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첫 아시안 히어로 주인공
기존 마블영화와는 다른 동양풍 무술 접목한 액션
동양 신화 속 영물들의 등장
가족 간 갈등·화해가 주요 소재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포스터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포스터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김지원의 인서트≫
영화 속 중요 포인트를 확대하는 인서트 장면처럼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가 매주 수요일 영화계 이슈를 집중 조명합니다. 입체적 시각으로 화젯거리의 앞과 뒤를 세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검은 머리를 가진 황인종의 히어로가 동양풍 무술로 용과 함께 혼을 먹는 괴물을 무찌르는 영화. 마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아버지가 이끄는 어둠의 조직 후계자가 되길 거부하고 평범한 삶을 살던 샹치가 자신의 진정한 힘을 깨닫고 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 백인 남성 히어로라는 틀에서 벗어나 여성, 흑인, 장애인 등 다양성을 위해 노력해온 마블이 아시안 히어로를 메인 주인공으로 내세운 첫 작품이다. 게다가 마블 페이즈4를 본격적으로 여는 작품. 때문에 이번 영화는 '서양에서 보는 동양'이 아닌 동양 그 자체로서 문화와 정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중요했다. 마블의 그러한 노력이 영화에 여실히 보인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첫 번째로 주인공들의 액션을 살펴보자. 그간의 마블영화와는 확연한 차별점이 있다. 앞서 마블 히어로들은 고도화된 기술로 만든 슈트나 무기를 이용해 적과 싸웠다. 하지만 샹치는 오랜 기간 수련을 통해 익힌 동양풍 맨몸 무술을 주된 기술로 사용한다. 달리는 좁은 버스 안에서 샹치가 상대와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동작이 절제되고 합이 잘 들어맞는 액션 시퀀스다.

마블은 1970~80년대 홍콩 액션·누아르 영화를 연상하게 하는 연출이나 무협풍 와이어 액션을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 극 중 웬우(양조위)와 장 리(진법랍)가 숲속에서 처음 만나 무술을 겨루는 장면이나 후반부 샹치와 웬우가 겨루는 장면에서 특히 이 같은 기법이 도드라진다. 촌스럽기도 하지만 익숙하고, 또 기존 마블영화에서 보던 화려한 CG나 스케일 큰 액션신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가 나왔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두 번째로는 동양에서 신성시되는 동물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영화 중후반부에 샹치가 봉인된 괴물을 깨우려는 아버지를 막기 위해 탈로라는 마을로 향한다. 탈로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주작, 구미호, 기린, 해태 등 동양 문화권에서 등장하는 상상 속 동물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샹치에게 탈로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해준 '모리스'라는 이름의 동물 역시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영물로, 얼굴이 없고 여섯 개의 다리와 날개가 달렸다. 첫인상은 기이해도 그 사랑스러움과 깜찍함에 빠져들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이번 영화의 마스코트로 꼽는다.

이번 영화에서는 용이 주인공 샹치에 버금가는 활약을 한다. 강물 속에 살며 탈로를 수호하고 악령들의 봉인을 지킨다. 또한 샹치가 내면의 힘을 각성하게 한다. 샹치가 입은 슈트는 용의 비늘로 만들어졌다. 샹치가 괴물들을 퇴치할 때 용은 그를 등에 태우고 다니며 협력자가 돼준다. 마블은 용의 겉모습 역시 서양에서 묘사되는 익룡과 비슷한 모습이 아닌 동양에서 묘사되는 뱀과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했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스틸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세 번째로는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영화에서 다뤄지는 주요 갈등은 가족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웬우,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샹치, 어머니가 죽은 뒤 아버지에게 보살핌을 받지 못한 샹치의 여동생 쑤 샤링. 가족주의가 강하게 작용하는 동양 문화권에서 더 공감도가 높을 가족 간의 갈등과 해소라는 설정으로 마블은 첫 아시안 히어로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미국이란 국적을 달고 있는 영화인 만큼 오리엔탈리즘(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래도 여러 장치와 설정들을 사용해 동양적 시선에서 미국적 영화를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어찌됐든 백인이 아닌 아시안 히어로가 마블 페이즈4를 여는 주인공이 됐다.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마블 '이터널스'에는 마동석이 출연하고 박서준도 '더 마블스'에 캐스팅됐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이후 탄생할 아시안 히어로의 선봉에 섰다는 점에서 완벽하진 않았어도 합격점을 주고 싶다.

김지원 텐아시아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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