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Callahan_byInigoAmescu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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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는, 2014년을 한 달 남겨둔 11월의 마지막 주가 뎅기 피버(Dengue Fever)와 빌 캘러핸(Bill Callahan)이 각각 첫 내한공연을 가진 한 주로 기억될 것이다. 국내에는 그리 알려진 바가 없지만 해외에서는 상당한 찬사를 얻고 있는 이들이 내한한다는 소식을 미리 들었다. 사실 이들의 음악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다. 국내에 음반이 제대로 소개된 적도 없으며, 음원사이트에도 이들의 노래는 없었다.(뎅기 피버는 최근 비트볼뮤직을 통해 한국 특별판 에디션이 발매됐다) 하지만 “무조건 봐야 하는 공연”이라는 주위 ‘선수들’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는 못 볼 수 있는 공연이기도 했고.

24일 오후까지만 해도 제이슨 므라즈의 내한공연을 보러 갈 계획이었다. 므라즈의 공연이 열리는 세종문화회관으로 이동하는 길에 “오늘 홍대 곱창전골에서 뎅기 피버의 공연이 열린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 말이 나에게는 “허니버터칩 한 박스를 가지고 있으니 어서 가져가라”는 말로 들렸고, 별 고민 없이 홍대로 향했다.

곱창전골에는 뎅기 피버를 보기 위해 몇 십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업계사람들, 그리고 뮤지션들이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양평이 형)는 “이 좋은 공연에 이렇게 관객이 없다니”라며 슬퍼했다. 하지만 좋은 건 우리끼리만 보면 된다. 맥주 한 잔을 마시니 심장박동이 급격히 빨라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뎅기 피버는 인기 예능프로그램 ‘SNL코리아’의 ‘GTA’ 시리즈에 깔리는 뽕짝 비슷한 음악의 주인공이다. 미국인 멤버들과 캄보디아 출신의 보컬리스트 츠홈 니몰이 만나 상당히 독특한 음악을 들려준다. ‘사이키델릭 뽕짝’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 밴드의 주축인 에단 홀츠만, 잭 홀츠만이 상당한 캄보디아 록 팬이라고 한다. 킹크스의 레이 데이비스는 뎅기 피버에 대해 “레드 제플린과 블론디 사이의 교차점에 위치해있다”라고 한 말은 귀를 솔깃하게 하지만, 공감은 가지 않는다. 어쨌든 뎅기 피버는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음악인 것은 분명했고, 해외 주요 매체들의 극찬 세례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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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본 공연은 기대했던 데로 놀라움에 연속이었다. 츠홈 니몰의 구음으로 시작된 음악에 플루트, 서프 기타 소리가 얹어지자 상당히 주술적인 사운드가 완성됐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데이빗 레리크가 포켓 트럼펫(작은 트럼펫으로 주로 프리 재즈 연주자들이 사용)을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 여기에 오르간이 깔리자 환각을 부르는 ‘싸이키델릭 뽕짝’이 완성됐다. 딜레이 이펙터가 걸린 색소폰이 질펀한 연주를 퍼붇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가슴을 후비고, 뇌도 후비고, 하반신 어딘가도 후비는 그런 음악이었다.(술을 마셨기 때문일까?) ‘SNL코리아’에 삽입된 ‘인터그레이션(Integration)’이 흐르자 객석의 함성이 커졌다.

모 기획사 대표가 이 공연을 봤다면 “이거 뭐지?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야. 이거 뭐야. 어느 별에서 왔지? 이 정체는?”이라고 평을 남겼을까? 하지만 뎅기 피버의 음악은 60~70년대 우리네 가요와 상당히 닮아 있었다. 음악을 듣고 있자니 신중현의 음악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실제로 이들은 앵콜에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함께 신중현이 만든 김정미의 곡 ‘가나다라마바’를 합창했다.

