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오케피
오케피
뮤지컬 ‘오케피’가 진짜 원하는 것, 그러니까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무엇일까.

‘오케피’는 오케스트라피트의 줄임말로, 일본 유명 극작가 미타니 고우키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컨덕터(오만석/황정민)를 비롯, 오보에(서범석/김태문), 바이올린(박혜나/최우리), 하프(윤공주/린아), 트럼펫(최재웅/김재범), 색소폰(정상훈/황만익), 피아노(송영창/문성혁), 비올라(김원해/김호), 첼로(백주희/김현진), 기타(육현욱/이승원), 드럼(남문철/심재현), 바순(이상준), 퍼커션(정욱진/박종찬) 연주자 등 총 13인의 단원이 등장해, 오케피 아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여준다.

‘오케피’는 연극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 막이 오른 지 20여 분 만에 첫 넘버가 등장할 만큼 대사가 많다. 덕분에 각 배역들은 빠르게 자신의 캐릭터를 관객들에게 인지시키고, 캐릭터에 기반을 둔 개그 코드는 높은 명중률을 자랑하며 객석에 날아든다. 특히 트럼펫 연주자 역의 김재범 배우는 좋은 캐릭터와 좋은 배우가 만난 좋은 예. 능청스러운 그의 연기에 관객들은 금세 매료되고, 나중에는 그의 작은 움직임에도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다.
오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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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먼저 쇼 적인 요소에 충실한 인물. 색소폰, 첼로, 기타, 바순, 드럼, 비올라 연주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눈 여겨 볼 사람은 바로 비올라 연주자 역의 김호 배우. 그는 3등신의 앙증맞은 몸매로 무대를 누비며 쫄깃한 안무를 보여준다. 극 중 존재감 없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단 한 곡의 넘버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가 하면 피아노, 오보에, 하프, 바이올린, 트럼펫, 퍼커션 연주자, 그리고 컨덕터는 극의 드라마를 담당한다. 실수투성이 피아노 연주자는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인간미로 단원들의 마음을 녹이고, 난생 처음 오케피에 선 퍼커션 연주자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 괴로워한다. 남의 일에 관심 없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던 오보에 연주자는 특별한 만남을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마지막으로 하프, 트럼펫, 바이올린 연주자와 컨덕터는 얽히고설킨 사각관계로 나름대로의 성장을 이뤄낸다.

다만 이들의 성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지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각 인물의 이야기가 하나의 서사로 통일되지 않는 만큼,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단계를 착실히 따르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의 내적 갈등과 극복이 난데없이 절정으로 치닫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몇 가지 사건들을 통해서 이곳 사람들에겐 약간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막이 오르기 전보다 조금씩 성장하고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는 확신에 찬 컨덕터의 대사는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더불어 2막 후반부 단원 모두가 뜻을 모아 무대 위 배우들과 맞서는 장면 역시 극의 흐름과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뭔가 떠들썩하게 지나가긴 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금방 와 닿지 않는다.
오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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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재관람 욕구를 자극하는 건 바로 배우들의 호연이다. 앞서 연출자 황정민 역시 ‘오케피’의 캐스팅을 영화 ‘오션스 일레븐’에 비유하며 자신감을 보였던 터. 모든 배우들이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 특히 컨덕터 역으로 무대에 오른 오만석은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카리스마로 감칠맛을 더한다. 심지어 길게 기른 머리, 소매를 걷어붙인 연미복 등을 통해 섹슈얼한 매력까지 어필한다. 여기에 클래식, 재즈, 펑키, 발라드, 탱고 등 다채로운 장르의 넘버, 세련되고 여성적인 감성의 무대 디자인은 듣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동시에 더한다.

국내 초연되는 ‘오케피’는 오는 2월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샘컴퍼니, 조슬기 기자 ke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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