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시나위, 펩 샵 보이즈, W&JAS(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조커, 시나위, 펩 샵 보이즈, W&JAS(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조커, 시나위, 펩 샵 보이즈, W&JAS(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숨이 멎을 즈음에, 구원의 문을 열고서, 자신 있게 말하지, 나는 너라는 열쇠다
조커 ‘Romi’ 中

조커 ‘Kaleido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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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이 앨범은 새로운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가요에 컨템퍼러리 재즈의 어프로치를 결합하는 정도의 기준 말이다. 조커(이효석)는 이소라, 김범수, 바비킴, 임재범 등 유명 가수들의 앨범 및 라이브 건반 세션으로 활동해왔다고 한다. 대개 이 정도의 정상급 세션연주자들의 경우 실용음악과 등을 거치며 대중음악에 대한 아카데믹한 이해도를 깊이 있게 습득한다. 이는 분명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하지만 필드로 오면 정형화된 음악을 하는 것이 다반사이고, 공부를 많이 한 뮤지션에 대한 반감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조커는 기본적으로 멜로디, 화성, 리듬을 쓰는 데 있어서 기존 가요의 정형화된 틀을 탈피하고 있다. 조커를 더욱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 ‘탈피’를 다분히 음악적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를 되짚어보자면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김현철, 고찬용 등 선배들이 해온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 행보라 수 있겠다. 이 정도로 과감한 어법을 지닌 가요 앨범을 내기까지는 음악적 테크닉 외에 상당한 용기도 필요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한국 최고의 세션 기타리스트인 홍준호는 이 앨범을 녹음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웠을 것 같다.

시나위 ‘Mirrorview’
시나위Mirrorview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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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헤비메탈의 살아있는 전설 시나위가 8대 보컬리스트 윤지현을 영입하고 내놓은 EP. 올해 1월 윤지현이 뽑힌 보컬 오디션 현장에 취재를 갔었다. 임재범, 김종서, 김바다 등 기라성 같은 이들이 시나위를 거쳐 갔으니 아마추어인 윤지현이 성에 찰 리 없었다. 하지만 약 반년 만에 나온 이 앨범에는 신대철과 윤지현은 꽤 조화로운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다. 걱정해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신대철은 “다소 폐쇄적인 20세기 밴드의 느낌에서 21세기 열려 있는 밴드로의 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공개 보컬 오디션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그의 말마따나 새 앨범에서는 록의 새로운 트렌드들이 선보여지고 있다. 사실 시나위는 헤비메탈이란 명함을 지니고 있지만 90년대 이후에는 그런지 록 스타일을 시도하는 등 새로운 조류를 수용해왔다. 이번 앨범에서 일렉트로니카를 차용한 것이 그리 낯선 장면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모니카가 멋지게 들어간 ‘Mirror Room’은 록의 고전적인 품격도 지니고 있다. 최근에 들어본 앨범 중 가장 호쾌하고 멋진 기타연주를 담고 있는 앨범. 신대철은 역시 신대철이다.

W&JAS ‘New Kid In Town’
WnJAS표지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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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제목이 재밌다. W&JAS(더블유 앤 자스)의 EP ‘New Kid In Town’은 배영준, 한재원, 김상훈이 지켜온 오래된 마을에 ‘뉴 키드’ 자스(장은아)가 들어온 것을 일컫는다고 한다. 이들은 웨어 더 스토리 엔즈로 시작해 W, W&WHALE을 거치는 동안 세련된 전자음악과 섬세한 감수성의 최적화된 결합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을 선사해왔다. 이는 W의 세 명이 프로듀서 역할을 할 만큼 역량을 지님과 동시에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최근에 전자음악이 대세가 됐으니 이들이 트렌드를 빨리 선도한 것은 분명하다. 자스가 합류한 신보에서도 기존의 스타일을 이어가고 있으며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별을 쫓는 아이’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OST로 쓰여도 될 만큼 그의 감성과 맞닿아 있다.

