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하진 기자]
알레산드라 페리, 에르만 코르네호/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알레산드라 페리, 에르만 코르네호/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제게도 ‘로미오와 줄리엣’은 특별한 작품이에요. 10년을 쉬고 줄리엣을 다시 만났어요.”


무용수 알레산드라 페리가 한국을 찾았다. 유니버설발레단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그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나 영국 로열발레단 사상 최연소 수석무용수이자, 케네스 맥밀란의 뮤즈로 활약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지난 2007년 은퇴했으나, 7년 만에 복귀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올해 53세로, 현역으로는 ‘최고령 발레리나’이자 최고의 무용수로 여전히 빛나고 있다.

알레산드라 페리는 주역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선다. 18일 오후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참석, 내한 소감을 밝혔다.

“이런 시간이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문을 연 그는 지난 6월,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9년 만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관객과 재회했다. 당시 유니버설발레단의 문훈숙 단장으로부터 한국 공연의 제안을 받았고, 흔쾌히 수락했다.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오는 22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다. 알레산드라 페리는 23일과 26일 두 차례 무대에 오르며, 파트너는 ABT 수석무용수 에르만 코르네호이다.

‘2016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2016 로미오와 줄리엣’ 포스터/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10. 많은 국가에서 공연을 했지만, 주역으로서는 첫 내한공연이다. 선택한 이유는?

알레산드라 페리 : 우선 한국에서 한 번도 주역으로 공연을 한 적이 없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내게도 특별한 작품이다. 10년을 쉬고 오랜만에 줄리엣 역할을 만났다. 최근 뉴욕에서 공연을 했는데, 문훈숙 단장에게 한국에서도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거절하지 못했다. 유니버설재단도 알려진 발레단이기 때문에 함께 하고 싶었다. 스케줄은 빠듯했지만, 일정을 조정해서 한국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

10. 물 흐르는 듯한 유연성을 지닌 무용수로 손꼽힌다.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은 무엇인가.
알레산드라 페리 : 발레 하기에 굉장히 좋은 체격을 갖고 태어난 것이 행복이자, 선물이다. 하지만 신이 준 선물, 즉 외적인 체형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항상 무대에 서면 무용수이기 전에 한 명의 인간, 또 여성으로 나를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무대에 올랐을 때, 인간으로서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나의 장점이다.

10. 고별 무대를 가졌다가 다시 돌아온 이유가 궁금하다.
알레산드라 페리 : 스스로와 경쟁하는 느낌, 다른 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은퇴를 결정했다. 정신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 고별 무대 이후 6년 동안 춤을 추지 않았다. 곧바로 행복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나’라는 사람이 잠자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춤을 추는 일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내게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었다는 걸 느꼈고 깨달았다. ‘나’를 찾아야겠다고 결정했고, 다시 무대에 오르기로 했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창의적인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다. 작은 무대에서 프로젝를 하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인 두려움은 없어졌다. 춤을 추는 이유는 그저 좋아서, 나 자신을 위해서 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케네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클래식이 아닌, 드라마 발레다. 무용수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알레산드라 페리 : 이 작품은 발레로 접근하지 않고, 연극으로 접근했다. 춤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케네스 맥밀란은 마을 장면에서 바닥을 청소하는 역할일지라도, 모든 무용수들이 자기만의 스토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왜 마당을 쓸고 있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고 늘 이야기했다. 무대 위에서 ‘너희들은 무용수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무대 위에서 예뻐 보이지 않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 한마디로, 줄리엣이란 인물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알았다.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낭만적인 작품이 아니다. 많은 무용수들이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데, 사랑과 증오, 폭력을 담아내는 실제 우리의 삶과 같은 이야기다. 맥밀란은 무용수가 현실적이고, 실제 사람이길 원했다. 클래식 발레는 동작 위주로 모든 동작을 완벽하게 하려고 한다. 맥밀란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무용수처럼 하지 말아야 하는 작품인데, 무용수들에게는 굉장한 도전이다. 무대에 올라갔을 때 무용수가 아닌 실제 인간, 사람, 인물이 돼 내면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알레산드라 페리, 에르만 코르네호/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알레산드라 페리, 에르만 코르네호/사진제공=유니버설발레단
10. 현역으로는 ‘최고령 무용수’이다. 어떻게 관리를 하고 있나.
알레산드라 페리 : 은퇴를 했을 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실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후 몸이 처지는 느낌을 받았다. 훈련하고 움직이는 것에 익숙했는데, 점점 건강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요가와 필라테스였다. 몸을 조금씩 움직였는데, 뭔가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이 들었다. 건강을 위해서 발레 클래스를 시작했는데, 그때 비로소 정신이 들고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요가, 필라테스, 수영을 통해 마치 운동선수처럼 몸을 훈련했고 이후 공연과 가까워지면 그간 다졌던 기관들을 활용해서 예술적으로 표현하려고 힘썼다.

10.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알레산드라 페리 : 미래에 대한 계획은 없다. 세우지 않는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