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글렌체크, 이현석, 미쓰에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적, 글렌체크, 이현석, 미쓰에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이적, 글렌체크, 이현석, 미쓰에이(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다시 돌아올 거라고 했잖아, 잠깐이면 될 거라고 했잖아, 여기 서 있으라 말했었잖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中

이적 ‘고독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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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을 맞은 이적은 고독감을 느꼈나보다. 새 앨범에는 제목처럼 고독감이 느껴지는 곡들이 다수 있다.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즐거워 보였는데, 가슴 한 쪽에는 고독감이 있었을까? 그 고독감이 최근 가요계에서 느끼는 소외감이 아닐까 예상해본다. 이적은 패닉, 솔로, 카니발, 긱스 등을 통해 늘 완성도에서 타협이 없는 결과물을 들려줘왔다. 발라드부터 훵크(funk), 록에 이르기까지 음악적인 소화력에서는 솔로 아티스트 중에는 독보적이란 표현을 써도 되겠다. 정규 5집 ‘고독의 의미’에서 이적은 최근 EP 형태의 미니앨범, 싱글시장이 커지면서 음악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있는 가요계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자기 내부의 음악을 촘촘히 쌓은 완성도 높은 음악으로 돌아왔다. 타이틀곡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요 근래 찾아보기 힘든 뜨거운 발라드. 감정이 격하게 터져 나오는 노래로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적의 곡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타이거JK가 랩으로 참여한 ‘사랑이 뭐길래’ 역시 최근 가요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랩 피쳐링의 공식에서 비껴난다. 실험적인 곡들도 눈에 띄는데 정재일이 피아노로 참여한 ‘병’은 패닉 2집 시절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활동 초기에 과감한 음악을 선보였던 이적을 좋아하는 팬들이 반가워할만한 노래.

글렌체크 ‘Y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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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 팝이 대세를 이룬 최근 대중음악계에서 이 계열 최고의 스타는 바로 글렌체크다. ‘글렌체크’라는 이름만 들어도 좋아서 비명을 지르는 여성 팬들이 정말 많더라. 재작년 여름에 한 경연대회에서 3인조로 공연하는 글렌체크의 라이브를 처음 봤다. 당시 이들은 신인 급이었지만 탄탄한 사운드,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선보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글렌체크는 록페스티벌, 댄스 페스티벌 등을 누비며 수많은 여성들의 가슴을 빼앗아버렸다. 이유가 뭐냐고? 공연을 보라. 최근에는 음악박람회 ‘뮤콘’을 통해 세계적인 프로듀서 스티브 릴리화이트의 부름을 받기도 해 해외활동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 정규 2집 ‘Youth’는 2장의 CD로 발매됐다. 밴드 셋으로 이루어진 CD1에는 청량감으로 가득한 복고적인 신스팝이 중심을 이루며, 일렉트로니카로 작업된 CD2는 트렌디한 클럽 음악을 만나볼 수 있다. 글렌체크는 80년대 신스팝에서 최근의 일렉트로팝으로 이어지는 노선에서 매력적인 부분을 명민하게 캐치해낼 줄 안다. 그것을 가지고 제대로 놀기 때문에 열광을 이끌어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

이현석 ‘20th Annivers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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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주 기타의 최고봉 이현석의 데뷔 20주년 앨범.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이현석의 히트곡 ‘학창시절’이 흘렀다. 실제로 이 곡은 1994년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때는 몰랐었지만, 이 노래는 가요의 멜로디에 하이 테크니컬 기타가 삽입된 ‘아스트랄’한 편곡을 지닌 곡. 네오 클래시컬 메탈을 록의 불모지에서 재현해낸 초절기교 속주 기타의 일인자 이현석을 알렸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있는 노래다. 작년 한국 최고 기타리스트들이 모인 ‘12지신(12G神) 콘서트’에서 이현석이 폴 길버트 곡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는 무시무시한 곡 ‘테크니컬 디피컬티스(Technical Difficulties)’를 가볍게 연주해내는 것을 보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이 나이 먹고 이렇게 연주하는 것이 나도 신기하다”라고 말하지만 외모는 아직도 청년. 2장의 CD로 된 20주년 앨범에는 예전 곡 28곡이 새로운 편곡으로 담겼으며 신곡 4곡이 더해져 총 32곡이 수록됐다. 신곡 ‘개털이야’의 “메탈 하다가 우리 완전히 개털이야, 조금 참아봐 언젠가는 모두 빅토리야”라는 가사는 메탈 뮤지션들과 메탈 팬 모두의 가슴을 울리지 않을까? 물론 이 앨범이 진짜 감동적인 이유는 신곡에서 느껴지는 수려한 악곡, 그리고 여전히 천의무봉인 이현석의 면도날 기타다.

