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 기태영 김재원 김규리 조윤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캔들’ 기태영 김재원 김규리 조윤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스캔들’ 기태영 김재원 김규리 조윤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생지옥 속 처참한 광경. MBC 주말드라마 ‘스캔들 :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속에는 서로를 용서하지 못해 결국 모두를 지옥 속에 빠트리고 마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어리석음이 도처에 깔려있다.

내 아들을 죽인 자의 아들을 납치해버린 아버지(조재현), 영문도 모른 채 남편의 잘못으로 아이를 잃어버리고 그 그림자에서 살며 스스로도 또 주변도 불행하게 만들어버린 여자(신은경), 그리고 모든 것이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비뚤어진 욕망의 촉을 세워나가는 남자(박상민).

목이 조여 올 정도로 숨이 막히는 이들은 모두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극이 그들에게서 끝나지 않고 아이들 세대에까지 대물림됐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사랑을 갈구한 아버지는 친부가 아니고, 그런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 친부에게 총을 겨누게 된 하은중, 잃어버린 아들의 흔적에 괴로워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 결핍으로 뭉쳐있는 장은중, 욕망 덩어리 아버지와 못지않은 욕망의 어머니 아래 자라난 장주하 그리고 늘 씩씩하게 버티려 하지만 자꾸만 불행이 겹쳐오는 우아미를 연기하는 네 배우 김재원, 기태영, 김규리, 조윤희(배역 순 정렬)를 여의도 MBC 기자간담회에서 만나보았다.

베테랑이 아니고서야 표현하려 마음먹기도 어려운 복잡하고 다크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이들 네 배우의 표정에는 다소의 결기와 흥분이 서려있었다. 시청률 성적을 떠나 조재현, 신은경, 박상민 등 쟁쟁한 카리스마의 선배 배우들과 함께 하고, 또 깊고 묵직한 문체의 배유미 작가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것 그 자체에 이미 큰 의미를 부여하며 부지런히 드라마 속 인물이 돼가고 있는 이들 배우들의 각오를 글로 옮겨보았다.

Q. 꽤 무거운 소재의 드라마다. 어떤 마음으로 임하고 있나.
김재원 : 개인적으로 밝고 사랑이 가득한 드라마나 작품을 좋아하는데, 우리 드라마가 사실은 볼 때마다 (나도) 힘들다. 시청자들께도 심적인 부담감을 주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하은중이라는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그 캐릭터의 아픔도 강하지만 다른 선배나 동료 연기자들이 연기하는 인물들 역시도 너무나 가슴이 아프더라. 우리는 보통 나만의 아픔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데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을 못하는 아픔들도 존재한다. (드라마 속) 아픔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세상에 이런 아픔들도 있으니 배려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또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라던지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기태영 : 지금까지 방송분으로만 봐서는 (장은중이) 악하다고 하기에는…물론 약간의 입장차는 있지만. 아무튼 감독님(김진만PD)도 말씀하셨듯 이것은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입장이 달라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같다. 연기 하면서 ‘악하다’ 아니면 ‘선하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그런 역할이라면 오히려 편안하게 갈 수 있다. 그러나 장은중은 여러 감정이 복합된 인물이다. 한 가지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많이 있다. 그래서 힘든 부분도 있고 또 재미도 있다. 앞으로는 다소 흑화가 될 것 같지만, 어떤 변화라도 잘 표현하도록 노력 중이다. 그런데 이런 인물을 연기하면서 몰입을 하려고 하다 보니 현장에서도 대본 연습장에서도 배우들과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고 있다. 자칫 다른 분들이 제 성격을 우울하다고 여기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아무튼, 새로운 느낌의 악역을 표현해보도록 노력하겠다.

김규리 : 장주하라는 캐릭터를 받고 고민을 할 충분한 시간 없이 촬영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그려온 장주하는 흰색 도화지 같은 친구다.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그리는 그림이 달라지는 것 같은 친구다. 방송 모니터를 한 뒤, 반응을 보면서 한 가지가 더 덧붙여진 것도 있어 주하는 시청자도 같이 만들어가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원래는 차갑고 도회적인 여자였는데 시청자분들이 마음을 담아주셨다. 이런 캐릭터를 마지막까지 예쁘고 또 힘 있는 캐릭터로 잘 성장시켜 보겠다.

