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주는 월요일 선우정아의 공연으로 시작해 토요일 이승열의 공연으로 끝을 맺은 한주였다. 이승열의 ‘V’, 선우정아의 ‘It’s Okay, Dear’는 올 상반기에 나온 앨범 중 눈에 띄게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평단의 호평이 상업적인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음악에 대한 치열한 탐구, 노력은 청자의 가슴을 울리기 마련이다. 신발이 젖을 정도로 많은 비가 쏟아졌지만, 이 둘의 공연은 반드시 보러 가야했다.

둘의 공연은 공통점이 있었다. 음악 외적인 요소를 동원해 앨범에 담긴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는 점이다. 선우정아는 약간의 연극적인 요소를 더했고, 이승열은 각 곡에 맞는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색다른 체험을 가능케 했다. 실력파 뮤지션들답게 앨범보다 라이브에서 훨씬 더 큰 감동을 선사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선우정아로서는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무대여서 의미가 컸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이승열은 음악적 성정이 만개한 모습을 보여준 자리여서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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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는 지난 8일 도곡동 EBS 사옥 내 스페이스 홀에서 음악 프로그램 ‘스페이스 공감’ 녹화 차 공개 라이브를 가졌다.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무대 장악력이 대단했다. ‘Purple Daddy’, ‘당신을 파괴하는 순간’ 단 두 곡만으로 처음 보는 관객의 마음을 훔치기에 충분했다. 자신에게 말을 거는 노래 ‘I’m Not So Cool’에서는 거울을 보며 노래를 했다. 자신의 얼굴을 보며 노래하는 기분은 어떨까?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를 노래할 때에는 탈을 썼다 벗었다 했다. 이런 연출이 전혀 작위적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내면의 솔직한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던지기 때문일 것이다.

선우정아는 뭐 하나 유하게 넘기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만들었다는 ‘삐뚫어졌어’를 불러줬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그녀의 노래들은 하나같이 만듦새가 옹골지다. 그녀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투애니원(2NE1)의 ‘아파’, 지디앤탑(GD&TOP)의 ‘Oh Yeah’를 만든 작곡가임과 동시에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 러쉬 라이프의 보컬을 맡고 있다. 이쯤 되면 비교체험 극과 극의 경력. 이러한 다양한 경력에 맞게 그녀는 공연에서 재즈 보컬의 스캣부터 레게, 소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능숙하게 구사했다. 하지만 장르에 얽매이지도 않고 과잉도 없었다. 또한 음악적 테크닉보다 더 눈길을 끌었던 것은 스토리텔링이었다. 노래마다의 진솔한 사연들은 몰입도를 더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이하이에게 준 노래 ‘내가 이상해’도 선사했다. 외로운 여자를 메두사에 빗대서 노래한 곡으로 어린 이하이가 소화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불렀다고. 하긴 어린 소녀라도 메두사의 심정은 짐작할 수 있었을 터. 이처럼 싱어송라이터 이전에 작곡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선우정아의 자전적인 ‘노래 알 수 없는 작곡가’에서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 배부른 소리 하네”라고 노래하는 대목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진심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선우정아는 “‘It’s Okay, Dear’가 1집은 아니지만, 이 앨범으로 솔로활동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내 노래가 아이튠즈에도 올라가 설레더라”고 말하며 소녀처럼 웃었다. 그리고 그녀가 ‘비 온다’를 노래하니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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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은 지난주 12,13일 연건동 홍익대학교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새 앨범 ‘V’ 발매 기념 공연을 가졌다. 공연장을 찾은 금요일에는 빗속에서 샤워를 해도 될 만큼 장대비가 쏟아졌다. 온몸이 축축하게 젖은 찝찝함은 이승열의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자연스레 사라졌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영상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들어왔다. 음산한 분위기 속에서 오마르의 내레이션과 함께 ‘Minotaur’가 시작되자 주술과 같은 음악이 객석을 휘감았다. 앨범의 순서대로 ‘We Are Dying’, ‘Who?’, ‘개가 되고’가 흐르는 가운데 음악과 영상은 점점 일체감을 이뤘고 뮤지션과 관객은 하나가 돼갔다. ‘개가 되고’에서 쓰레기더미, 스티브 잡스, 비틀즈, 오바마 대통령 등의 영상이 흐르자 노래의 의미가 단박에 이해되는 것 같았다.

각각의 곡들은 영상과 함께 하나의 덩어리처럼 유기적으로 흘렀다. 중간에 함부로 박수를 치기 힘든 (영화 중간에 박수 못 치듯이) 그런 분위기였다. 다소 혼란스러웠던 앨범의 메시지는 공연에서 명확해지는 듯했다. 그 와중에 빛난 것이 이승열의 아우라였다. 기타를 칠 때도 노래를 할 때고 그 존재감이 대단했다. 정말 멋진 로커이자, 사내였다. 그의 노래는 때로는 흐느끼다가 어느 지점에서 또렷한 멜로디를 들려줬다. 원곡을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노래는 앨범보다 더욱 매력적이었다. ‘Secretly’의 노래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밴드의 완성도 높은 앙상블도 인상적이었다. 4인조 기본 밴드 편성에 베트남 연주자 프헝의 단보우, 오마르의 보컬이 앙상블을 이룬 라이브는 앨범의 사운드를 훌륭하게 재현했다. 프헝의 단보우 연주는 매 곡의 테마를 더욱 단단하게 해줌과 동시에 다채로운 색을 입혀줬다. ‘Fear’에서 단보우는 마치 데이빗 길모어의 슬라이드 기타처럼 들렸다. 오마르의 보컬 이펙팅은 곡의 이미지를 결정지을 정도로 강렬했다.

이승열은 “앨범이 나온 지 한 달 정도가 지났다. 새 앨범에 대해 난해하다고 하더라. 의도한 것은 아니고 만들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노래(Minotaur)에서 ‘추잡하다’고 말하는데 ‘내가 뭐라고 인생이 추잡하다는 말을 거침없이 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내 자신이 부끄럽지 않게 추잡하다는 말을 할 정도가 돼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이승열은 새 앨범은 기존 앨범에 비해 난해한 편이다. 골수팬들에게도 낯설 정도로 말이다. 이승열은 “초심을 지키는 것이 힘들다. 하지만 용기를 내야겠지”라고 말했다.

이승열의 공연을 본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 씨는 “영상이 특히 압권인 공연이었다. 이승열의 진면목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대였다”라고 평했다. 이승열은 자신의 공연을 본 관객들이 즐겁거나 혼란스럽거나 무감각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공연에 집중하면서 즐겁고, 때로는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무감각해지지는 않았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이승열 사진제공.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선우정아 사진제공.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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