펫 샵 보이즈 ‘Electr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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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가 선보이는 21세기형 클럽 음악이다. 주지하다시피 펫 샵 보이즈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의 아버지뻘 되는 아티스트다. 약 8개월 전에 나온 전작 ‘Elysium’에서는 다소 차분한 음악을 선보인 그들이지만, 신보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트렌디한 클럽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댄서블한 가운데 중후함이 있다. 마치 “아이들아 클럽음악도 우리가 하면 이렇게나 품격이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 같다. ‘자신들의 색을 지키면서 첨단을 달리는 것’은 어쩌면 상업 아티스트의 숙원일진데 펫 샵 보이즈는 그것을 몸소 실천해 보이고 있다. 앨범에서 가장 수려한 멜로디를 지닌 트랙 ‘Love Is A Bourgeois Construct’을 들어보면 마돈나의 ‘Hung Up’의 사운드 질감이 떠오른다. 이것은 마돈나 곡의 프로듀서로 참여한 스튜어트 프라이스가 펫 샵 보이즈의 이번 앨범에 참여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사랑 ‘Human Complex Par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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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송라이터 김사랑이 6년 만에 발표하는 정규 4집. 김사랑은 10대의 어린나이로 90년대 후반부터 홍대 신에서 활동을 시작한 인디 1세대 뮤지션이다. 록밴드 청년단체 등을 거쳤으며 솔로로 데뷔해 ‘Feeling’ 등을 히트시키며 세상에 알려졌다. 인디 1세대인 것은 맞지만 그의 나이 이제 고작 서른셋이다. 김사랑은 매 앨범마다 다양한 록 장르를 들려주며 실력을 인정받았으며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새 앨범에서는 트렌디한 전자음악부터 모던록, 어쿠스틱 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첫 곡 ‘Human Complex’를 들으면 “김사랑 이제 일렉트로니카 하나?”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이 곡은 오프닝일 뿐이다. 전반적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는 브릿팝이 성향이 강하게 배어나온다. 앨범에 담긴 여섯 곡을 듣고 있으면 뭔가 아쉬운 여운이 남긴다. 꽉 찬 정규 앨범으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part. 2에서는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로스 아미고스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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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인조 라틴 재즈 밴드 로스 아미고스의 첫 정규앨범. 한국에도 퍼커션 연주자 정정배가 이끈 코바나 등 드물게 라틴 재즈 밴드가 있어왔다. 로스 아미고스의 리더인 황이현은 코바나 출신으로 국내에서는 단연 실력파 라틴 기타리스트로 꼽힌다. 2009년에 결성된 로스 아미고스는 이미 많은 페스티벌과 공연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최근 솔로앨범으로 주목받았던 여성 싱어송라이터 정란도 로스 아미고스의 멤버다. 앨범에는 브라질의 삼바, 쿠바의 살사 등 남미의 다양한 리듬이 충실히 재현되고 있다. ‘Son de la loma’와 같이 스페인어로 메기고 한글가사로 받는 형식이 꽤 조화롭게 들린다. 앨범이 담고 있는 흥겨움은 공연이 주는 감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조정희 ‘In The Depth of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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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희의 목소리를 처음 만난 것은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재즈 음반’을 수상한 바 있는 박근쌀롱의 1집 ‘습관의 발견’에 실린 곡 ‘Road to Me 진담’이었다. 한 번 들으면 잊기 힘든 목소리였다.(이것은 가수에겐 축복이다) 깊은 음색에 반해 실제로 만난 그녀는 쾌활한, 말괄량이로 보이는 성격이었다. 자신의 밴드 ‘3월의 토끼’에서는 재즈가 아닌 트립 합 스타일의 음악을 들려줬다. 몽환적인 목소리는 그런 스타일과도 은근하게 어울리더라. ‘In The Depth of My Heart’는 재즈 보컬리스트로서 처음 내놓는 앨범으로 재즈 스탠더드와 자작곡이 고루 담겼다. 빌리 홀리데이의 곡으로 유명한 ‘God Bless The Child’는 현대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따스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한 곡 정도는 스윙 감이 센 곡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는다.

문미영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
문미영 - 앨범자켓 640
문미영 - 앨범자켓 640
여성 싱어송라이터 문미영의 첫 앨범. 그녀가 지난 10년 간 써온 아홉 곡이 차곡차곡 담겼다고 한다. 앨범재킷은 마치 동화 OST같다.(그런데 동화 OST가 있긴 한가?) 탭댄스 리듬의 첫 곡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와 오르골로 시작하는 ‘태엽 풀린 인형처럼’만 들으면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배경음악처럼 들린다. 하지만 ‘해파리’부터 문미영의 꽤 개성적인 소리가 나온다. 각각의 곡들은 독립된 노래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연극 스코어 같은 느낌을 준다. 문미영에 대한 정보를 찾기가 힘든데, 피아노로 곡을 쓰는 것 같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에서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피스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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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영국 버밍햄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 피스(Peace)는 현재 영국 록계의 떠오르는 신성이다. 영국은 워낙에 록 강국이기에 웬만한 신인은 명함도 내밀기 힘들다. 별 사전 정보 없이 이 앨범의 첫 곡 ‘Higher Than The Sun’을 들었을 때부터 매혹적인 사운드에 푹 빠져들었다. 최근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가진 첫 내한공연에서는 제법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내더라. 물건임에는 틀림없었다. 공연에 앞서 인터뷰를 했는데 젊은 밴드답게 적당히 불량해 보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음악을 못 한다면 꼴불견이겠지만) 망가지며 놀았던 어린 시절을 현명했다고 회상하는 모습도 로커답더라. 앨범 계약도 하지 않았던 때 허름한 집에서 만들고 작은 술집에서 연주했다는 수록곡들은 전곡이 매력적이다. 젊은 에너지가 피어나올 때, 가장 반짝이는 순간에 만든 곡들이 아니겠는가? ‘In Love’를 뛰어넘는 앨범을 낸다면 피스는 거물 록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거물이 돼서 다시 한국을 찾게 된다면 나를 기억해다오.

윌리 문 ‘Here’s Willy Moon’
앨범커버
앨범커버
얼마 전 록페스티벌 ‘슈퍼소닉’에서 윌리 문의 공연을 보는데 상당히 복합적인 감흥을 받았다. 분명 3인조 밴드가 로커빌리를 연주하고 있는데 뿅뿅 전자음이 섞여 나왔다. 헤어스타일, 의상,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은 마치 에디 코크란 같더라.(GQ에서는 2012년 가장 스타일리시한 남성으로 꼽혔다는데…) 한편으로는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배경음악을 무척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뉴질랜드 출신인 윌리 문은 잭 화이트의 제안으로 화이트 스트라입스와 함께 무대에 서기도 했다. 어쨌든 짬뽕 형태의 음악인데, 개인적으로는 이런 식으로라도 클래식 록이 새로운 세대에게 소비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스크리밍 제이 호킨스의 ‘I Put A Spell On You’를 리메이크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엔라이브브 엔터테인먼트, 포니캐년, PMC네트웍스, 플럭서스뮤직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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