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어려서부터 최류탄 냄새 익숙해…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TEN인터뷰]
"어렸을 때 신촌에 살았어서 최류탄 냄새가 너무 익숙했어요. 일주일에 4-5일을 맡을 정도였으니까요. 동네 아저씨들 나오셔서 응원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생활하기 너무 힘들다 하시는 분들도 많았고. 목욕탕에서 나왔는데 갑자기 거리가 뿌얘서 앞이 안보였던 적도 있어요. 당시 초등학생이었어서 감정적으로 생각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게 일상이 되어 버렸죠.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하면서부터 많은 뉴스를 보게 되고 '어렸을 때 알던 사회적 분위기하고 다른게 많았구나' 생각하며 그때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배우 이정재가 첫 연출을 맡은 영화 '헌트'. 어쩌면 이 시나리오는 그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싶다.

'헌트'는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 분)가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며 펼쳐지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영화 '태양은 없다'(1999) 이후 이정재와 정우성의 재회로 화제를 모은 작품이자,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공식 초청작이다.
이정재 "어려서부터 최류탄 냄새 익숙해…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TEN인터뷰]
감독 데뷔작이기에 어마어마한 부담이 있었다는 이정재. 그는 "굳이 내가 왜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영화에 넣으려 할까. 자칫 잘못했을 때의 비난과 안좋은 영향들이 있지 않을까 공포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라며 "첩보 장르에만 집중해서 현대극으로 만들까 했었는데 도전해볼만한 주제였다. 역사적인 것과 스파이 장르를 결합시키는 데에는 꽤나 어려움이 많았다. 글쓰기를 중단했던 적도 많았다. 포기하려고 여러 번 했다. 내가 뭐라고 개인적인 아집은 아닐까 싶더라. 훨씬 더 글 잘쓰시고 훌륭하신 분들도 못하겠다고 하셨는데 말이다"라고 말했다.

숱한 시나리오 수정을 거치기도 했다고. 이정재는 "주제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시원시원하게 써지지 않더라. 그러다 정치적으로 뉴스가 제일 많이 나올 때 탄핵이나 새 대통령 선출 등 주제가 어느 정도 잡혔다. 사실 정치적인 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양쪽 이야기가 다 옳을 때가 있다. 난 중도 쪽이었는데 국민들이 극명하게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고 주제를 제대로 잡게 됐다. 이런 주제라면 우리가 좀 더 이야기해볼만 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용기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이정재 "어려서부터 최류탄 냄새 익숙해…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TEN인터뷰]
이어 "시나리오 쓰면서 어디에 치우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만약 어디에 치우친다면 쓰면 안된다고 여겼다. 밸런스를 잡는 게 목표였고 고민이었다. 주변 분들에게 모니터링을 하면서 의견을 많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출연과 연출을 동시에 맡았기에 체력적으로도 많은 부담이 됐다고. 그는 "촬영 끝나면 차에 타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현장에서는 승합차를 타고 돌아다녔는데 거기 올라가기도 힘들더라. '체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생각했다"라며 "달리는 신에서 햄스트링이 파열되기도 했다. 목발을 짚고 열흘 정도 지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연기자가 연출을 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리스크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압박감이 있었다"라며 "촬영 끝나고 집가서도 또 시나리오를 수정하길 반복했다"고 덧붙였다.
이정재 "어려서부터 최류탄 냄새 익숙해…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TEN인터뷰]
23년 만에 한 작품에 출연하게 된 배우 정우성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이정재는 "정우성 씨는 워낙 가깝고 두터운 친구다. 사고초려했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작품을 7개(신과 함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오징어 게임, 사바하, 보좌관 등)를 했다보니 '헌트'에 전념할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수정될 때마다 우성 씨한테 보여줬다"며 "우리는 기대치보다 더 뛰어넘어야 했다. 기대치까지만 하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성 씨가 연속 3번 정도 거절한 것에 대해서는 서운하지 않았다. 이것도 일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4번째 정도에서 다시 하게 됐다. 그때는 너무 취해서 우성 씨의 승낙 멘트가 기억이 안난다"고 덧붙였다.

류예지 텐아시아 기자 ryuperstar@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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