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뭐 봤어?]<구가의 서>, 새로운 영웅의 서사가 필요할 때
" />MBC 월화드라마<구가의 서>

MBC 월화특별기획 <구가의 서> 11,12회 5월 13,14일 방송분

다섯 줄 요약

태서(유연석)의 부탁을 받아 여울(배수지)과 함께 어렵사리 청조(이유비)를 구해낸 강치(이승기)는 청조와 함께 떠나려 하지만 태서의 배신으로 위기에 처한다. 팔찌의 효력을 오인한 조관웅(이성재)의 수하로 인해 태서는 강치의 팔찌를 빼 강치를 위기에 몰아 넣으려 한다. 하지만 신수로서의 모습을 봉인하던 팔찌가 빠진 강치는 가족처럼 생각했던 태서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분노에 폭주하고, 강치의 정체를 알게 된 청조는 강치의 존재를 두려워한다. 청조와 태서 모두에게 배신당했다고 여긴 강치는 분노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믿어주는 여울로 인해 다시 안정을 되찾는다.

리뷰

과거 서화(이연희)와 구월령(최진혁)의 비극을 다시 반복할 수 밖에 없는 강치(이승기)의 운명을 증명하기 위해 다소 많은 시간을 쓴 느낌이 드는 시점이었다. 초반 2-3회를 통해 몰아쳤던 서화와 구월령의 이야기에 비해 청조와 강치의 이야기는 빨리 마무리를 짓는 듯 하다가도 과거의 비극을 도돌이표처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도록 하게 하려고 그들의 관계를 미적거리며 놓지 못했다. 예상보다 빨리 태서(유연석)와 청조, 강치와 여울(배수지) 모두가 부모 세대의 그늘과 운명에서 벗어나 각자 자신의 선택을 통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해 나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금새 기성 세대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을 드러내며 극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박무솔(엄효섭)의 죽음으로 태서와 청조가 빠르게 각성해 나가는 듯 했지만 태서는 조관웅(이성재)의 휘하에서 꼭두각시 놀음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고, 청조 역시도 단호한 모습으로 천수련(정혜영)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도모할 것으로 보였지만 조관웅에게 굴복하며 이들 남매는 허망하게도 극의 흐름에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 강치(이승기) 역시도 자신의 모습을 태서와 청조에게 들키기 위해 과한 시간을 사용한 모양새를 띠고 있으며, 이미 끝나버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고민을 굳이 이순신(유동근)과 담평준(조성하) 앞에서 되새기며 극이 나아가지 못하고 도돌이표를 그리는 데 일조했다. 오히려 11회와 12회를 거쳐 가장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건 여울(배수지)였다. 마치 여울이 성장하기 위해 모두가 그렇게 도돌이표를 그렸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여울은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자신만의 선택과 길을 다져나갔다.

그 동안 여울의 존재는 다소 미미했다. 강치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과 흐름은 다소 어색한 감이 있었고, 강치의 절절한 첫사랑이 되어준 청조에 비해 존재의 당위도 약한 편이었다. 하지만 강치가 가족으로 믿었던 모두에게 배신을 당하던 와중에도 여울은 신수나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아닌 강치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했고, 아버지인 담평준 보다도 앞서 강치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면서 급격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가장 먼저 부모 세대의 그늘과 판단을 벗어났고, 자신만의 의지와 생각으로 여울의 캐릭터는 단단해져 갔다.

그러나 이처럼 돋보이는 여울의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구가의 서> 속 젊은 인물들은 극 중 부모세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금 늪처럼 그림자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 암시에 빠진 태서는 아버지의 존재감과 그늘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청조 역시 결국 조관웅에게 굴복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잃었다. ‘예기가 되겠다’는 선언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천수련의 그늘 속으로 옮겨간 청조의 모습은 사실상 자신의 ‘선택’이라기 보다는 여지가 없는 ‘운명’처럼 받아들여진다. 다시 등장한 구월령과 자홍명, 그리고 담평준에 이르기까지 결국 모두가 자신들의 위치를 찾아가는 상황에서 강치를 비롯한 태서와 청조의 정체성은 그들의 그늘에 그치는 모습을 보여줘 더욱 아쉽기만 하다. 이들은 결국 부모, 혹은 부모로 대변되는 기성세대와 싸워야만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들이 빠르게 이를 극복해 나가지 못한다면, 태서의 모습처럼 극은 지지부진하고 지겨워 질 수 밖에 없다.

<구가의 서>의 핵심은 결국 ‘극복’이다. 이들은 지리한 과거의 비극적 신화를 끊어내야만 하고, 새로운 영웅의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그 누구도 그늘을 벗어나지 못해선 의미가 없다. <구가의 서>가 초반에 가졌던 탄탄한 서사와 속도감의 미덕을 되새겨야 할 때다.

수다 포인트

- 곤이를 서브 남주로 승격하라! 승격하라!
- 사람이 되려면 쑥과 마늘을 먹는 시대는 지나고, 역시 콩을 세야 하는 건가요?
- 서화의 20년 뒤가 자홍명이라니… 두 배우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닙니까!

글. 민경진(TV리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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