조윤희 : 아미는 초반 설정보다는 다소 다운됐다. 처음에는 멜로가 붙을 수 없는 설정이었는데 이제 멜로가 생겼다. 멜로를 안 하다 갑자기 하려니 어색하다. 아미가 진심으로 (하)은중이를 생각할 수 있을까 고민이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감을 못 잡겠지만 그래도 (은중에게) 힘이 되는 아미가 될 것 같다.

Q. 네 배우 모두 무척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데, 캐릭터를 잡아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김재원 :
드라마 촬영하기 전, 슛 들어가기 전 눈을 감고 ‘나는 하은중이다’라는 생각을 한다. 백 번 이상 한다. 그렇게 캐릭터가 되도록 노력한다. 만약 교복신이 나오면, 나는 그 캐릭터의 학창시절을 쭉 떠올려 본다. 고1때부터 고3때까지 전체를 혼자 상상하면서 ‘하은중이라는 친구가 어떻게 보냈겠구나, 어떻게 지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한 신을 가지고 생각을 확장해보는 것이다. 그런 생각들이 하나하나 쌓이게 되면 점점 누적이 돼 다음 신을 찍을 때 도움이 된다. 나도 모르게 쌓이는 것이다. 늘 캐릭터를 잡을 때는 그런 식으로 임한다.

기태영 : 저는 다른 분들보다 뒤늦게 급하게 투입이 됐다. 초반에는 그래서 어색했던 지점도 있었던 듯하다. 만복(만복은 박상민-신은경이 연기하는 장태화 윤화영 부부에게 입양된 이후 이름이 장은중으로 바뀌게 된다)이라는 캐릭터를 잡아나갈 때 처음에는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했고, 고민도 많이 했다. 또 초반에는 엄마(신은경)와 함께 하는 신들이 많았는데 나름대로 진실 되게 다가가고 싶었다. 그래서 리허설을 할 때도 현장에서 귀를 다 닫았다. 실제로 슛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하려고 했다. 있는 그대로 반응하려고 한 것이다. 만복이 너무나 안타깝고 서러웠다. 엄마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듣는 상황에서 연기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힘들어 몸이 떨릴 정도였다. 아무튼 연기를 하면서는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테크닉은 보여드릴 것이 없고, 진심 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며 임했다.

김규리 : 우선 주하는 똑똑하고 완벽한,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그런 친구다. 그러나 연기하는 저는 그렇지 않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하며 많이 준비하고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서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감독님께 솔직하게 여쭤보기도 한다. 카메라 감독님도 그럴 때는 도움을 주신다. 그렇게 모든 스태프분들을 포함, 주변 배우들께도 도움을 받으며 주하를 만들어가고 있다. 나는 늘 ‘우선은 솔직해지자’라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주하는 차가운 인물이니까 어떻게 해야 따뜻한 말도 차갑게 내뱉을 수 있을까, 그리고 차갑게 말하지만 또 그 안에 어떻게 따뜻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를 놓고 끊임없이 현장에서 고민하며 만들어가고 있다.

조윤희 : 저도 초반이 어려웠다. 아이를 유산하고 나서의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어려웠다. 감독님과 상의했다. 그러나 다른 캐릭터에 비해 제 캐릭터의 감정은 쉬운 듯 하다. 적어도 아미의 감정은 이중삼중 겹쳐지고 무언가 내제돼있는 것은 아니라서, 편안하게 하려고 하고 있다.

Q. 쟁쟁한 선배들과 연기하는 소감은.
김재원 :
선배님들의 몰입도가 굉장하다. 지금까지 해온 그 어떤 작품보다 크다. 특히 가장 심하게 몰입하신 분이 박상민 선배님이다. 또 박상민 선배님이 극중에서 돌아가면서 한 분씩 때리고 있다(웃음). 다들 떨고 있다. 조재현 선배님도 (맞고나서) ‘난 이제 더 이상 맞을 일 없겠지’ 하시더라. 농담이고, 선배님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신은경 선배님은 저와 식당에서 밥 먹는 신 찍으면서 그런 말씀도 하셨다. ‘내가 드라마를 모니터하면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니까 뿌듯하더라. 한 편으로는 애잔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드라마 속 배우들 모두가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이 보이니까 말이야’. 선배님 말씀처럼, 난 이 작품이 내게 큰 찬스라고 생각한다. 또 마지막 작품처럼 하는 그런 결의도 있다. 그렇게 배우들의 에너지가 시너지가 된 작품이다. 알고 보면 우리도 다들 10년 이상씩 연기한 배우들인데도 불구하고, 선배들을 보면서 많이 배운다. 그렇게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김규리 : 촬영하면서 너무 행복한 것이 옆에 계셔주시는 선배들에게서 좋은 자극을 받는다는 점. 배우로 자칫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하고, 또 본능적으로 너무 힘드니까 (게을러질 때도 있는데) 선배들을 현장에서 만나보면 정말 치열하게 하시더라. 그럴 때마다 내가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하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기태영 조윤희 김재원 김규리(왼쪽부터)
기태영 조윤희 김재원 김규리(왼쪽부터)
기태영 조윤희 김재원 김규리(왼쪽부터)

