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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제 또래 뮤지션 만나면 정규앨범을 낼 것이냐, 디지털 싱글을 낼 것이냐, 여러 파트로 나눠서 낼 것이냐 하는 고민을 많이 해요. 고민 끝에 정규앨범으로 결정했어요. 이렇게 긴 호흡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형식의 앨범을 언제까지 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음악을 들어와서 그 형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3년 터울로 앨범을 냈는데 2016년에는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잖아요. 지난 앨범도 그랬지만, 이번엔 정말 마지막 정규앨범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혹시라도 마지막이라면 진짜 폼 나게 장식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고, 전 만족합니다.”

정규 5집 ‘고독의 의미’로 돌아온 이적이 13일 반포동의 한 카페에서 새 앨범 음악 감상회를 열고 기자들과 만났다. 역시 이적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타협이 없다. 늘 그래왔듯이 하나의 앨범의 완결성에 굉장히 공을 들인 것이 느껴졌다. 최근 EP 형태의 앨범, 싱글시장이 커지면서 음악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있는데, 이적은 그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촘촘히 쌓아서 들고 나온 것이다.

이적은 1년 전쯤에 그동안 만든 곡들을 쭉 들어봤다. “중간에 무한도전 가요제, 아이유 노래 등을 작업한 것을 빼고 60여 개의 파일이 있더라고요. 중간에 괜찮은 거 스무 개 정도를 골랐어요. 그 중에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곡을 다 쳐내고 최종 10곡을 이번 앨범에 담았어요. 상투적 느낌이 나는 곡은 과감히 버렸어요. 노래들이 살아있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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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곡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이적의 감정이 격하게 터져 나오는 노래로 오랜만에 듣는 뜨거운 감성의 발라드. 동료 뮤지션 정재형은 이 곡을 처음 듣고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거창한 곡은 아니지만 깊게 들어가는 느낌의 곡이예요. 이번 앨범에 편곡 스케일이 크고 꽉 찬 느낌의 곡들이 꽤 되는데 이 곡은 장식으로 화려하게 하지 않았어요. 피아노 앞에 앉아 상대방에 대한 원망을 담아 하소연하는 느낌이랄까요? 철썩 같이 믿었는데 결국 버려진 그런 기분이요. 이런 곡이 타이틀곡이 되는 것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음원차트에 이런 곡이 들어가 있는 게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내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어요. 내 노래는 시차를 두고 오래 좋아해주시는 곡이 많았는데 이 곡도 그런 곡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새 앨범에는 이적이 패닉 때 보여줬던 실험적인 음악부터, 이적이 솔로에서 들려준 감성적인 발라드, 그리고 트렌디한 곡들도 있다. ‘이적 종합선물세트’라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일 듯하다. 트렌디한 곡은 타이거JK가 랩으로 참여한 ‘사랑이 뭐길래’. 이 곡은 타이거JK가 ‘잠수’를 타는 바람에 작업이 늦어져 하마터면 앨범에 실리지 못할 뻔 했다. 결과물에 대해 이적은 매우 만족해 타이거JK에게 고마울 정도라고. “전 데뷔 때부터 트렌디한 사운드의 음악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제 인터뷰를 보니 ‘트렌디하지 않은 음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 있더라고요. ‘사랑이 뭐길래’는 최근의 트렌디한 음악을 내 방식으로 시도해본 음악입니다. 싸이가 이 곡을 달라고 하던데, 제 코가 석자라….(웃음)”

‘이십 년이 지난 뒤’는 비틀즈를 오마주한 곡이다. 듣자마자 ‘줄리아(Julia)’의 도입부가 떠오르는 곡. “예전부터 비틀즈 오마주와 같은 곡들을 앨범에 넣어왔어요. 패닉의 ‘뿔’, 솔로 곡 ‘보조개’가 그런 곡들이었죠. 제가 올해 나이로 마흔입니다. 스무 살이 엊그제 같은데, 이 속도로 가면 눈 깜빡하면 예순 살이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어요. 눈을 길게 감았다 뜨면 누워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웃음) 삶이라는 것이 굉장히 길 줄 알았는데 참 짧아요. 전 그때도 노래하고 있을까? 그 노래 들어줄 사람 있을까 그런 생각이 담긴 곡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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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과 듀엣 곡인 ‘비포 선라이즈’는 싱글로 미리 발표된 곡이다. 이적이 가장 좋아하는 사랑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느낌을 담은 노래. 이제껏 이적이 해온 듀엣 곡 중 가장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제가 데뷔 후 18년 간 여성 가수와 듀엣을 세 번 했어요. 패닉 때 삐삐밴드 이윤정 씨와 라이브 형식으로 뚝딱 녹음한 것이 있는데, 기괴한 결과물(불면증)이 나왔죠. 자우림 김윤아 씨와 함께 한 ‘어느 날’도 음산한 곡이었어요. 이번에도 기존에 없던 듀엣을 하고 싶었어요. 닭살이 돋고 뽀송뽀송한 듀엣 말고 다른 거요. 이런 성숙한 감성의 듀엣도 한 곡 있었으면 해서요.”

