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에서 스타를 촬영 중인 찍덕들
행사장에서 스타를 촬영 중인 찍덕들
행사장에서 스타를 촬영 중인 찍덕들

아이돌 그룹을 주로 대하는 가요 기자로 취재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눈에 띄는 무리들이 있다. 사진 기자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장비를 들고 누구보다 예리한 눈으로 스타를 포착하는 일명 ‘찍덕’들이다. 찍덕은 ‘사진을 찍는 덕후’의 줄임말로 스타들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고화질의 사진이나 영상을 찍는 팬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무대, 공항, 촬영장 등 스타가 있는 곳이라면 공개된 장소뿐만 아니라 접근하기 힘든 장소까지 언제 어디든지 찾아가는 열성팬들이다. 아이돌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며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있지만, 찍덕은 팬덤의 세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애정을 담아 스타들이 빛이 나는 순간을 포착하기 때문에 새로운 팬이 유입되는 경로를 제공하고, 서포트나 팬페이지 활동을 통해 팬덤의 조직력을 공고히 하는데도 일조한다. 이제는 어엿한 하위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찍덕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 찍덕의 등장
찍덕의 등장은 DSLR 카메라가 보급화와 연관이 깊다. 일반인들의 DSLR 카메라 사용이 부쩍 늘어나면서 팬덤에도 영향을 미쳐 찍덕의 등장으로 이어진 것. 찍덕의 규모는 개인부터 단체까지, 목적은 개인 소장에서 공유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찍덕들은 공개 행사부터 비공식적 스케줄까지 일거수일투족을 찍는다. 출근길과 퇴근길이 대표적인 사례다. 출근길은 음악방송 시작 전 출근하는 가수들을 찍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방송 시작 전부터 가수들이 건물 또는 무대로 가는 동선을 파악해 사진을 찍어 게재한다.

MBC의 대표 명절 프로그램 시리즈인 ‘아이돌 육상 대회(이하 아육대)’는 찍덕의 성지로 불린다. ‘아육대’의 경우 녹화시간이 길 뿐 아니라 국내 내로라하는 아이돌이 한 곳에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팬들을 일일이 통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커뮤니티에 ‘아육대’ 직찍(팬이 찍은 가수의 사진)과 직캠(팬이 찍은 가수의 영상)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도 수많은 사진들이 나온다.

# 더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 자리싸움과 선물 공세
좋아하는 가수를 더 가까운 곳에서 찍기 위해 자리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자리 전쟁은 곧 시간싸움이다. 앞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하루 종일, 그보다 더 일찍 며칠 전부터 줄을 서는 경우도 다반사다. 라디오 오픈 스튜디오 촬영이나 콘서트를 앞두고는 A4 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써 바닥에 일렬로 놓고 기다리기도 한다.

간이 사다리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키가 작거나, 앞에 사람들이 많을 경우 간이 사다리를 이용해 올라가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는다. 물론 뒷사람을 배려해 적정한 높이까지만 가능하다. 사진 촬영이 불가능한 콘서트장에서는 검은 레깅스를 렌즈에 씌어놓고 촬영하거나 검은 옷을 입어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음악 프로그램 공개방송에서는 사전녹화보다 본방송을 선호한다. 사전녹화에서는 촬영이 금지되기 때문에 개인 소지품을 들고 가지 못할뿐더러 걸릴 시에 퇴장 당하지만 본방송은 관리가 어렵다. 대부분의 음악방송이 사전녹화로 대체되지만 본방송 때는 카메라가 비추지 않더라도 가수들이 무대로 나와 팬서비스 형식의 무대를 선보이기 때문에 다. 이 틈을 타 셔터를 누른다. 또는 1위 발표 후 엔딩까지의 짧은 시간을 노린다.