Q. 묵직한 드라마 속 분위기와는 달리 현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한가보다.
김재원 :
그렇다. 특히 조재현 선배님이 유머러스하시다. 하루는 수갑을 차고 돌아다니는데 갑자기 절 끌고 가셔서 장난치시더라. 감독님과 항상 하는 이야기가 나중에 ‘스캔들’ 배우들 다 같이 시트콤 버전으로 찍자는 거다. 사실 우리 배우들 전부 무거운 것보다 밝은 역할을 잘 한다.

Q. 기태영 씨는 아내인 유진 씨가 어떤 조언을 해주나, 그리고 신혼이신 김재원 씨는 결혼이 연기에 미친 영향이 혹시 있을까.
기태영 :
늘 잘 하고 있다고 힘내라고 말해준다.

김재원 : 사람이 큰일을 겪게 되면 얻는 게 있는 것 같다. 큰일을 겪으면 겪을수록 그 안에서 얻는 것도 크고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다. 결혼은 김재원이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일이다. 덕분에 책임감도 생겼다. 또 곧 태어날 아기의 아빠가 된다는 것 역시도 결혼과는 또 다른 마음이 생긴다.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는 말아야지 한다. 그래서 연기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하게 되고 연기자로서의 길에 있어서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신혼생활은 와이프한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거의 작품 촬영에 일주일 내내 매달리고 있어서 사실은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편안하게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는 와이프라서 잘 하고 있다. 제 할 일을 잘 마무리 하고나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 되니까 서로 잘 이해해주고 편안하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Q. 김재원 씨는 배유미 작가와 ‘로망스’(2002) 이후 또 만났다. 연기하면서 작가와도 소통을 하곤하는지.
김재원 :
‘로망스’ 때까지만 해도 감히 작가와 연락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다. 또 그 때는 아무 것도 몰랐다. 지금은 촬영하면서 몇 마디 대화도 나눠본다. 작가님이 배우들한테 해주는 이야기를 봐도, 또 얼마 전 조재현 선배님 생일 때 보내신 케이크만 봐도 애정이 큰 것 같다. 또 개인적으로는 배유미 작가님의 문체가 여성스러운 감각적인 면도 있지만, 대범한 면도 있다. 그런 면에서는 남성스러움도 있다. 양면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끔 배우들한테 캐릭터와 관련된 언질을 하시는데 짧지만 큰 도움이 되는 말들이다. 그리고 우리 배우들 모두가 중간 중간 일이 많은 배우들이다(웃음). 그런 경험들은 배우의 인생, 작가의 인생을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신은경 선배님만 봐도 5회에 우는 신을 보고 제가 ‘여자 알파치노’라고 문자를 보냈다. 선배님이 정말 아픔에 대해 많은 것을 겪었구나 싶었다. 배우는 아는 만큼, 경험하는 만큼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배우에게는 그런 경험이 좋거나 싫거나 깊이가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보시는 분들은 부디 그런저런 일들은 배제해주시고 배우로서의 모습만 봐주시길 바란다.

Q. 끝으로 이제 반환점을 돈 이 드라마가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들려달라.
김재원 :
지금 이 드라마를 보면 피보다도 중요한 것은 환경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긴 하다. 우리가 흔히 피는 못 속인다고 말하지만 환경도 중요한 것 같다. 이제 하은중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이 드러나게 되고, 그 이후에 이야기는 핏줄에 대한 애착과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형성된 가족애 사이의 갈등이 드러날 것 같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드라마의 핵심이라 미리 말씀은 못 드리지만, 그 갈등이 재미있을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MB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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