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패션, 위험한 열정’ 스틸
영화 ‘패션, 위험한 열정’ 스틸
영화 ‘패션, 위험한 열정’ 스틸

레이첼 맥아담스에게 ‘첫사랑’이나 ‘로맨틱 코미디’라는 수식어를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투 더 원더’와 ‘패션, 위험한 열정’을 통해 그녀의 욕망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왼쪽), ‘핫 칙’ 스틸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왼쪽), ‘핫 칙’ 스틸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왼쪽), ‘핫 칙’ 스틸

아주 가끔은 느끼한 아저씨들이 등장하는 B급 화장실 코미디가 즐거울 때가 있다. 발칙하고 요란한 섹스 코미디 ‘핫 칙’(2002)이 그런 영화였다. 못 말릴 정도의 싸구려 감성이 스크린에서 폭발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톡톡 튀는 여고생 제시카에게 계속 눈길이 갔다. 사랑스런 금발과 깜찍한 보조개를 지닌 소녀였다. 제시카는 오직 치어리더 콘테스트 우승과 졸업파티의 퀸 자리만이 관심사인 전형적인 ‘무개념’ 금발 소녀다. 게다가 우연히 골동품 가게에서 얻은 귀걸이 때문에 좀도둑과 몸이 바뀌는 해프닝까지 경험한다. 이 소녀는 1978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런던에서 태어난 레이첼 맥아담스였다. 물론 그녀가 좀 더 주목을 받은 것은 다음 작품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이었다. 으레 린제이 로한을 스타덤에 오르게 만든 영화로 손꼽히지만, 사실 린제이의 꿔다 놓은 보릿자루 연기보다는 레지나를 연기한 레이첼이 더욱 돋보였다. 주체할 수 없는 공주병 기질을 내세워 금발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과시했다. 이 영화의 경우, 레이첼은 린제이 로한이 연기한 케이디 역으로 오디션을 봤다가, 결국 밀려서 퀸카 경합을 벌이는 라이벌 캐릭터를 차지했다. 레지나가 ‘금발이 너무해’(2001)의 엘르(리즈 위더스푼)와 비교할 만한 캐릭터라고 우길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맥아담스의 황금 떡잎을 본 것으로 충분했다. 당시 하이틴 코미디의 퀸은 린제이 로한의 몫이었지만, 레이첼이 린제이를 뛰어넘는데 그다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곧 바로 그녀를 일약 스타로 만든 ‘노트북’(2004)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 ‘노트북’ 스틸
영화 ‘노트북’ 스틸
영화 ‘노트북’ 스틸

‘노트북’에서 레이첼이 연기한 청순녀 앨리는 카니발에서 만난 노아(라이언 고슬링)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7년 만에 조우한 이들이 빗속에서 키스하는 장면은 관객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라이언에게 “내게 편지를 썼나요?”라는 명대사를 날리는 그녀를 보면서, 심장을 빼앗기지 않은 수컷은 없었다. 그 후, 두 명의 클레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멜로드라마에서 여배우의 힘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여주었다. ‘웨딩 크래셔’(2005)에서 바람둥이 작업남 오웬 윌슨에게 연애세포를 돋게 하고, ‘시간 여행자의 아내’(2009)에선 늘 시공간을 떠도는 에릭 바나를 한결같이 기다리는 아내로 자리매김했다. 로맨틱 코미디이든 눈물샘을 자극하는 순수 멜로이든 그녀는 편안하게 소화했다. 이른바 대작이라 불리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출연한 적이 없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셜록 홈즈’(2009)시리즈에서 신비의 여인 아이린으로 등장해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혼란에 빠뜨리면서 존재감을 더했다. 또한 20,30대 젊은 여성들을 위한 칙릿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되는 시기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작가가 참여한 ‘굿모닝 에브리원’(2010)에서 방송국 프로듀서 베키 역을 맡아서, 직업여성의 성공담도 유쾌하게 담아냈다. 두 영화를 통해 흥행력마저 더했다. 다소 불안하게 느껴진 것은 지금까지의 모습과 유사한 ‘서약’의 페이지 캐릭터였다. 교통사고로 기억을 잃은 페이지가 남편 레오(채닝 테이텀)와 다시 사랑에 빠지는 평범한 이야기다. 이렇게 흔하디흔한 연애담을 반복하는 것은 그녀의 재능을 낭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 ‘투 더 원더’ 스틸
영화 ‘투 더 원더’ 스틸
영화 ‘투 더 원더’ 스틸

그녀는 로맨틱 코미디를 답습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영화, 두 편에 참여했다. 전자는 테렌스 멜릭의 ‘투 더 원더’였다. 주로 닐(벤 에플렉)과 연인 마리나(올가 쿠릴렌코)의 이야기라서 레이첼의 분량은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 하지만 오클라호마에서 에플렉과 사랑에 빠진 그녀의 모습은 한 편의 회화를 훔쳐보는 것처럼 너무 눈부셨다. 마치 왕가위의 ‘일대종사’에 등장한 송혜교처럼 숭고의 대상에 머물러 있지만, 그녀가 지금껏 보여주지 않았던 자유로운 감성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후자는 ‘패션, 위험한 열정’으로 누미 파라스와 레즈비언적인 애증 관계를 선보였다. 이 영화의 원작은 알랭 코르노의 ‘러브 크라임’(2010)이다. 무엇보다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연기한 크리스틴 캐릭터를 레이첼이 어떻게 연기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성공을 위해서 부하 직원 이사벨(누미 파라스)을 꼭두각시로 이용하는 그녀의 얄미운 연기도 좋았지만, 그녀의 유별난 성적인 욕망(남다른 취향)도 꽤 설득력이 있었다. 크리스틴 같은 진중한 카리스마는 없어도, 약삭빠르게 할퀴는 구석이 있는 건 좋았다. 누미의 환상에서 귀신처럼 불쑥 등장한 그녀를 보면, 로코퀸에 이어 호러퀸에 도전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나이트 플라이트’에서 이미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 ‘리틀 프린스’에서 목소리연기(더빙) 작업을 하고 있으며, 곧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차기작(로맨틱 코미디)에서 브래들리 쿠퍼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또 하나의 기대작은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안톤 코르빈이 연출한 ‘모스트 원티드 맨’이다. 첩보 스릴러에서 그녀의 연기도 사뭇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평범한 듯 해도, 그녀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글. 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 기명균 kikik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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