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으니 목소리가 보였다
알았지만 실은 몰랐던 지석진의 목소리

가요계, '목소리의 힘' 보컬이 필요해
[최지예의 찐담화] '별루지' 지석진의 목소리에 반하는 날이 오다니
≪최지예의 찐담화♪≫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가요계의 '찐'담화를 주도합니다. 무분별한 정보 속에서 표류하는 이슈를 날카롭게 보고 핵심을 꼬집겠습니다.

눈을 의심했다, 아니 귀를 의심했다. 늦은 저녁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우연히 접하게 된 지석진의 목소리에 반했다.

MBC '놀면 뭐하니?'의 'MSG워너비' 특집에서 최종 멤버를 발탁하는 오디션 무대였는데, 무반주로 시작한 지석진의 목소리에 압도 당했다. 지석진이 속한 M.O.M (Men Of Music)은 서로의 목소리는 물론 숨소리까지 집중하며 가수 태연의 '만약에' 무대를 꾸몄다.

KCM과 박재정, 원슈타인 중 유독 지석진에 주목하게 됐던 것은 가수들 사이에서 그 혼자 방송인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로지 '목소리의 힘' 때문이었다. 지석진은 가면을 쓰고 노래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이 아닌 음악과 목소리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지석진과 M.O.M의 무대는 깊은 마음을 어루만지며 감동을 줬다.

지석진의 중저음 목소리가 감미롭다고 느낄 줄이야. 안정적인 가창력을 겸비한 지석진의 보컬은 KCM이나 김정민처럼 강한 개성은 없지만 호불호가 크지 않고, 남녀노소 누가 들어도 편안하게 다가온다. 특히, 개인적으로 듣기엔 중음에서 낮은 저음으로 내려갈 때 목소리의 매력이 배가되는 듯하다.
/사진 = MBC '놀면 뭐하니?' 방송화면
/사진 = MBC '놀면 뭐하니?' 방송화면
1992년 정규 1집 '우울한 오후엔 미소를'을 통해 가수로 데뷔한 지석진은 가수보다 개그맨, 예능 방송인으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의 지석진은 유명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서 동생들에게 당하는 포지션으로 웃음을 주며, 다소 가벼운 캐릭터로 대중에 인식되어 왔다.

그런 이미지 탓에 지석진의 가수 이력은 점점 잊혀졌고, 그런 이미지 덕에 지석진의 가창력과 목소리는 이번 'MSG워너비' 특집을 만나 더욱 빛을 발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MSG워너비 최종 오디션까지 오른 지석진은 눈을 가리고 귀를 열게 만든 뒤 음악의 본질에 집중하게 했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해 반전과 의외성을 선사하며 매력까지 끌어올렸다.

지석진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열게된 가장 큰 한 방은 '블라인드'다. 지석진이 '송중기'라는 가칭으로 그림자에 숨어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시청자들은 진작에 채널을 돌렸을 게 뻔하다. 지석진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비로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이후에야 지석진이 조명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를 때, 그의 출중한 가창력과 매력적인 목소리를 제대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는 MBC 예능 프로그램 '복면가왕'의 롱런 비결과도 일맥상통한다. 복면 착용만으로 가창자에 대한 선입견을 완벽히 없애고 진짜 목소리, 즉 진가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봤다. '복면가왕'은 2015년 설 특집 이후 현재까지 화제의 주인공들을 배출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과거 '얼굴 없는 가수'로 데뷔했던 가수 조성모, 김범수, 듀오 브라운아이즈 등이 구사했던 이른바 '신비주의' 전략, 이번 'MSG워너비' 특집의 기획 의도도 여기에 기반했다.

블라인드를 통한 지석진의 재발견은 작금의 가요계에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 목소리만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보컬의 필요성과 그 발굴 전략이다.

K팝 르네상스의 이면에는 '새로운 보컬의 부재'라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음악차트 톱100에는 '보는 음악'에 편향된 아이돌 그룹과 많은 팬덤을 보유한 트로트 가수들로 일색이다.

'목소리'가 없다. 팬데믹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보컬 가수-그룹의 데뷔를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흥행 가능성이 너무 낮다', '상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로 보컬 가수-그룹은 여러 기획사와 제작자들의 외면을 받아온지 오래다. K팝의 단꿈에 젖은 사람들은 너도 나도 아이돌 그룹 제작에만 사활을 걸고 뛰어든다.

오로지 아이돌 그룹과 트로트 가수로 양분된 가요계에 새로운 목소리를 가진 보컬의 출현이 절실하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흥겨운 트로트 가락이 팬데믹에 지친 국민들에 활력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해 본다. 'MSG워너비 별루지' 지석진이 보여줬던 '목소리의 힘'을 가진 새로운 보컬이 나오기를. 음악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목소리, 그리고 의외성과 반전이란 성공 비법을 기반으로 새 보컬 가수-그룹이 '짠'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 지금 대한민국은 따뜻한 목소리의 위로와 울림이 필요하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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