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손예지 기자]
대한민국에서 아이돌 래퍼로 산다는 것은 고단한 일임에 분명하다. 아이돌로서 기대되어지는 환상을 깨지 않는 선에서, 래퍼로서 제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 뿐인가. 대중에게 아이돌은 여전히 기획형 아티스트에 불과하다. 아이돌이 랩을 한다니, 누가 써주는 가사를 읊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이에 아이돌 래퍼들이 반기를 들었다. 엄격한 잣대와 가혹한 편견을 깨기 위해 믹스테이프를 세상에 내놓았다. 믹스테이프(Mixtape)란 비상업적 목적으로 제작해 무료 배포하는 곡을 말한다. 별도의 심의를 받지 않기 때문에 보다 솔직하고 거침없다. 3분짜리 음악방송 무대에선 들려줄 수 없던 진짜 이야기, 아이돌 래퍼의 믹스테이프로 들어본다.

와썹 나다 ‘홈워크’ 앨범아트 / 사진제공=와썹 유튜브
와썹 나다 ‘홈워크’ 앨범아트 / 사진제공=와썹 유튜브
“인지도가 필요해서 랩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랩을 하고 싶은데 인지도가 필요한 거예요.”

그룹 와썹의 나다가 Mnet ‘언프리티 랩스타3(이하 언프리티3)’에 도전하며 한 말이다. ‘언프리티3’가 3회까지 방송된 현재, 나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첫 방송에서 어두운 색 립스틱을 바르고 등장한 나다는 강렬한 비주얼 이상의 실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당시 서로의 첫 인상을 프리스타일 랩으로 표현하라는 미션이 주어지자 참가자 전소연은 나다를 지목했다. “솔직히 이 자리에서 제일 긴장한 거 언니 때문이다. 믹스테이프도 들었다. 그런데 언니 왜 이렇게 못해?” 전소연의 디스는 디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나다가 얼마나 잘했는데?”

지난 2월 공개된 나다의 첫 번째 믹스테이프는 앞으로 그가 선보일 3부작 중 첫 번째 앨범에 해당한다. 나다가 믹스테이프를 내기까지의 심경과 래퍼로서 행보를 시작하는 다짐이 총 6곡의 트랙에 담겼다.

나다의 믹스테이프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센스 있게 풀어낸 가사가 인상적이다. 1번 트랙 ‘홈워크(Homework)’에서는 “와썹은 들어도 내 이름? 잘 모르지. 뮤비는 많이 봤어도 얼굴? 안 떠오르지”와 같이 자조적인 가사를 선보이는가 하면, 2번 트랙 ‘뺏지’에서는 “난 할 말이 많아. 할 말 없음 래퍼를 왜 해, 인마. 랩 아닌 뒷담을 할 거면 노 래퍼(no rapper), 직업이 뒷담er”처럼 패기 돋는 가사로 불특정 다수의 헤이터(Hater)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선사한다.

특히 4번 트랙 ‘성에 차’는 제이스의 ‘성에 안 차’를 패러디한 곡으로, 나다의 거침없고 솔직한 매력이 드러나 있다. “말로는 ‘나는 쟤네랑 달라’라고 하면서 정작 그걸 부러워하거나 따르는 사람들”을 향한 솔직한 돌직구로, “가진 걸 숨기거나 더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는 게 멋있다고 생각한다”는 나다의 소신이 담겼다. 여기에 귀에 분명히 꽂히는 나다의 딕션이 돋보인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가자들은 심리적인 부담으로 종종 코너에 몰린다. 긴장을 이겨내고 제 실력을 보인다면 그보다 좋은 게 없겠지만, 설사 그렇지 못하다손치더라도 서바이벌의 결과가 그의 전부는 아닐 것. 다음은 나다의 믹스테이프 마지막 트랙 ‘가진 듯이’의 가사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걸러내. 이제 시작인데 끝을 본 듯 말하네. 난 믿어, 우리가 높이 올라갈 걸 아네” 아직은, 나다에게 더 기대해 봐도 좋다.

손예지 기자 yeji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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