필순: 내가 바람을 넣고 있다(웃음). 그런데 워낙 나서는 것을 안 좋아하는 성격이라….

Q. 마지막으로 팬들이 이번 앨범을 어떻게 들어줬으면 하나?
장필순: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들어줬으면 한다. 그러면 내 마음이 전달되리라 본다. 나는 항상 앨범을 만들 때 그 안에 하나의 흐름이 있기를 원했다. 단순한 노래의 나열이 아니길 바랐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처럼 하나의 음악으로 다가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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