미쓰에이 ‘H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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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에이가 넘어야 할 벽은 원더걸스도, 소녀시대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들의 데뷔곡 ‘뱃 걸 굿 걸’이었다. 이 노래가 단번에 가요차트 정상에 오르며 탄탄대로가 펼쳐진 듯했고, 수지가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정작 미쓰에이는 ‘뱃 걸 굿 걸’ 이상의 인기를 맛보지 못했다. 정규 2집이 중요한 분수령이 되야 하는 상황이다. ‘허쉬’에는 이례적으로 박진영 JYP 프로듀서의 신곡이 단 한 곡도 없다.(구곡 두 개 수록) 타이틀곡은 소녀시대 ‘Gee’ 성공신화를 이룬 이트라이브가 만든 ‘Hush’. 재밌는 점은 사전정보 없이 들을 경우 ‘Hush’가 박진영이 만든 곡으로 느껴진다는 것.(편곡은 박진영이 했다) 하지만 ‘Hush’를 제외한 다른 곡들은 박진영이 만든 음악들과 상당히 다르다. ‘(Mama)I’m Good’의 경우 기존 미쓰에이의 앨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곡이다. 앨범 전반적으로 밴드 사운드가 강조된 것도 기존 노래들과 차이. 또한 남자 없이 잘 산다던 이들이 사랑을 구애하게 된 가사도 전과 다르다. 음악과 퍼포먼스에서 전보다 성숙한 여성 냄새가 나는 것은 반가운 점.

타카피 ‘본격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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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 1세대 펑크록 밴드 타카피가 4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6집. 15년차 밴드로 인디 계의 맏형인 타카피. 크라잉넛, 노브레인 등과 함께 ‘조선펑크’의 파수꾼으로 오랜 시간 달려왔다. 밴드의 프론트맨 김재국은 멤버가 바뀌는 상황에서 끈질기게 팀을 이끌어왔다. 2008년에는 프로야구 테마송 ‘치고 달려라’ 시리즈를 통해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본격인생’은 2016년까지 기획된 다섯 장의 시리즈 앨범 중 첫 번째 앨범이라고 한다. 타카피의 2막을 장식하는 앨범으로 치고 달리는 강렬한 에너지가 잘 살아있다. 앨범의 멜로디는 밝지만, ‘1분만 들어봐 1분이면 돼 멜론 맛 도시락 맥도날드 감자튀김처럼 팔아먹어라’라는 가사로 ‘스톱 덤핑 뮤직(Stop Dumping Music)’(음원정액제 반대 캠페인)을 노래하기도 한다. 4분을 넘는 ‘위대한 항해’는 ‘짠’한 여운을 남기는 곡. 대선배 들국화에게 헌정하는 ‘들국화의 행진’도 담겼다.

소히 ‘데이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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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싱어송라이터 소히의 정규 3집. 소히는 2006년 ‘앵두’로 보사노바 음악을 선보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인디 신에 보사노바를 접목한 스타일의 곡은 많지 않았다. 이 ‘앵두’라는 곡은 단순히 보사노바를 차용한 것을 넘어서 브라질 대중음악 MPB(Musica Popular Brasileira) 특유의 어감을 잘 살린 가사로도 주목받았다. 보사노바로 시작해 MPB에 경도된 소히는 재즈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푸른곰팡이로 자리를 옮긴 후 나온 새 앨범 ‘데이케어’에서는 재즈의 색이 강해졌으며 보다 성숙한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카를로스 조빔의 곡을 커버한 ‘So Tinha De Ser Com Voce’를 제외하고 모두 소히의 자작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믹싱과 프로듀싱까지 소히가 소화했으며 고찬용, 버드의 김정렬 등 든든한 소속사 선배들이 힘을 보탰다. ‘오늘 저녁 한 끼는 떡볶이로 때워볼까’라는 소박한 가사를 MPB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것이 소히의 미덕이다. 이국적인 리듬에 실려오는 우리네 이야기.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 ‘Black Radio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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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즈 연주자 중 꽤 ‘강골’인 흑인 연주자들은 재즈를 재즈라 부르지 않고, 흑인음악(Black Music)이라 지칭하는 이들도 있다. 재즈라는 ‘용어’ 자체에 백인들의 편견이 들어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는 순수한 흑인음악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재즈와 소울, 그리고 힙합의 만남이 얼마나 유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창의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줬다고 할까? 이번 앨범은 그래미상을 수상한 전작 ‘Black Radio’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재즈적인 방법론을 강조했다면, 이번 앨범은 흑인음악이니 소울에 무게를 두고 있다. 덕분에 전보다 팝적으로 들리기도 하는데 실험적인 음악을 기대한 이들에게는 조금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이 카니에 웨스트, 자넬 모네와 함께 첨단의 흑인음악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라 해서웨이를 포함해 커먼, 페이스 에반스, 노라 존스, 스눕 독, 에밀리 산데, 브랜디 등이 앨범에 참여했다. 노라 존스는 ‘Let It Ride’에서 의외로 밀접한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다.

