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에 걸린 자기 사진을 보고 있는 만프레드 아이허
전시회에 걸린 자기 사진을 보고 있는 만프레드 아이허
전시회에 걸린 자기 사진을 보고 있는 만프레드 아이허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침착한 마음으로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음악을 듣는 연습을 하길 바란다는 겁니다. 프로듀서의 가장 큰 자질이 듣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저는 ‘듣기 예술’도 있다고 믿습니다. 듣기를 통해서 서로의 문명화를 배울 수 있고 서로를 협력하는 방법을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는 표현이 전혀 무색하지 않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레이블 ECM의 창립자이자 대표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70). ECM의 음악들이 들려준 혼이 담긴 사운드만큼이나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ECM을 주제로 한 음악페스티벌과 전시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것을 기념해 국내에 내한한 만프레드 아이허는 2일 인사동 아라 아트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만프레드 아이허가 1969년 독일에서 설립한 레이블 ECM은 블루노트, 도이치 그라모폰 등과 함께 세계적인 음악 레이블로 평가받고 있다.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키스 쟈렛, 팻 메시니 등 재즈계의 스타들을 통해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재즈뿐 아니라 클래식, 민속음악, 현대음악 이르기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한다. 이제는 ECM이란 단어가 하나의 장르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이번 페스티벌과 전시회를 통해서는 ECM의 지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만프레드 아이허는 “이렇게 멋진 전시회와 공연을 마련해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한국에 와서 ECM 음악 감상회를 갖고 여러 분들과 이야기도 나눴다. 참여한 분들이 집중력 있게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전했다.

ECM의 모토라 할 수 있는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The Most Beautiful Sound, Next to Silence)’는 만프레드 아이허가 읽은 한 미국인 작가의 소설에서 가져온 문장이다. 아이허는 “이 문장이야말로 소리를 잘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라고 말했다. ECM이 추구해온 방향성에 대해서는 “궁극적으로 악기의 어쿠스틱한 소리, 소리의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한다. 음악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가진 고유의 소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전음악이든, 현대음악이든 간에 음악을 해석하는 연주자 개인의 의견도 반영되야 한다. 가령 베토벤의 음악은 훌륭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난 음악가들이 모두 똑같은 것을 연주하거나, 비슷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ECM_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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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M은 철저한 장인정신에 입각한 레코딩과 아트워크, 타이포그래피까지 일관성 있는 예술세계를 펼치며 전 세계 음악 팬들을 사로잡았다. ECM을 주제로 한국에서 처음 개최되는 이번 행사에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 기타리스트 랄프 타우너, 비올리스트 킴 카쉬카시안 등이 무대에 오른다. 한국인 보컬로 최초로 올해 ECM에서 음반을 출시한 신예원은 랄프 타우너 공연의 오프닝을 설 예정이다.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서울시향은 안드라스 쉬프, 하인츠 홀리거와 협연에 나선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지휘자 정명훈과 그의 며느리이자 보컬리스트인 신예원도 참석했다. 정명훈의 아들 정선은 현재 ECM의 프로듀서로 근무 중이다. 정명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가족이다. 이번 행사를 함께 하게 된 것은 둘째 아들이 ECM에서 프로듀서로 일하기 시작했고 며느리가 ECM에서 음반을 내서 우리 가족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며 “만프레드 아이허와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음악을 하면서 친구들끼리 가족끼리 만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이번 행사를 통해 ECM이 한국에 더 잘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명훈은 ECM을 통해 생애 첫 솔로 피아노 연주 앨범을 발표할 계획이다.

공연으로 진행되는 ‘ECM 뮤직 페스티벌’은 3일부터 7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다. 8월 31일부터 11월 3일까지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는 전시회 ‘ECM: 침묵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열린다.

아라아트센터의 총 4개 층 430평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를 통해서는 ECM에서 발매된 음반의 아트워크 등을 세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1,400개에 달하는 ECM 앨범을 하이엔드 급 음향으로 들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며, ECM 본사 아카이브에서 직접 가져온 ECM 소속 연주자들의 희귀 동영상과 인터뷰, ECM의 아름다운 앨범재킷과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한 영상 등을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뮤직 앤 아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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