뎅기 피버가 첫 한국공연을 가진 것에는 나름 사연이 있다. 지난 9월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만나 함께 공동 앨범을 녹음했고 현지에서 공연도 가졌다. 일본의 유명 인디레이블 피바인(P-VINE) 출신의 프로모터 코키 야하타 씨가 뎅기 피버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공동 작업을 조율했다. 코키 야하타는 2004년 비트볼뮤직이 기획한 몽구스와 스트로베리TV쇼의 일본 공연을 보고 한국에도 인디 신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장기하와 얼굴들 등 여러 한국 팀의 해외 활동을 돕고 있다. 힙스터들이 사랑하는 레이블로 유명한 비트볼뮤직은 뎅기 피버의 한국 특별판 앨범 ‘스왈로우 더 썬(Swallow The Sun)’을 라이선스로 발매했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함께 한 앨범은 내년 초에 발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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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캘러핸이 한국에 온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외에서는 이미 거물 아티스트로 떠올랐지만 국내에서는 무명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국의 음악지 모조(MOJO)는 2013년 음악계를 결산하면서 빌 캘러핸의 앨범 ‘드림 리버(Dream River)’을 ‘올해의 앨범’ 1위로 발표했다. 그 이전에 ‘NME’는 빌 캘러핸의 2009년 앨범 ‘섬타임즈 아이 위시 위 워 언 이글(Sometimes I Wish We Were An Eagle)’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500선’안에 포함시켰다.

빌 캘러핸의 공연을 주최한 김영혁 대표는 “빌 캘러핸의 중국 5개 도시 투어가 잡히면서 한국 공연도 가능해졌다. 그렇지 않고는 꿈도 꿀 수 없는 내한공연”이라고 말했다. 빌 캘러핸의 음악은 국내 음원사이트에서도 아직 들어볼 수 없다. 원래 모 인디레이블 직원이 정식으로 수입해보자고 제안했는데 회사 대표가 도시락 싸고 다니면서 말렸다고 한다.

27일 서교동 KT&G상상마당에서 열린 빌 캘러핸의 첫 내한공연에는 약 250명의 관객이 몰렸다. 백현진 & 방준석, 김목인이 오프닝을 맡았다. 무대에 오른 김목인은 “빌 캘러핸이 기타를 빌려달라고 해 바로 기타 줄을 갈았다. 줄이 늘어지지 않도록 이틀간 열심히 연주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무대에 오른 빌 캘러핸은 김목인의 클래식기타를 들고 또 다른 기타리스트 맷 킨지와 함께 단둘이 무대에 올랐다. 무덤덤하게 노래를 시작하자 마치 공연장의 공기가 바뀌는 듯했다. 빌 캘러핸의 낮게 깔린 음색은 조니 캐시, 또는 루 리드, 톰 웨이츠를 떠올리게 했다. 맷 킨지의 딜레이가 강하게 걸린 기타가 함께 하자 마치 관객들의 기운을 쭉 빨아들이는 듯했다.

캘러핸의 음악은 복잡합 화성, 리듬을 구사하는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이날 연주된 ‘아메리카!(America!)’는 계속 같은 가사와 멜로디가 반복되기도 했다. 그 안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과 같은 것이 있었다. 2인조의 단출한 편성은 캘러핸의 속을 들여다보는데 더 없이 좋은 편성이었다. 캘러핸은 다소 신경질적이고 과묵해보였지만(실제로도 나쁜 남자라고 한다) 노래 중간에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등 나름 팬 서비스를 보였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환호성이 이어지자 “내가 마치 테일러 스위프트가 된 것 같다”라고 농을 건네기도 했다.

이날 현장에 마련된 빌 캘러핸의 음반은 모두 매진됐다. 현장에서 구입한 ‘아포칼립스(Apocalypse)’는 피치포크가 ‘2010년 이후 가장 중요한 앨범 100장’을 선정한 것에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좋았다. 도시락 싸고 다니면서 국내에 라이선스로 발매해달라고 조르고 싶을 만큼 말이다. ‘들어본 적이 없는 음악’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뎅기 피버, 빌 캘러핸과 같은 음악일 것이다. 그런 음악은 발품을 팔고,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다. 보기 좋은 그림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가식 없는 곳에서 말이다.

글, 사진.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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