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제41회 영평상'서 남우주연상
'박하사탕'부터 '자산어보'까지 4번째 수상
설경구 "연기 30년, 쌓이지 않고 숙제만 남아"
'실미도'로 한국영화 첫 '1000만 배우' 타이틀
배우 설경구./ 사진=조준원 기자
배우 설경구./ 사진=조준원 기자
"내후년이면 연기한 지 30년이 됩니다. 그런데 뭔가가 쌓이지 않고 숙제만 남는 것 같아 늘 고민이 많습니다. 쌓이고 쌓여서 나이를 먹는다고 장인이 되는게 아니더군요. 해결 할 일이 자꾸 생기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 그게 배우의 숙명인 것 같습니다."

지난 11일 열린 제41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영화 '자산어보'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설경구가 이렇게 말했다.

1980년부터 시작 된 영평상은 한국영화평론가협회에서 매년 우수한 영화 및 영화인들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시상식이다. 이날 '모가디슈'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허준호는 "'영평상'에서 상을 받았다. 이제야 비로소 배우가 된 것 같다"고 했으며, 여우조연상을 받은 김선영은 "촬영이 있었다. 그런데 '영평상' 만큼은 어떻게든 참석하고 싶어 무리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또 여러 감독, 배우들이 "뽀대나는 자리"라고 언급했다.

설경구는 2000년 '박하사탕', 2002년 '오아시스', 2017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영평상에서 네번째로 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영화 '자산어보' 설경구./
영화 '자산어보' 설경구./
'자산어보'(이준익 감독)는 흑산으로 유배된 후, 책 보다 바다가 궁금해진 학자 정약전(설경구)과 바다를 벗어나 출셋길에 오르고 싶은 청년 어부 장창대(변요한)가 '자산어보'를 집필하며 벗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설경구는 데뷔 28년 만에 첫 사극에 도전했다. 앞서 설경구는 여러 인터뷰를 통해 "그간 여러차례 사극 시나리오가 들어 왔지만,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털어 놓은 바 있다. 그야말로 '자산어보'는 설경구에게 도전이었다. 또 컬러 영화에 비해 관객의 몰입도가 높은 흑백영화여서 부담감은 2배 였다. 그러나 설경구는 보란듯이 자신의 저력을 확인 시켰다. 한결 더 편안한 표정, 말투로 인물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평상에서는 영화평론가가 배우, 감독 등 수상자에게 직접 트로피를 건넨다. 조혜정 전 영화평론가협회 회장은 시상에 앞서 "설경구 배우님. 지금부터 칭찬을 늘어 놓을테니 민망해 말라"라고 말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혜정 영화평론가는 "설경구 배우는 작품에서 압도적인 에너지를 분출한다. 극한에 치달았을 때 폭발하는 에너지는 보는 사람들을 꼼찍할 수 없게 한다. '박하사탕' 때 "나 다시 돌아갈래" 라며 달려오던 기차를 온 몸으로 받아내던 그 모습은 설경구 연기의 마스터피스다. 압도적인 아우라를 뿜어내며 표현된 자기 파멸의 서사는 설경구 연기에 있어서 대표적인 부분을 차지한다"고 극찬 했다.

이어 "설경구 배우가 뛰어난 연기장인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지금까지 그의 연기를 편안하게 보기는 어려웠다"라며 "'자산어보'에서 설경구는 여유롭고 유연해졌다. 그로인해 그의 연기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역사인물 정약전을 매우 매력적으로 탄생 시켰다. 천연덕스러운 눈으로 바다생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드러내는 모습, 격정충만하면서도 미세한 감정의 결을 놓치지 않는 모습, 그런 정약전이 설경구로 인해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영평상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건네 받은 설경구는 "부끄럽다. 연기를 하면서 평을 안 들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왜 자꾸 연기 하면서 평을 들어야 하는지, 그냥 넘어가면 안 되는 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 꽤 있다"라고 털어놨다.
[TEN피플]'한국 영화 최초 1000만 배우' 설경구, 뽀대나는 이 배우의 고민
계속해서 설경구는 '자산어보'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단 3시간 촬영을 위해 배와 자동차로 3시간을 이동했던 순간, 여러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고생하고, 함께 술 한 잔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무엇보다 설경구는 '연기'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설경구에 앞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김선영이 "배우로서 과도기다. 혼란스럽다.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며 눈물을 쏟아 시선이 집중 됐다.

설경구 또한 "저도 김선영 배우가 얘기했던것 처럼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내후년이면 연기한 지 30년이 된다. 그런데 뭔가가 쌓이지 않고 숙제만 남는 것 같아 늘 고민이 많다. 쌓이고 쌓여서 나이를 먹는다고 장인이 되는게 아니더라. 해결 할 일이 자꾸 생기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 그게 배우의 숙명인 것 같다"고 했다.

설경구는 '실미도'(2003)로 한국영화 최초 1000만 배우 타이틀을 얻었다. 최민식, 송강호와 함께 2000년대 영화계의 부흥기를 이끈 톱배우다.

애초 연출가가 되려고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지원, 이후 선배들의 권유로 우연찮게 연기를 시작해 연극 무대를 누볐다. 이후 '꽃잎'(1996)부터 '자산어보'(2021)까지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믿고 보는 배우'로 인정 받았다.

특히 2000년 '박하사탕'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평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등 굵직한 시상식을 휩쓴 것을 시작으로, 수년 간 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런 설경구가 영평상에서 여전히 '연기'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제41회 영평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문소리는 설경구가 남긴 남우주연상 소감과 관련해 "옛날 보다 나아졌다. 누구나 알고 있는데 왜 혼자 멋있게 고민하느냐"고 타박해 웃음을 안겼다.

"계속 뽀대나는 이 자리(영평상)에 초대받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고민하고,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나아가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30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는 설경구는 오는 12월 신작 영화 '킹메이커'로 관객을 만난다. 또 '유령' '야차'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더 문' 등 후속작도 대기중이다. 제 아무리 설경구라지만 '완벽'이란 존재하기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설경구의 고민은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러나 '자산어보'로 증명했 듯, 관객에게 설경구는 여전히 뽀내나는 배우임엔 틀림 없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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