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연극 ‘리차드3세’에서 리차드3세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연극 ‘리차드3세’에서 리차드3세 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대기하는 장소에서는 어깨와 허리를 펴고 무표정으로 있다가, 무대로 발걸음을 옮기면 등은 굽고 손과 다리는 비틀어진다. 표정마저 섬뜩하다. 10년 만에 연극 ‘리차드3세’로 돌아오는 배우 황정민이다.

1일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은 개막을 나흘 앞둔 ‘리차드3세'(연출 서재형)의 출연 배우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단연 돋보인 건 황정민이다. 한 배역을 배우 한 명이 연기하는 원 캐스트인 이 작품에서 그는 모든 등장인물과 얽히는 주인공이다. 대사도 많고, 신체 결함까지 있는 역할이어서 허리도 제대로 펼 수 없다.

‘리차드3세’는 영국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명석한 두뇌와 언변을 가진 왕자로 태어났지만 곱추라는 신체 결함으로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리차드3세의 이야기다. 그가 권력욕을 가지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는데, 매우 잔혹하다.

리차드3세의 황정민을 필두로 정웅인 김여진 김도현 정은혜 박지연 김병희 임기홍 등이 출연한다. 연습을 마친 서재형 연출과 배우들은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권력을 손에 쥔 채 세상을 지배하려는 리차드3세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표현해 고전극은 지루하고 답답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겠다는 각오다. 황정민은 “과거 고전 연극을 통해 연기를 배웠다. 서서히 고전극이 사라져가는 게 아쉬웠다. ‘리차드3세’는 셰익스피어의 초창기 작품이어서 허술한 면도 있지만, 현대에도 충분히 공감할만한 내용과 대사들이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연극 ‘리차드3세’의 주역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연극 ‘리차드3세’의 주역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주인공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있는 황정민은 “원캐스트 공연은 사실 당연한 것인데,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는 드문 일이 됐다. ‘리차드3세’는 움직이는 힘이 남다르다. 원캐스트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도 느껴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황정민은 공연 의상을 입지 않고 조명도 없는 상태인 연습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연했다. 그가 중심을 탄탄하게 잡고 있는 터라 다른 배우들의 움직임도 힘이 넘쳤다.

6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르는 김여진은 “황정민의 팬이다. 같은 작품에 출연한다고 해서 설레고 떨렸다”며 “연습하면서 느낀 건 이 사람, 정말 질린다”며 웃었다. 연습실에 들어오고 나가는 걸 못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습벌레’라는 다른 배우들의 표현에 동조했다.

아울러 김여진은 “정웅인이 어마어마한 발성을 가진 배우라는 것도 알았다. 대극장에서 빛나는 배우”라고 극찬했다. 덕분에 연습인데도 빨려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배우 김여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김여진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황정민이 “리차드3세’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배우 황정민이 “리차드3세’로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 사진=이승현 기자 lsh87@
정웅인은 황정민을 두고 “워낙 대사가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황정민이 연습벌레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가 다음 작품으로 영화를 선택해도, 이번에 익힌 훈련이 화면을 통해 고스란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아역 배우들까지 황정민의 열정에 감탄했다. 연습실에서 사는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번 공연의 원캐스트를 주장했고 주인공까지 맡았기 때문에 황정민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고전극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다”고 밝힌 황정민은 자신의 소속사인 공연제작사 샘컴퍼니와 셰익스피어의 고전 작품 공연을 기획했다. 샘컴퍼니는 지난해 배우 박정민, 문근영을 앞세워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올렸다.

황정민은 “극 중 리차드3세처럼 누구나 욕망을 갖고 있다. 좋아하는 대사가 ‘내가 지은 죄를 묻는 그대들의 죄를 묻고자 한다’이다. 수백년 전 나온 작품인데도 현대와 잘 어울린다. 입장을 바꾸면 분명 타인을 손가락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를 다시 한 번 느끼고 있다. 스스로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리차드3세’는 오는 6일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해 다음 달 4일까지 공연된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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