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규민의 영화人싸≫
정가영 감독 '연애 빠진 로맨스'로 첫 상업영화 데뷔
"발칙한 영화 하고 싶다…홍상수 감독 영향 있어"
'혀의 미래'부터 '연빠로'까지 19금 같은 15세 영화 연출
'연빠로' 속 함자영 역, 20대 정 감독 모습 투영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정가영 감독./ 사진제공=CJ ENM
영화 '연애 빠진 로맨스' 정가영 감독./ 사진제공=CJ ENM
≪노규민의 영화人싸≫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오전 영화계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배우, 감독, 작가, 번역가, 제작사 등 영화 생태계 구성원들 가운데 오늘뿐 아니라 미래의 '인싸'들을 집중 탐구합니다.

"저는 발칙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도발적이다. 그런데 야하지 않다. 29금 토크는 기본, 청춘 남녀의 속사정을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여자 홍상수'로 불리는 정가영 감독이 첫 상업영화 데뷔작 '연애 빠진 로맨스'(이하 '연빠로')에서 자신의 색깔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문제의 장면이요? 아무래도 영화의 문을 여는 베드신이겠죠."

상영관 불이 꺼지자 마자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 전 남친과 이별후 밤이 외로운 여자 주인공이 누군가와 격하게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보여진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과감한 이 영화는 시종 거침 없고 발칙하다. 여자 주인공 '함자영', 남자 주인공 '박우리' 인물들의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정가영 감독은 '연빠로' 개봉 전 인터뷰에서 "섹스 파트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런 소재를 전면적으로 내세웠던 영화는 없었다. 남녀가 만나기까지 여러 경로가 있을텐데, 요즘 데이팅 어플을 통해 썸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접하고, 흥미로운 지점이 있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정 감독은 "'19세 관람가' 등급을 열어 놓고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최종적으론 15세가 나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연빠로'가 자극적인 것에만 포커싱이 맞춰지지 않게 하려고 했다. 살아있는 캐릭터를 통한 재미, 스토리를 통한 재미를 주려고 했다. 수위조절을 위해 나름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앞서 정 감독은 2014년 제4회 올레 국제스마트폰 영화제를 통해 10분짜리 단편영화를 처음 선보였다. 첫 키스를 하기 위해 만난 연인이 부모의 '재혼'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 후, 몇 분 후 불길한 미래가 이어지는 내용이다. 정 감독이 직접 출연해 꽤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 제목 또한 참 센스 있게도 '혀의 미래'다.

이후 2015년부터 '연빠로'를 선보이기 직전인 2020년 까지 정 감독은 '내가 어때섷 ㅎㅎ'부터 '비치 온 더 비치', '조인성을 좋아하세요', '밤치기', '하트'까지 자신이 직접 출연하고,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여러편의 단편영화를 내놓았다.
정가영 감독./ 사진제공=CJ ENM
정가영 감독./ 사진제공=CJ ENM
특히 '비치 온 더 비치'로 여성의 성적 욕망을 거침없이 그려내 눈길을 끌었다. 대놓고 야하기 보다 당돌하고 도발적인 한 '여성'의 모습을 말과 행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표현해 냈다. 이 영화로 정 감독은 '여자 홍상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자신 스스로도 홍상수 감독 영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2017년에는 '밤치기'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 되면서 주목 받았다. '밤치기' 또한 도발적이다. 극 중 가영은 호감을 느낀 남자 진혁(박종환)에게 키스, 자위, 첫경험과 관련한 질문을 거침없이 쏟아낸다. "하루에 자위 두 번 한 적 있어요?" "오빠랑 자는 건 불가능하겠죠?"라는 대사들이 속속 박힌다.

연애, 섹스, 술...지금까지의 정 감독 영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어디선가 비슷한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을 보고 "쓰레기다"라는 표현을 해 본 관객이 있을 것이다. 정 감독 영화에서는 희한하게 그런 B급 감성이 느껴지진 않는다. '욕' 대신 '공감'을 자극한다. 맥락 없이 야하지 않고, 실제 누구나가 한 번 쯤 해봤을 법한 말과 행동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 안엔 인간의 현실적인 욕망, 사랑, 이별 등이 담겨 있어 몰입도를 높인다.

"제 자신이 왜 이렇게 연애나 성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 같은 것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데, 누굴 좋아하는 지 말 안 하는 친구들은 그냥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만 생각 했어요. 지금까지도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고, 그래서 그런걸 또 영화로 만들고 있죠."

정 감독은 "제가 늘상 했던 고민들, 제가 듣고 보고 했던 것들을 영화를 통해 보여 주고 싶었다. '연빠로'에서 자영이 친구들과 술 마시며 신세 한탄 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제 20대 때 모습이다. 사랑이 뭔지도, 연애가 뭔지도 잘 모르겠고, 감정이나 욕망이 풍부한 나이지 않나. 사랑이라는 걸 하긴 해야 겠는데, 혼란스럽기도 하고 우왕좌왕 좌충우돌 하는 모습이 자영에게 투영된 것 같다. 제 친구들이 영화를 보면 맨날 보던 정가영 모습이라고 할 것"이라며 웃었다.
'연애 빠진 로맨스' 포스터./
'연애 빠진 로맨스' 포스터./
'연빠로'는 첫 장편 상업영화다. 이에 대해서 정 감독은 "저는 발칙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이번엔 전작에 비해 더 대중적이어야 해서 고민이 많았다. 제가 낸 아이디어을 가지고 많은 사람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앞으로 또 발칙한 영화를 하게 된다면 역시나 선을 넘지 않고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고민이다"라고 했다.

첫 상업 영화는 또 다른 경험이 됐다. 정 감독은 "독립영화와 상업영화는 전반적으로 많이 달랐다. 많은 예산이 들어간 규모의 제작환경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라며 "독립영화 할 때는 저의 세계였다. 제가 왕국의 왕이어서 거리낌이 없었다. 그래서 공부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상업영화를 하면서 이렇게 영화를 몰랐구나 싶었다. 공부하지 않았던 게 들통 났다. '왜 공부 안 하고 탱자탱자 살았나. 너무 부족하구나' 라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라고 반성했다.

장르에 대한 고민도 따랐다. 정 감독은 "안 그래도 계속해서 이렇게 사랑 가지고 징징대는 영화를 할 지,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느와르나 공포, 호러 등에 도전해 볼 지 꾸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났다.

정 감독은 지금까지 만든 작품에 대부분 배우로 참여 했다. '배우의 꿈을 꿨던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영화를 워낙 좋아했고, 연출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연기는 그저 재미있어서 '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시작 한 것이다. '연빠로'에서도 애초 평양냉면집 식당 아줌마로 출연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상업영화이다 보니 현장 상황 자체가 달랐고, 제가 끼여들면 안 되는 분위기 였다. 다음 작품에 시도해야 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접었다"며 웃었다.

지금까지의 작품이 너무나 과감하고 적나라 해서 덩달아 이를 만든 정 감독을 안 좋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이들이 존재할 지 모른다. 정 감독은 게의치 않았다. "제 이미지랄게 있나? 술 좋아하고 연애 좋아하는 거 맞는데?"라며 미소 지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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