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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은 없었다.

13일 반포동의 한 카페에서 열린 정규 5집 ‘고독의 의미’ 감상회에서 들어본 음악은 ‘이적 종합선물세트’라 할만 했다. 이적이 패닉 때 보여줬던 실험적인 음악부터, 솔로에서 들려준 감성적인 발라드 그리고 트렌디한 곡들도 있다. 현장에서 총 10곡을 연달아 들어보니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집중해서 듣게 하는 응집력도 여전하다. 이적은 ‘앨범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

앨범의 첫 곡이자 타이틀곡인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은 요 근래 찾아보기 힘든 뜨거운 발라드. 감정이 격하게 터져나와 가슴을 뜨겁게 한다. 한 번 들어서는 쉬 멜로디가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곱씹어 들을수록 곡의 진가가 우러나온다.

트렌디한 곡으로는 타이거JK가 랩으로 참여한 ‘사랑이 뭐길래’를 꼽을 수 있다. 댄서블한 록의 리듬 위로 이적의 노래와 타이거JK의 랩이 자연스럽에 어우러진다. 최근 랩 피쳐링이 유행이지만 이적은 단순히 노래 위에 랩을 얹는 수준이 아니라 타이거JK의 랩과 유연한 앙상블을 보인다. 트렌드를 반영하되 상투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십 년이 지난 뒤’는 비틀즈를 오마주한 곡이다. 듣자마자 비틀즈의 ‘화이트앨범’에 실린 ‘줄리아(Julia)’의 도입부가 떠오르는 곡. 멜로디뿐만 아니라 곡의 믹싱, 악기의 배치에 있어서도 비틀즈 풍의 분위기가 엿보인다. 이적의 매력 중 하나는 음악 곳곳에서 팝의 고전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정인과 듀엣 곡인 ‘비포 선라이즈’ 역시 90년대 풍의 이지리스닝을 연상케 한다. 이 곡은 두 남녀가 과거의 사랑을 그리는 묘한 무드를 가진 곡. 성인들이 공감할만한 가사라는 것이 최근 듀엣 곡과 다른 점이다. 이적은 패닉 시절 삐삐밴드의 이윤정과 함께 한 ‘불면증’, 솔로앨범에서 김윤아와 함께 한 ‘어느 날’에서 약간은 기괴한 감성의 듀엣을 연출한 바 있다. 그와 비교하면 정말 듣기 편안한 곡인 셈. 이외에 ‘뜨거운 것이 좋아’, ‘숨바꼭질’에서는 로킹한 사운드가 돋보인다.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은 심각한 곡들이 기다린다. ‘뭐가 보여’, ‘병’과 같은 곡들이 그렇다. 특히 정재일이 피아노로 참여한 ‘병’은 실험적인 앨범으로 평가받는 패닉 2집 시절의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활동 초기에 과감한 음악을 선보였던 이적을 좋아하는 팬들이 반가워할만한 노래다. ‘뭐가 보여’와 ‘병’에서 이적의 목소리는 의도적으로 낮게 깔려 약간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앨범 제목과 동명의 곡인 ‘고독의 의미’는 일렉트릭 기타의 아르페지오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곡이다. 기타 톤부터 고독함이 느껴지는데 그 뒤로 섬세한 전자음들이 포개져 섬세한 그림을 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앨범에서 가장 수려한 멜로디를 가진 곡이기도 하다.

이적의 5집 ‘고독의 의미’의 미덕은 앨범 자체로서의 완결성이다. 다양한 스타일이 담겼지만, 싱글모음집이 아닌 하나의 앨범 색이 느껴지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일상의 BGM으로서가 아니라 집중해서 듣게끔 하는 음악이다. 최근 EP 형태의 앨범, 싱글시장이 커지면서 음악이 빠른 속도로 소비되고 있는데, 이적은 그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촘촘히 쌓아서 들고 나온 것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를 ‘풀 랭스(full length) 앨범’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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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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