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민수-이동휘 /사진 = 텐아시아 사진DB
배우 조민수-이동휘 /사진 = 텐아시아 사진DB
≪최지예의 시네마톡≫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가 영화 이야기를 전합니다. 현장 속 생생한 취재를 통해 영화의 면면을 분석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담긴 글을 재미있게 씁니다.


"서클렌즈 낀 친구들 보면 붕어하고 얘기하는 거 같다."

2012년 10월 SBS 예능프로그램 '강심장'에서 배우 조민수는 색깔있는 서클렌즈를 끼고 연기하는 후배 배우들에게 '렌즈 빼고 연기하라'고 일갈했다.

조민수는 "연기자라는 사람은 주름도 얘깃거리고, 근육이 움직여서 주름이 지고 그럴 때 오는 살아있는 얼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클렌즈 낀 후배들과 연기할 때 "동공이 움직이지 않아서 되게 불편하다. 눈을 보면서 연기하는데 조리개가 전혀 안 움직여서 시커먼 구슬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거 같다"며 "내 감정까지 안 나오니까 서로를 잡아먹는 연기를 하게 된다. 이거만큼은 서로 예의를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우 조민수 /사진 = SBS '강심장'
배우 조민수 /사진 = SBS '강심장'
조민수는 당시 영화 '피에타'(감독 김기덕, 2012) 미선 역을 통해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으로 만장일치의 표를 받았을 정도로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선보였다. '피에타'가 베를린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타게 되면서 실제로 여우주연상 수상은 불발됐지만(황금사자상을 받은 영화는 다른 부문 상을 받지 못하는 규칙이 있다), '피에타'에서 보여준 조민수의 연기는 오늘까지 회자될 정도로 대단했다.

배우로서 큰 획을 그은 조민수의 뼈 있는 일침은 많은 배우에게 큰 경종을 울렸다. 조민수의 발언은 단순히 '서클렌즈'의 문제에서 나아가 작품 속 배우와 상황의 '리얼리티'로 확대됐다.

당시만 해도 잠자리에 든 여자 주인공 얼굴이 풀메이크업 상태라거나, 가난한 여주인공이 언제나 트렌디한 화장에 명품 아이템을 몸에 휘감고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던 시대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뻐 보이고 싶은 여배우의 욕심, 제품 협찬을 통한 홍보 효과를 누리고자 하는 자본의 논리 등이 작품의 리얼리티보다 우선됐던 때였다.

조민수의 이 같은 발언은 당시의 드라마-영화계에 자성의 계기를 제공하며 자정작용을 했지만, 배우의 욕심과 자본의 논리는 호시탐탐 고개를 치켜들었다.

이후에도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배우 송혜교가 연기한 시각 장애인 오영은 눈에 정교한 아이라인을 하고 등장해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SBS '야왕'의 환경단체 간사로 분한 배우 고준희가 무스탕 재킷과 가죽 소품을 착용한 것 역시 문제가 된 바 있다. 이밖에도 여러 작품에서 크고 작은 리얼리티의 문제가 심심치 않게 포착돼 왔다.
배우 이동휘 /사진 = ㈜26컴퍼니
배우 이동휘 /사진 = ㈜26컴퍼니
2012년 조민수가 있었다면 2023년엔 배우 이동휘가 같은 선상에서 유의미한 말을 전하며 다시 한번 배우에게 있어 '리얼리티'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이동휘는 영화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감독 형슬우)에서 몇 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여자친구 집에 얹혀사는 준호를 맡아 연기했다. 이 영화에서 완벽한 맨얼굴의 이동휘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공시생의 리얼 비주얼로 현실적인 연기를 펼쳐 관객들에 인상을 남겼다.

이동휘는 언론시사회에서 "어느 순간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메이크업을 한 제 얼굴을 못 견디겠더라.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닌데 눈썹이 그려져 있거나 틴트가 칠해져 있거나 하면 견디지 못하겠는 강박이 왔다"며 "그래서 이번 작품하면서 메이크업을 거의 안하게 됐다. 카지노에서도 그렇고 최근에 찍고 있는 작품이 그렇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이동휘는 "일단 준호를 표현함에 있어서는 옆에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이동휘는 평소 자신이 좋아한 배우의 작품을 보다 이런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됐다고 했다. 이동휘는 존경하는 배우로 미국의 프랜시스 맥도먼드(Frances McDormand)를 꼽으면서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에서 맥도먼드가 아마존 물류창고에서 일하는데, 영화를 보면 그 분이 배우라는 게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정말 물류창고 직원으로 보인다. 그냥 그 직업의 사람, 그 곳에 원래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배우가 해야할 일 중 1순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또, 최근 촬영한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의 이야기도 전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동휘는 분장실 안 들르니?'라는 말이 있다더라"며 "필리핀의 더위에 녹아내리는 처절한 얼굴. 습한 기운과 더위에서 오는 어떤 에너지가 담긴 얼굴을 표현하려면 풀메이크업은 맞지 않았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이동휘는 "카메라 앞에서 보여지는 배우가 아니라 내 앞에 실제로 느껴지는. 체감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고, 그런 방향의 배우가 되고 싶다"며 웃었다.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것이 좋은 연기라고들 한다. 연기하지 않는 연기가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 그것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은 렌즈가 덮지 않은 눈동자와 굳이 그려넣고 색칠하지 않은 눈썹과 입술일 것이다. 많은 배우들이 조민수와 이동휘의 말을 다시금 곱씹었으면 한다.

최지예 텐아시아 기자 wisdomart@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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