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비가 그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자 미술관에서 아이스커피를 한 잔 즐기고 싶어졌다. 마침 <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를 졸면서 읽다가, 건축가 알바루 시자의 주장에 번개를 맞은 듯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미술품들이 인공조명 아래 놓인 채 모욕을 당하고 있다”며 리움 미술관을 비판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내부가 너무 보고 싶어졌다. 사실 해마다 DMZ다큐멘터리영화제 때문에 이곳을 자주 지나쳤지만, 영화 상영에 쫓겨 그 안에 들어갈 생각을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미메시스를 목표로, 무작정 버스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고양이의 몸짓이 담겨 있는 뮤지엄을 제대로 바라보고 싶었다. 정말 기지개를 켜고 하품하는 고양이의 형상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국내에서 알바루 시자의 건축물은 2005년 안양예술공원의 알바루 시자홀(현재 내부 수리중이며, 올해 10월에 재개관 예정)에 이어, 두 번째로 파주에 만들어졌다.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탄생 과정을 담은 책 <미술관이 된 시자의 고양이>를 넘기다 보면 마음은 어느새 파주에 도착해 있다. 참 두꺼워서 손맛이 나는 책이다. 본능적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책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미술관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고양이의 자세를 상상하는 것도 즐겁지만, 이 두꺼운 책을 반쯤 보다가 푹 내려놓으면 그 모습이 꼭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을 닮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알바루 시자의 스케치들이나 뮤지엄을 최종 점검하는 그의 표정들을 손으로 휙 넘기다 보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착각이 일어난다. 특히 밀짚모자를 쓴 그의 뒷모습이 옆집 아저씨처럼 친숙하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책 후반부에는 제임스 터렐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나오시마 섬)에서 그의 환상적인 작품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더욱 눈길이 갈 것 같다. 물론 시자가 뮤지엄 내부에 들어오는 빛(자연광)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고 싶다면, 그건 직접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다. 이 책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서 특별 할인가(1만원)에 판매하고 있으니, 미리 구매하지 말고 뮤지엄에 방문해서 사는 것도 좋다. 전시입장료는 5,000원이지만, 커피를 제공하니 전시장을 거닌 후 커피향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주말에 혜화동으로 연극을 보러 가는 분들이라면, 잠시 아르코미술관에 들릴 것을 추천한다. <이병복, 3막 3장>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병복은 극단 ‘자유’의 대표이자 한국 1세대 무대미술가였다. 그녀의 40년 연극 인생을 재조명하는 자리로, 유학시절의 자화상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세계와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전시장 이병복 아카이브에선 ‘카페 떼아뜨르’의 추억을 엿볼 수 있다. “무대는 우리의 운명이고 신앙”이라고 주장했던 팸플릿이나 먼저 떠난 친구들을 회고하는 무대가 인상적이다. 두 번째 전시장은 그녀의 아틀리에를 옮겨놓았다. 이병복은 탈과 인형, 천 등의 소도구 활용에 능했다. 그녀의 무대예술은 고정된 세트가 없어서 전체적으로 텅 빈 느낌을 준다. 최소한의 소도구와 조명만으로 분위기를 창조하며, 특히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삼베나 무명천이 흔들리고 펄럭이는 기운을 상징적으로 활용해 연출했다. 그녀의 작업과정을 담은 무진형제의 영상 <요기>에는, 질기고 단단한 생명력이 살아 숨쉬고 있다. 담배를 피우면서 바느질을 하는 87세 예술가의 주름에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그저 자연의 품 안에서의 진솔한 삶을 동경하며, 내 몫의 일을 찾을 뿐”이라고 말하는 소박함이 그녀의 모습에 고스란히 서려있다. 6월 30일에는 피날레 퍼포먼스(피의 결혼식)가 진행될 예정이다.

요즘 같은 무더위에 두뇌 싸움을 요구하는 연극이나 삶의 고통을 노래하는 뮤지컬을 본다면 졸음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이제 뮤지컬은 웃기지 않다는 편견을 버릴 필요가 있다. <레미제라블>의 비극은 잠시 잊어버리고, 웃음의 바다에 몸을 던져보자. 뮤지컬 <스팸어랏>을 위대한 뮤지컬이라고 칭송할 생각은 없지만, 역사상 최고로 웃긴 뮤지컬인 것은 분명하다. 영국 코미디 그룹 ‘몬티 파이튼’ 시리즈 중 <몬티 파이튼과 성배>(1975)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물론 이 어처구니없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뮤지컬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스팸어랏>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더 왕(정준하, 서영주)과 원탁의 기사를 패러디한 이야기다. 어수룩한 아더 왕이 엉뚱한 다섯 명의 원탁의 기사들과 함께 성배를 찾는 여정 속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한 패러디와 풍자로 웃음을 준다. 특히 유일한 여자 캐릭터인 호수의 여인(이영미, 신의정)이 등장해, 폭발적인 가창력을 선사하는 것이 압권이다. “인생 별 거 없죠, 웃어 봐요!”라는 가사(대표곡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에 중독되면 시종일관 웃음이 터진다. 이 뮤지컬이 끝나고 나면, 괜스레 ‘스팸’이 먹고 싶을지 모르니, 미리 구입해 두자. 아니면 말고! 9월 1일까지 연강홀에서 성배 원정대를 만날 수 있다.

글.전종혁 대중문화평론가 hubul2@naver.com
편집.홍지유 jiyou@tenasia.co.kr

사진제공. 열린책들, 아르코미술관, 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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