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의 역사, 한국영화 진출기
2000년 임권택 '춘향뎐', 첫 경쟁 부문 초청
2019년 봉준호 '기생충' 최고영예 '황금종려상'
홍상수 감독, 11번째 칸 초청…한국 감독 최다
'칸'의 영광의 얼굴들./ 사진=텐아시아DB
'칸'의 영광의 얼굴들./ 사진=텐아시아DB

<<노규민의 씨네락>>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영화 관련 이슈와 그 안에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오스카는 물론 베네치아, 베를린도 부러워하는 영화계의 끝판왕"


2년 전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 했을 때, 전 세계가 들썩거렸다. 특히 '칸'에서 1등 트로피를 거머쥔 것은 한국영화 1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축전을 받았고,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까지 수여 받았다. 칸 영화제가 뭐길래 이 같은 영광을 누리는 걸까.

칸 영화제는 1930년대 후반, 이탈리아 정치색을 강화했던 베네치아 영화제에 대항하기 위해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개최하게 됐다. 애초 1939년 개최하려고 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면서 1946년에서야 정식으로 시작했다. 이후 예산 문제로 영화제를 열지 못하다가 1951년 다시 펼쳐졌다.

매년 5월 프랑스 동남부에 있는 도시 칸에서 열리며, 베를린 영화제, 베네치아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손꼽힌다. 현시점에선 '3대 영화제' 중 '칸'의 위상이나 인지도가 가장 높다. 다른 영화제에 비해 할리우드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되거나, 경쟁 부문에 들어 상을 받는 경우가 많고 전 세계 유명한 스타들이 가장 많이 찾는 행사이기도 하다.

더불어 칸 영화제는 '3대 영화제' 중 가장 상업적인 행사로도 꼽힌다.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영화제 자체의 홍보와, 개봉을 앞둔 영화의 홍보를 위해 초청할 때가 많다. 더불어 르노, 로레알 등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스폰서를 맡고 있다.

전 세계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칸'에서 수상한다는 것은 작품, 연출, 연기 등 모든 면에서 영화적 실력을 보증받았다는 이야기. 심지어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초청만으로도 질적인 버프를 받는다.
제74회 칸 영화제 포스터
제74회 칸 영화제 포스터
칸 영화제는 크게 공식 섹션과 비공식 섹션으로 나뉜다. 공식 섹션은 경쟁 부문, 주목할만한 시선, 비경쟁부문, 단편영화, 칸 클래식 복원부문, 해변의 영화관 등이며, 비공식 섹션은 감독주간, 국제비평가주간 등이다. 공식 섹션에 초청된 영화들은 주로 뤼미에르, 드뷔시 등 주요 극장에서 상영하며, 비공식 섹션 영화들은 주 상영관과 떨어진 곳에서 상영한다. 이에 비공식 섹션은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적고, 인지도가 낮은 배우나 감독이 주로 찾는다.

한국영화가 '칸'의 초청을 받은 건 언제부터였을까. 앞서 베를린 영화제, 베네치아 영화제 등은 1960년대부터 경쟁, 비경쟁을 가리지 않고 한국영화를 초청했다. 그러나 칸 영화제는 1980년대가 돼서야 우리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두용의 '여인잔혹사 물레야 물레야'가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으로 초청된 게 처음이다.

90년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한국영화는 2000년 임권택 감독 영화 '춘향뎐'이 처음으로 경쟁 부문에 오른 뒤로, '칸'의 레이더망에 걸려들게 됐다. 임권택 감독은 2년 뒤 '취하선'으로 다시 경쟁 부문에 올라 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어 2004년에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 2등 상인 그랑프리에 해당하는 심사위원대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박찬욱 감독은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까지 받으며 세계적인 명장으로 거듭났다. 2007년에는 배우 전도연이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에서 연기로 상을 받았다.

2010년 이후 이창동 감독이 '시'로 각본상, 문병곤 감독 '세이프'가 단편 부문 황금종려상 등을 받았고,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봉준호 감독의 '옥자', 홍상수 감독의 '그 후', 이창동 감독의 '버닝' 등이 경쟁 부문에 초청돼 한국영화의 저력을 확인시켰다.

이 외에도 공식섹션, 비공식섹션을 떠나 수많은 감독과 작품이 칸의 초청을 받았다. 국내외적으로 한국영화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더욱 다양한 장르,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칸'으로 향했다. 그러던 2019년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의 정상에 올라 선 것이다.
영화 '비상선언' 출연배우들
영화 '비상선언' 출연배우들
해마다 5월 열리던 칸 영화제는 코로나19로 지난해 개최되지 않았고, 연기 끝에 올해 7월 6일부터 17일까지 열리게 됐다. 이번에는 한재림 감독 신작 '비상선언'이 공식 섹션인 비경쟁부문에 초청됐고, 홍상수 감독의 26번째 장편 영화 '당신 얼굴 앞에서'가 이번에 새롭게 신설된 칸 프리미어 부문에 초청돼 칸으로 향하게 됐다.

칸 프리미어 부문은 칸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으로 영화제 기간 내 드뷔시 극장에서 상영한다.

특히 홍상수 감독은 '강원도의 힘'(1998, 주목할만한시선), '오! 수정'(2000, 주목할만한시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경쟁부문), '극장전'(2005, 경쟁부문),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감독주간), '하하하'(2010, 주목할만한시선 대상 수상), '북촌방향'(2011, 주목할만한시선), '다른 나라에서'(2012, 경쟁부문), '클레어의 카메라'(2017, 특별상영), '그 후'(2017, 경쟁부문)에 이어 통상 11번째로 칸의 초청을 받게 됐고, 이는 한국 영화감독 최다 칸 영화제 공식 초청 기록이다.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비상선언'은 250억 원이 투입된 대작으로, 칸과도 인연이 깊은 송강호, 전도연을 비롯해 이병헌,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등 초호화 라인업을 자랑하는 항공재난물이다. 7월 6일 개막식 날 전 세계 최초 공개된다.

칸 영화제 상징물은 종려잎이다. 엠블럼이나 트로피 모두 종려잎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이 종려잎은 프랑스 시인이자 영화감독인 장 콕토 감독이 디자인했다고 한다.

종려잎을 안고 있는 한국 영화인의 모습을 하루빨리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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