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이승환/사진 제공=드림팩토리
이승환/사진 제공=드림팩토리
신호는 통신과 다르다. 통신은 상호간의 교류를 보장하는 반면 신호는 일방적이다. 발신자는 있어도 수신자는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를 향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는 건,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수신해줄 것이란 희망 때문이다.

지난 21일 발표된 이승환의 신곡 ‘10억 광년의 신호’는 발신자와 수신자의 어긋남에 착안해 탄생한 곡이다. 마음을 우주에, 마음의 속도를 광년(光年)에 비유한 가사가 인상적이다. 이승환은 발매 당일 열린 쇼케이스 현장에서 ‘10억 광년의 신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신호를 외계에 보내기도 하고, 외계에서 보낸 신호도 분명 있을 테죠. 그런데 수신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에요. 우주 같이 넓은 마음을 서로 헤아리지 못한다면, 서로의 신호를 수신하지 못할 거란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사를 썼어요.”

‘10억 광년의 신호’는 지난 14일 정식 발표에 앞서 가사를 선공개했다.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 그 추운 곳에 혼자 있지 마. 날 용서해. 널 사랑해”라는 내용과 가사 공개 시기가 맞물려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평을 얻었다.

이승환은 “세월호를 의도하면서 쓴 곡은 정말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많은 분들이 자신의 상황에 대입해서 해석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건, 뮤지션으로서 느끼는 보람 중 하나”라며 해석의 여지를 열어 놨다. 그는 “내가 뜻했던 내용과 다른 해석이 나온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걸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 그 또한 괜찮은 일이다”고 말했다.

이승환과 ‘차카게 살자’ 창단 멤버들/사진 제공=이승환 페이스북
이승환과 ‘차카게 살자’ 창단 멤버들/사진 제공=이승환 페이스북
#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착한 사회”

언제부턴가 이승환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상식에 기반을 두고 얘기하고 느낄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면서 말이다. 지난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 문화제 무대에 올랐던 것을 시작으로, 용산 참사 유가족 돕기 공연, 외규장각 반환 콘서트, 언론 노조 집회 등에 꾸준히 참여했다.

이승환의 신호는 때론 ‘착하게 살자’는 메시지로 나타나기도 했고, 때론 ‘가만히 있으라’는 노래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방송인 김제동, 만화가 강풀, 영화감독 류승완, 기자 주진우와 함께 ‘차카게 살자’라는 이름의 기부 재단을 설립한 그는, “다른 사람의 슬픔을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착하게 사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사회는 상식이 아닌 것들에 길들여지고 있어요. 마치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죠. 국정 교과서 반대 콘서트 이후에 실제 댓글부대가 어떤 프레임을 갖고 저를 공격하는 게 느껴져요. 그게 인정되는 세상은 잘못된 거죠. 저는 그걸 바로 잡고 싶은 마음이고요. 착하게 사는 게 무엇이냐고요? 다른 이의 슬픔에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착한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승환/사진 제공. 드림팩토리
이승환/사진 제공. 드림팩토리
# 이승환의 신호에, 응답하라

이승환은 또한 뮤지션으로서도 유의미한 신호를 보낸다. 대중은 물론,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후배 뮤지션들, 나아가서는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될지 모르는 후세의 사람들에게까지 말이다. 음악에 대한 투자를 멈추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폴 투 플라이-전’ 음반에는 녹음에만 3억 7,000만 원이 들어갔고, 신곡 ‘10억 광년의 신호’ 제작에는 1억 이상이 들어갔다. 이승환은 “이대로라면 ‘폴 투 플라이-후’ 음반에는 10억 이상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음반이 망한다면 나는 정말 (가수 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유의미한 신호다. 배철수는 ‘폴 투 플라이-전’ 발매 당시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사운드”라고 칭찬했다. 이승환은 이 음반으로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그는 “훗날 누군가 ‘이승환 아저씨, 혹은 이승환 할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음악을 시작했노라’고 말하는 소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음악”이라고 말했다.

이날 쇼케이스 현장에 모인 관객들은 이승환의 사회 풍자적 발언에 환호를 보냈고 노래 마다 ‘떼창’을 채워 넣었다. 뜨거운 응답이 있었기에, 이승환이 보낸 신호는 통신이 되고 소통이 됐다. 그가 보내는 신호에, 다시 한 번 응답하라.

이은호 기자 wild37@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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