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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닮았고, 달랐다. 서태지 밴드의 위엄, 그리고 서태지의 익살스런 표정, 장난꾸러기와 같은 동작들은 여전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긴장되고 위축돼 보이는 표정, 그리고 관객에게 존댓말을 쓰는 모습 등은 조금 의외의 광경이었다. 어쩌면 데뷔 후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한 컴백콘서트였다. 본인의 입으로 “한물 간 가수, 별 볼일 없는 가수”라고까지 말하기도 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생생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다. 쉽지 않았겠지만, ‘졸라 빡세게’ 달려준 서태지가 고마웠다.

18일 서태지의 컴백콘서트 ‘크리스말로윈’이 개최된 잠실 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는 할로윈 복장을 한 이들이 보였다. 크리스마스와 할로윈을 결합한 콘셉트에 맞춘 복장이었다. 주경기장 가운데에는 팀 버튼의 영화에 등장할 법한 거대한 성과 같은 무대가 설치됐다. 6시 59분이 되자 스킴의 피아노 연주가 깔리면서 서태지가 등장했다. 발라드로 편곡된 첫 곡 ‘모아이’의 “이 낯선 길 위로 조각난 풍경들”이라고는 가사는 서태지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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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동’은 아이유가 먼저 노래하고 서태지가 이어 불렀다. 둘이 마주보면서 노래를 하는 모습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라. 객석에서는 서태지와 아이유를 외치는 함성이 겹쳐졌다. ‘크리스말로윈’부터는 비로소 록의 향연이었다. 약 17억원의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음향은 실내가 아닌 야외무대인 것을 감안하면 선명한 편이었다. TOP(기타), 강준형(베이스), 최현진(드럼), 닥 스킴(건반)으로 이루어진 밴드의 공격적인 사운드는 관객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서태지는 첫 멘트는 “보고 싶었어요”였다. 이 한마디에서 눈물을 흘리는 팬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너무 오랜만이죠. 오늘 5년 만에 제가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많이 기다렸죠. 한자리 모인 여러분 보니까 좋네요. 그냥. 너무 좋아요. 너무 너무 좋아”라고 말하고 울먹이자 팬들은 “울지 마 울지 마”를 연호했다. 남성들의 함성이 이어지 서태지는 “남탕이야 왜. 나 남자들 되게 싫어하는데”라고 말해며 손을 내저었다.

“여러분 가장 듣고 싶어 했던 곡을 준비했다. 이제 내 모든 걸, 수많은 사람들을 여러분 들려주고 싶다”며 서태지와 아이들 1집에 담긴 ‘내 모든 것’을 연주하자 정말 추억이 방울방울대기 시작했다. “22년 만에 불러본다. 한이 풀렸나? 소리가 별론데? 안 풀렸다고? 안 되겠어”라고 말한 서태지가 몸 한 번 풀고, 한 풀고 갑시다”라며 ‘시대유감’을 선사하자 객석의 관객들은 제자리 뛰기를 하며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공연이 시작된 것 같았다.

‘시대유감’이 연주되자 관객도 몸이 풀렸고, 공연 초반 서태지의 초조한 모습도 걷히는 듯 보였다. 비로소 록 보컬리스트로서 위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전 곡들은 ‘뿅뿅’거리는 신디사이저가 강조된 신스 록으로 편곡이 돼 신선한 감흥을 전했다. 과거의 두 대의 기타가 내던 사운드는 TOP의 기타와 스킴의 건반으로 대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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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은 ‘소격동’ ‘크리스말로윈’ 외에 ‘숲속의 파이터’ ‘잃어버린’ ‘프리즌 브레이크’ ‘나인티스 아이콘(90s ICON)’가 연주됐다. 새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Quiet Night)’의 동화 콘셉트에 맞게 밝은 멜로디를 지니고 있었다. 서태지가 “동화 같다, 아니 동요다”라고 소개한 ‘숲속의 파이터’에서는 인형들이 끄는 마차가 하늘을 날며 정말 동화 같은 풍경이 연출됐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방부제 외모에 어울리는 풍경이었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화려한 전자 사운드로 인해 불협이 느껴지기도 했다. 확실히 신곡들은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신스 록이었다. 기타보다는 오히려 스킴의 신디사이저의 역할이 커보였다.

중반 이후는 구곡들의 향연이었다. “옛날 무드로 돌아가 보자”라며 ‘너에게’를 시작으로 ‘널 지우려 해’ ‘인터넷 전쟁’ 등이 이어졌다. “응사 봤죠? 20여년 만에 ‘너에게’가 리메이크돼 사랑받았어요. 어렸을 때 참 좋아했죠? 여러분 생각 많이 났어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의 꼬꼬마 시절 오리지널을 들려드릴 것”이라고 말한 서태지는 ‘너에게’를 록 버전이 아닌 원곡 그대로 불러줬다. 오리지널 버전으로 들으니 서태지의 목소리, 창법이 예전과는 살짝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어 ‘널 지우려 해’의 피아노 전주가 흐르자 엄청난 환호성이 이어졌다. 이주노, 양현석의 파트는 모두 서태지가 소화했다.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하는 피터팬과 같은 모습은 여전했다. ‘인터넷전쟁’의 전주가 나오자 주경기장은 다시 록 공연장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Jump’라는 서태지의 짧은 한마디에 관객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서태지는 록을 할 때 생기가 넘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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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 ‘교실 이데아’ ‘하여가’를 할 때에는 스윙스, 바스코가 양현석, 이주노를 대신해 서태지 옆을 지켰다. 이 세 곡은 록밴드 버전으로 강하게 편곡됐다. 서태지 옆에 서서 그런지 스윙스는 방송에서와 달리 허세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서태지는 스윙스에게 “방송에서 못한 말 여기서 다 해도 돼. 1집 때부터 록 힙합 댄스 다 섞었는데 그거 좋아하는 사람들만 여기 딱 모인 거야”라고 말했다. 스윙스는 “허세 자랑 그딴 거 없네. 다른 이야기 할 차례지. 서태지 형이 뒤에서 날 보고 있어. 여러분은 창의력 가진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프리스타일 랩으로 보답했다.

‘교실 이데아’에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이 곡에 맞춰 마흔 살이 족히 넘어 보이는 팬들이 몸을 흔드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서태지도, 팬도 나이를 먹었지만 음악은 그대로였다. 신곡 ‘나인티스 아이콘’을 부르기 전 서태지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여러분들이 좋아했던 90년대 스타들 많죠? 우리의 별이었던 스타들과 여러분의 인생도 저물어간다고 생각해요. 한물간 가수, 별 볼일 없는 가수가 들려드립니다”라고 말이다. 본심이었을까? 하지만 이 말보다 “빡세게 달릴 텐데 너희들 괜찮겠니? 모두 일어나, 졸라 빡세다고 ‘졸빡’이라 그래”라고 장난스런 멘트를 던지는 서태지가 훨씬 서태지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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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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