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을 응원하며 ‘한류’가 시작되게 했던 대만팬들의 2013년 모습
클론을 응원하며 ‘한류’가 시작되게 했던 대만팬들의 2013년 모습
클론을 응원하며 ‘한류’가 시작되게 했던 대만팬들의 2013년 모습

1990년대말, 대만가수 소혜륜의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해달라는 섭외가 들어왔다. “어차피 우리(클론)가 누군지도 모를꺼고 우리가 뭔짓(과격한(?)무대)을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을거야. 한 번보고 말(해외공연은 꿈도 못꿈) 사람들인데 뭘…” 하는 생각에 심하게 거친 무대를 보여줬다. 그무대을 지켜보고 감탄한 대만스타들이 우릴 다시 초대했다. 당시 대만 신문에 처음으로 ‘한류’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그게 한류의 시작이었다.

그후 대만 홍콩 중국 대륙에 까지 우리의 인기는 멈출줄 몰랐다. 타이페이(대만의 수도)에 처음 갔을땐 하루정도 자유시간이 생겼다. 쇼핑도 하고 시내 구경도 하곤 했었다. 쇼핑할 겸 택시를 잡아 탔는데 택시기사가 우리 CD를 보여주며 서툰 한국말로 ‘꿍따리샤바라’를 따라 불렀었고 타이페이 시내 옷가게나 음식점에선 무조건 우리음악만 틀어놨었다. 백화점에 들어갈라치면 그곳에 쇼핑 온 사람들이 우르르 우리 사인을 받으려고 줄까지 서는 해프닝까지 일어났었다.

한달전 동료 준엽에게 대만에서 150만장이상 인기를 끌었던 ‘빙빙빙’(당시 ‘타이타닉’ OST를 제치고 대만 현지에서 두달 넘게 대만팝차트에서 1위를 했던 곡)을 함께 부르러 가자는 연락이 왔었다. 난 “다른 스케줄과 겹치는데”라는 핑계를 대며 “생각 좀 해보겠다” 했지만…사실 자신이 없었다. 예전보다 살이 많이 쪄 변한 모습도그렇지만, 휠체어를 타고 ‘빙빙빙’을 어떻게 부르고, 그 어려운 안무를 언제 또 준비해야할지…고민하다 그냥 안 간다고 했다.

대만에 간 준엽에게 문자를 받을 당시 비를 맞고 있던 나
대만에 간 준엽에게 문자를 받을 당시 비를 맞고 있던 나
대만에 간 준엽에게 문자를 받을 당시 비를 맞고 있던 나

며칠전 전동휠체어가 운행 중에 고장나서 고치러가는 중에 비까지 내려 고생하고 있는데…준엽에게서 한장의 사진이 문자로 왔다. 대만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우리팬들 늙지도 않았어. 다 그대로야 그리고 아직 이것도 갖고 있어.^^”

문자와 함께 내 얼굴이 담긴 열쇠고리의 사진도 함께 보내줬다. 스쿠터 타고 윌 차를 쫓아다닌게 엊그제 같은데…한명 한명 얼굴을 확인해 보니 10여년전에 대만에서 소중한 추억을 함께 했던 팬들 얼굴이었고 그중엔 의사가 된 팬, 결혼해서 일곱살이 된아이를 키우는 팬까지 있었다. 얼굴도 예전 그대로였다. ‘그들은 변한게 없는데, 난 많이 변했구나’란 생각에…순간 눈물이 핑돌았다.

1990년대말, 대만팬이 선물한 클론 메달
1990년대말, 대만팬이 선물한 클론 메달
1990년대말, 대만팬이 선물한 클론 메달

‘연습 좀 해서 갈껄 그랬네’ 하는 후회와 변한 내모습을 부끄러워한 내자신에게 ‘겁쟁이 겁쟁이’하며 반성했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지 12년
그동안 넘어진 적도 많고 포기한 적도 많고 화내고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그때 마다 다시 일어나려 노력했고 지금도 노력중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난 강원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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