스타들의 눈도장을 얻기 위한 선물 공세도 필수다. S급 사진의 경우, 스타들이 카메라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만약 스타가 팬을 알아보고, 그 팬의 카메라만을 위한 포즈를 취해줬다면, S급 사진의 탄생이다. 때문에 찍덕들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스타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기 위한 노력도 곁들어야 한다. 카메라에 일부러 큰 인형을 장식하거나 셀카봉 등 눈에 띄는 도구를 이용하는 것도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다.

팬들이 걸스데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팬들이 걸스데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팬들이 걸스데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 열 전문가 안 부러운 대포여신
대포여신은 찍덕 중에서도 고성능 카메라를 쓰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대포만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모습에서 나온 신조어다. 대포만한 카메라가 불리는 이유는 망원렌즈 때문이다. 망원렌즈를 착장한 경우 먼 거리에서도 바로 앞에서 찍는 것 같은 화질 효과를 느낄 수 있다. 가까운 거리일 경우 가수의 피부상태까지 찍힐 만큼 선명함을 보장한다. 대포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팬들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대포여신’이라고 불리며 열렬한 지지를 받는다. 대표여신의 사진은 ‘날짜+가수’로 검색하면 살펴볼 수 있다.

촬영된 사진은 카메라 LCD화면을 휴대폰으로 찍어 게재한 프리뷰 형식으로 먼저 확인할 수 있다. 팬덤이 클수록 찍덕도 많기 때문에 각도나 포즈가 비슷하면 도용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자신만의 로고가 담긴 워터마크를 부착해 본인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게재한다.

애정이 담긴 사진에 리터칭 과정까지 거치면 웬만한 화보 부럽지 않을 만큼 멋진 장면이 연출된다. 이들은 잘 찍힌 베스트 컷만을 모아 포토북, DVD 등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대포여신의 경우 멤버들이 잘 나오는 각도, 샷, 사이즈까지 고려해 찍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선호한다.

# 유명 가수 뜨는 날이면 대여점도 성황
대포여신들이 가지고 있는 장비는 수백만 원대를 호가한다. 이로 인해 찍덕을 두고 부유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장비를 구매할 여력이 안 되는 경우 대여를 하는 방식으로 여신으로 거듭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망원렌즈는 하루 이용료 3~10만 원 정도를 지불하고 대여가 가능하다.

대형 콘서트의 경우 다수의 유명가수들이 초대되기 때문에 먼저 좋은 렌즈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한 대여업체 사장은 “대부분이 대여자들이 학생들이기 때문에 망원렌즈를 살 여력은 없지만 대여는 비교적 싼 가격에 사용할 수 있어 문의가 많다. 유명가수가 나오는 날이면 렌즈 대여 문의 전화가 빗발친다”라고 말했다.

찍덕이 촬영한 걸스데이 혜리
찍덕이 촬영한 걸스데이 혜리
찍덕이 촬영한 걸스데이 혜리

# 소속사의 입장은?
가수와 소속사도 찍덕을 중요시 여긴다. 한 가수는 방송에서 “요즘 팬들이 찍는 카메라는 화질이 좋다보니 잡티까지 담아낼 정도”라며 “피부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속사는 찍덕이 제작한 상품을 구매, 팬들의 반응을 확인한 뒤 이를 굿즈에 적용하기도 한다.

소속사 입장에서는 찍덕은 양날의 검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찍덕은 그 어떤 사진기자보다도 퀄리티가 좋으면서도 애정이 담긴 사진을 찍기 때문에 고마운 존재다”며 “찍덕의 사진을 통해 또 다른 팬이 유입되기도 하고, 애정의 척도로도 가늠될 수 있어 하나의 문화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난감한 점도 있다”며 “스타들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수입과 연계되는데 찍덕들이 촬영하는 일거수일투족이 소속사가 모르는 사이에 2차 재생산 되면서 굿즈 등 콘텐츠 사업에 손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고 전했다.

팬덤의 세계② 찍덕, “애정을 담아 스타들이 빛이 나는 사진을 찍는다” (인터뷰) 보러 가기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송수빈 인턴기자 sus5@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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