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에피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 이 글에는 일부 셋리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른 봄과 늦은 겨울이 엎치락뒤치락 씨름을 하던 때였다. 전날의 추위에 겁을 먹고 두툼한 점퍼를 입고 나왔던 그 날은, 뜻밖에도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다. 부스럭거리는 점퍼의 마찰음이 괜히 민망했던 날. 봄이 움트고 있었다.

지난 26일 서울 강북구 번동에 위치한 꿈의 숲 아트센터에서는 차세정 원맨밴드 에피톤 프로젝트의 소극장 공연 ‘이른 봄’이 열렸다. 무대 위에는 모형 벚나무가 자리했고 간간히 새 소리도 울렸다. 차세정은 조용히 무대에 올라 ‘봄날 벚꽃 그리고 너’의 연주를 시작했고, 이어 ‘손편지’, ‘선인장’을 연달아 불렀다. 공연은 온 몸으로 봄의 도래를 노래했다.

“제 노래에는 유독 봄이 좀 많죠. 제 음악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계절이 봄이 아닐까 생각해요. 오늘은 조금 쌀쌀한 날씨로 출발했는데, 공연을 마칠 쯤에는 지나가는 거리거리마다 꽃들이 만발해 있을 것 같아요.”
에피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 역시 봄과 비슷했다. 달큼하고 간지러웠다. “제주도 가고 싶네요”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유채꽃’은 ‘시차’, ‘눈을 뜨면’으로 이어졌다. 차세정은 ‘눈을 뜨면’을 부르면서 “얼마 전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던 기타 연주를 들려주기도 했다.

“기타를 배운 지 몇 달 안 됐어요. 잘 친다고요? 절이라도 드리고 싶네요.(웃음) 아마 이 공연이 끝날 쯤에는 능수능란하게 치고 있지 않을까요. 기타로 만드는 곡은 멜로디가 더 시원시원하게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앞으로 좋은 노래를 만들려면 기타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연이 열린 꿈의 숲 아트센터 퍼포먼스홀은 300여 석 규모의 소극장이었다. 관객과의 거리가 가까운 만큼, 차세정은 적극적으로 소통에 나섰다. 객석에서 들리는 사소한 말에도 귀를 기울였고 작은 웃음에도 반응을 보였다. 그는 즉석에서 요청을 받아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걸그룹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을 짧게 선보이기도 했다.
에피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새 앨범 미리듣기 시간도 마련됐다. 차세정은 새 앨범에 수록될 신곡 ‘러브드(Loved, 가제)’을 이날 공연에서 처음으로 공개했다. 감미로운 피아노와 애달픈 목소리가 어우러져 가슴 아픈 발라드곡을 탄생시켰다. 차세정은 “노래, 괜찮죠?”라고 조심스레 물었고 관객들은 우렁찬 박수소리로 화답했다.

“공연이 끝나면 저는 아마 다시 앨범을 만들러 가야겠죠? 다음 앨범은 사랑을 주제로 한 앨범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사랑했던 사람,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 앨범 작업을 위해 여행도 조만간 떠날 계획이에요. 어디로 가냐고요? 그건 비밀입니다. 하하.”

공연은 봄의 설렘을 지나 사색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차세정은 차분하게 공연을 이끌며 관객들의 내면 깊숙이 침투했다. 김윤아의 ‘야상곡’ 커버에 이어 ‘이화동’, ‘환기’, ‘새벽녘’ 등이 울려퍼지자 여기저기서 눈물을 닦는 관객들이 보였다. ‘다음날 아침’에서는 탱고의 열기가 마음을 홀렸고, ‘나의 밤’에서는 멜로디언 연주가 애잔하게 이어졌다.

차세정이 그려낸 ‘이른 봄’, 그 안에는 설렘과 희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깊은 그리움 속으로 관객들을 침잠시키는 시간이었다. 한참을 상념에서 허덕이다보니, 다시 마주한 공기가 더없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봄이 움트고 있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세상의 좋은 음악들, 많이 들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사랑하고 계신 분들은 더욱 사랑하시고, 다들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파스텔뮤직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