제임스 블런트 ‘Moon La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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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나온 제임스 블런트의 노래 ‘You’re Beautiful’의 인기는 실로 대단했다. 국내에서의 인기도 대단했지만 미국 빌보드차트에 엘튼 존의 ‘캔들 인 더 윈드’(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재발표, 즉 순수한 노래의 힘으로 정상에 올랐다고 보기 힘들다) 이후 무려 8녀 2개월 만에 1위에 오른 영국 가수 의 노래라는 점이 더 대단했다. 제임스 블런트는 이러한 성공과 상관없이 자신의 음악 노선을 꾸준히 지켜왔다. 코소보 평화유지군으로 군 생활을 한 블러트는 전쟁의 참극을 경험하고 이를 바탕으로 진지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새 앨범에서도 여전히 미성으로 진지한 노래들을 들려주고 있다. ‘Miss America’는 작년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휘트니 휴스턴을 추모하는 곡. 이밖에 ‘Blue on Blue’ 등 수려한 팝이 담겼다.

클래시 ‘The Clash Hits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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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 중 한 팀으로 꼽히는 클래시(Clash)의 베스트앨범. 클래시는 뉴욕과 런던에서 차례로 생겨난 펑크록의 음악적 틀을 확장시킨 것으로 평가받는다. 무엇이 그렇게 위대하냐고 물으면 그냥 ‘London Calling’을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보다 더 선동하는 노래가 존재할까? 섹스 피스톨즈가 에너지의 분출이었다면, 클래시는 음악적인 진지함을 바탕으로 로큰롤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번 베스트앨범은 1982년 브릭스턴 아카데미 공연의 셋 리스트에 대표곡 8곡을 더해 32곡을 편집해 담았다. 라이브 음원은 아니지만, 리마스터링을 통해 새로운 질감의 음악으로 재탄생했다. 영원한 록의 찬가 ‘London Calling’으로 시작해 ‘Train Vain’, 커버 곡 ‘Police & Thieves’, 마지막 앨범 ‘Combat Rock’에 담긴 Rock The Casbah’ 등 클래시의 대표곡들을 들어볼 수 있다.

비틀즈 ‘On Air - Live At The BBC Volum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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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가 활동 초창기 영국 공영방송 BBC에 출연해 연주했던 라이브 음원을 편집한 앨범. BBC 방송음원을 편집한 앨범이 나온 것은 1994년 ‘라이브 앳 더 비비시(Live At The BBC)’ 이후 19년 만이다. 이듬해인 1995년에는 존 레논의 미발표곡인 ‘Free As A Bird’, ‘Real Love’를 비롯해 예전 테이크들을 담은 앤솔로지 시리즈 석 장이 나오면서 비틀즈 붐이 다시 일기도 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비틀즈 편집앨범이 존재한다. 60여곡이 실린 이번 편집앨범의 특징이라면 초창기의 비틀즈가 척 베리, 버디 홀리, 그리고 모타운의 음악들을 카피한 버전들을 다수 들어볼 수 있다는 점. 천재이기 이전에 꿈과 열정을 가진 풋풋한 시기의 비틀즈를 접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로큰롤을 연주하는 모습은 익숙하지만, 마블렛츠의 ‘Please Mister Postman’과 같은 곡을 노래하는 것은 색다른 느낌을 준다. 비틀즈도 카피를 엄청나게 해댔다는 증거. 출발점은,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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