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지난 3월 초연된 뮤지컬 ‘판’이 약 9개월 만에 다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지난 7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해 올해의 끝을 장식한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재연이 결정될 만큼 초연 당시 관객 반응이 좋았다. 조선시대 전기수와 매설방 이야기를 토대로 시대의 풍자를 국악으로 풀어냈다. 그 중심에 변정주 연출가가 있다. 그는 “올해 안에 다시 무대에 올릴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2004년 연극 ‘벌-만담의 설화적 기원’으로 데뷔한 변정주는 ‘날 보러 와요'(2006) ‘김종욱 찾기'(2007) ‘필로우맨'(2012) ‘러브레터'(2014) ‘도둑맞은 책'(2015) ‘아랑가'(2016) 등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극단 우투리의 대표를 맡아 폭 넓은 작품을시도했고, 지난해에는 ‘아랑가’로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에서 연출상을 받았다. 여러 색깔을 보여주며 관객을 울고 웃게 만드는 재주꾼 변정주의 통쾌한 한 판이 기대된다.

10. ‘판’의 재연은 언제 결정됐나요?
변정주 : 사실 초연을 올릴 때부터 이야기가 됐습니다. 프로덕션이 CJ문화재단에서 정동극장으로 바뀌었고, 초연 때 출연한 배우들도 작품에 애정이 넘쳐서 흔쾌히 출연한다고 했죠. 다행히 일정도 맞아서 순탄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10. 초연과 바뀐 점이 있습니까?
변정주 : 우선 국악 요소를 음악에 많이 넣었어요. 탈춤을 적극 사용했고 풍자의 대상도 지난 3월과는 달라졌죠. 무대 디자인은 바뀌지 않았어요. 초연 때는 CJ아지트 대학로의 공간을 잘 살려서 만든 것인데, 이를 정동극장에도 고스란히 가져왔습니다. 여유 공간이 생겨서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아요.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의 크기를 키웠고, 초연 때는 절을 지었다가 부쉈는데 지금은 탑으로 바꿨어요. 풍자의 대상이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죠.

10. 다른 공연과 달리 거의 매일 공연장에 가서 봤다고 들었습니다. 애착이 느껴집니다.
변정주 : 애착이 큰 것도 있겠지만 ‘판’은 즉흥 장면이 많은 공연이에요. 사실 그게 위험할 수도 있는 부분이죠.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도 모르게 실언을 한다든지, 해서는 안될 발언이 나올 수도 있죠. 연습 때도 실수가 많았어요. ‘그건 해서는 안 되는 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고요. 살짝 불안한 마음도 있고(웃음), 배우들이 노는 게 즐겁기도 하고요.

10. 그런 마음이라면 보면서 묘한 긴장감도 있겠군요.
변정주 : 긴장은 아니고…관객과 똑같이 즐기려고 해요. 그렇지만 연출의 입장에서만 보이는 부분들이 있죠. 배우들이 실수를 해도 저만 아는 것이기도 해요. 관객은 못 알아차리는 실수를 해도 기억해뒀다 배우들에게 일러주죠. 다른 공연은 애정이 없어서 안 보는 게 아니라(웃음) ‘판’은 관객의 입장으로 봐도 무척 재미있어요. 2006년부터 극단 우투리에서 우리 음악을 활용해 연극을 만들어왔는데, 어릴 때 했던 작업들이 떠올라 애착이 가기도 하고요.

10. 국악과 접목한 작품을 많이 내놨습니다.
변정주 : 극단 때부터 많이 국악을 접했죠. 그렇다고 국악만 한 건 아닙니다. 밴드나 록, 클래식, 팝도 좋아하죠. 다만 국악이나 연희 같은 우리 음악을 대중에게 쉽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10. 국악에 빠진 계기가 있나요?
변정주 : 대학 다닐 때 장구를 배우면서 우리 음악을 하는 이들과 교류하게 됐는데, 그때 매력을 느꼈어요.

10. 흥미가 연극과의 결합으로 이어졌군요.
변정주 : 도올 김용옥 선생의 ‘아름다움과 추함’이란 책이 있어요. 극단 미추의 창단 선언문으로 쓴 건데 길어지니 책으로 나온 거예요.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판소리는 춤과 노래, 드라마 이런 것이 분화돼 있지 않다고 말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오페라, 뮤지컬 등으로 세분화됐는데 우리는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거죠. 분화시키지 못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나를 가지고 공연하는 전통인 거죠. 그 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맞아, 우리 판소리는 구별이 안되는데’라고 깨달았죠. 그래서 ‘판’ 역시 연희의 장점을 보여주되 현대 관객과도 쉽게 만날 수 있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틀에 갇히는 게 답답하기도 하죠. ‘판’도 예매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서는 카테고리 분류를 뮤지컬로 해야 하지만, 사실 저에게는 다 같은 ‘공연’입니다. 연극이든 오페라든 공연으로 묶을 수 있어요. 그래서 연극과 뮤지컬의 차이도 저에게는 없고요. ‘판’을 두고 전통연희냐, 뮤지컬이냐 묻기도 하는데 구분은 없습니다.

10. 사회 비판적 작품부터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까지 여러 색깔을 다 보여 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변정주 : 어두운 과거를 조명하는 ‘보도지침’도 있고, 한없이 예쁜 ‘러브레터’ 같은 작품도 있죠. 그때 저의 상태에 따라 작품의 색깔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쁜 극을 할 때는 저 역시 아름다운 생각만 하려고 노력을 하니까요. 사실 공연이 올라간 뒤보다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이 훨씬 재미있어요. 관객들이 호응해주는 것도 물론 큰 힘이 되지만 준비하면서 작품과 영향을 주고받는 게 즐거워요.

10. 작품을 보면 현재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겠군요.
변정주 : 굉장히 가까운 지인들은 알죠.(웃음) 작품과 일상을 동일시하거나 혹은 분리하는 데 정답은 없지만 저는 연출가의 삶과 작품이 분리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옳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고 만들어왔습니다. ‘보도지침’이나 ‘판’을 만들 때도 통쾌했지, 무섭진 않았어요.

10. 올해를 ‘판’으로 시작했고, 끝도 맺습니다.
변정주 : 지난해 촛불집회도 12번을 참여했어요. 뮤지컬 배우들과 가기도 했는데, 그때 느낀 감정부터 모든 과정이 다 녹아있는 작품이에요. 여기 나오는 배우들도 당시 광장에서 노래를 했고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인 ‘새가 날아든다’를 부를 때 항상 뭉클해요. 작은 힘이 모여 바꿀 수 있구나, 그리고 그게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게 피부로 느껴져서 행복하고요.

10.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까? 내년 계획이 궁금합니다.
변정주 : 내년에도 ‘판’을 할 거예요. 재연보다 공연 기간을 길게 할 생각이고요. 지금과 다른 풍자 거리가 생기겠죠? 그게 풍자극의 묘미죠. 동서고금을 따지지 않고 예술가들의 입을 막으려는 힘은 존재하니까요. 작품의 수를 줄이고 생각할 시간을 늘리는 것도 계획 중 하나입니다.(웃음)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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