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신예의 발견부터 베테랑의 활약까지. 각 분야에서 유독 많은 스타들이 빛난 2017년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주목받은, 주목해야 할 스타들을 텐아시아가 꼽았다. [편집자주]
배우 이정화 / 사진제공=WS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화 / 사진제공=WS엔터테인먼트
“저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흐뭇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2010년 뮤지컬 ‘투란도트'(연출 유희성)로 데뷔한 뮤지컬 배우 이정화의 말이다. 지난 3월 막을 내린 뮤지컬 ‘아이다'(연출 키이스 배튼)에 출연할 당시 “여운이 남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정화는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며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웠다. 데뷔작 ‘투란도트’의 앙상블로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다. 앙상블에서 조연으로, 7년 째인 지금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연을 도맡을 정도로 성장했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배우, 창작진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연습하는 뮤지컬의 작업 환경이 낯설었다. 쉬는 날엔 주로 집에 있고, 낯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하루 종일 부대끼는 것이 어색해 숨어 다녔을 정도라고 한다. 그때 선배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 이정화는 “때론 ‘잘하고 있다’라는 말보다 ‘못해도 돼’가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존경하는 선배가 ‘나는 10년이 넘었다. 네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치면서 해’라고 말해줬다”며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았다.

힘을 얻은 그는 뮤지컬 ‘햄릿’ ‘황태자 루돌프’ ‘몬테크리스토’ ‘노트르담 드 파리’ ‘카르멘’ ‘체스’ ‘머더 발라드’ ‘삼총사’ 등 굵직한 작품에서 목소리를 냈다. 점차 작업 환경에도 익숙해졌고, 다양한 역할을 맡으며 실력도 나날이 발전했다.

2017년을 ‘아이다’로 시작한 그는 곧바로 ‘햄릿'(연출 로버트 요한슨)을 선택했다. 극 중 오필리어 역을 맡아 특유의 힘 있는 음색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울렸다. 햄릿을 향한 절절한 심정과 아버지를 잃은 비통함을 뜨거운 눈물로 토해냈다.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고전이지만, 이정화의 섬세한 연기는 극의 배경을 뛰어넘어 공감을 이끌어냈다.

‘뮤지컬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정화는 올해 활동 영역을 넓혔다. 데뷔 후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한 것. 지난 10월 29일까지 공연된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연출 김명환, 이하 조제)이다.

뮤지컬 ‘햄릿’에 출연한 이정화 / 사진=텐아시아DB
뮤지컬 ‘햄릿’에 출연한 이정화 / 사진=텐아시아DB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한 이정화 / 사진제공=벨라뮤즈
연극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출연한 이정화 / 사진제공=벨라뮤즈
‘조제’에서 여주인공 조제를 맡았다. 첫 도전이지만 쉽지 않은 작품, 역할을 골랐다. 조제는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고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인물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 때문에 무대 위에서도 표정과 말투 등으로 표현 범위가 제한돼 꼼꼼하게 풀어내지 않으면 관객에게 전달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정화는 무심한 듯한 말투와 공허한 눈빛으로 세상과 단절된 인물의 성향을 표현했고, 아이 같은 미소로 순수함을 녹였다. 주로 대형 극장에서 목소리로 관객을 만났던 것과 달리 약 2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공연된 ‘조제’를 통해 눈썹과 입꼬리만으로 마음을 움직였다. 이정화는 “조제를 연기하며 두 다리를 쓸 수 없었지만 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새로운 막을 연 셈이다.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출연하는 이정화 / 사진제공=WS엔터테인먼트, 알앤디웍스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에 출연하는 이정화 / 사진제공=WS엔터테인먼트, 알앤디웍스
그런 그가 올해의 마지막 작품으로 고른 건 뮤지컬 ‘아이 러브 유'(연출 오루피나)다. 남녀의 만남부터 연애와 결혼, 살면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이 작품에서 이정화는 무려 열다섯 명의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소개팅에 나온 20대 여성부터 미혼 자식들을 걱정하는 중년 여성, 황혼의 백발노인까지 다채롭게 넘나든다.

앞서 출연한 작품들이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였던 것과 달리 ‘아이 러브 유’에서는 시종 유쾌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다’와 ‘햄릿’의 이정화를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선한 모습이다. ‘조제’에 이어 ‘아이 러브 유’로 올 한 해를 가득 채우며 “여운이 남는 배우”라는 목표에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이정화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이유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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