새 앨범에는 패닉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기괴하고 실험적인 곡들도 있다. 이적의 골수팬들이 반가워할만한 부분이다. “사운드 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 곡은 ‘병’, ‘뭐가 보여’, ‘누가 있나요’와 같은 곡들이에요.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주목해주셨으면 하는 곡입니다. ‘병’은 특히 그로테스크 한 곡이예요. 패닉 골수팬들 중에 패닉 2집과 같은 음산하고 기괴한 것을 했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 분들은 꼭 남자더라고요.(웃음) 그런 팬들의 갈증을 씻어줄만한 음악입니다. 나이 먹고 유들유들해진 것 아니냐는 나름의 실망감을 누그러뜨리는 음악이랄까요? 물론 그러기 위해 넣은 곡은 아니지만.”

수록곡 대부분이 고독의 정서를 가지고 있어서 앨범 제목도 자연스레 ‘고독의 의미’가 됐다. “나이가 주는 고독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제 마흔 살인데 언제까지 앨범을 만들고, 콘서트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그리고 원래 인생이 고독하잖아요. 이제는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된 것이죠.”

몇몇 곡들은 다소 심각하다. 최근 예능프로그램 ‘방송의 적’에서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와는 상반된, 아니 전혀 상관이 없는 음악들이다. “가끔씩 했던 예능프로그램들을 기억해주시는 것 같아요. ‘방송의 적’을 통해서는 제 상황이 아주 암울해지기도 했죠.(웃음) 즐겁게 했습니다. 전 그저 제가 즐겨보던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좋았어요. 또 얻은 것이라면, 지금 어린 세대들은 패닉을 몰라요. TV에 가끔 얼굴을 비치는 것과 그 와 중에 오디션프로그램 지원자들이 제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 연결이 돼 ‘이적이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것을 알려준 것 같아요.”

‘무한도전’은 음악적으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상업작곡가가 아닌, 자신의 음악만을 해온 이적이 대중의 구미를 생각하며 음악을 만든 시도였다. “‘무한도전’은 저에게 굉장히 음악적인 프로그램이었어요. 유재석 씨와 함게 두 곡을 만들었는데, 제 앨범 곡 쓰는 것과 또 달랐어요. 온 국민이 보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제가 처음으로 대중적인 ‘촉’을 생각했어요. 그냥 폼만 나서는 안 되고, 폼 안 나도 안 되고, 재밌어야 하는데 너무 싼티가 나도 안 되고. 설득력 있는 곡을 만든다는 것이 제겐 긍정적인 경험이었죠.”

새 앨범에서는 음악적인 욕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음악적으로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어요. 그런 것을 할 때가 다시 온 것 같아요. 제가 패닉을 하다가 카니발을 하고, 솔로를 하다가 긱스를 하기도 하고. 그렇게 집중력이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웃음), 언제나 제 음악을 하려고 했어요. 새 앨범에 저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담았어요.”

앨범의 구성 및 완성도는 상당하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듣게 하는 응집력도 여전하다. 앨범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 “곡을 하나씩 던지고 추이를 지켜보는 요즘 음악시장을 보면 상념이 들어요. 전 정규앨범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 ‘병’, ‘뭐가 보여’와 같은 곡들은 디지털 싱글로 낼 수 없는 곡들이잖아요. 이 곡들을 싱글로 내면 마치 바다에 물방울을 던지는 느낌일 것 같아요. 하지만 이 곡들이 앨범에 실리면 들려줄 수 있거든요. 이런 곡들에 대한 집착이 있으니까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뮤직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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