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감독, 신작 '파이프 라인' 26일 개봉
유하 감독 출세작, 17년 전 개봉한 '말죽거리 잔혹사'
권상우-한가인 극 중 고등학교, 실제 연예인 다수 배출?
'떡볶이집' 김부선-권상우 에피소드, 유하 감독 경험담
'말죽거리 잔혹사' 포스터./
'말죽거리 잔혹사' 포스터./


<<노규민의 씨네락>>
노규민 텐아시아 영화팀장이 매주 일요일 영화의 숨겨진 1mm,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수도 있는, 영화 관련 여담을 들려드립니다.


시인 출신 유하 감독이 6년여 만에 신작 '파이프라인'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서인국, 이수혁, 음문석 등 대세 배우들과 함께 '도유 범죄'라는 신선한 소재로 오락물을 완성 시켰지만, 감독 특유의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간 유하 감독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파격적으로 담아내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색깔이 뚜렷한 연출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파이프라인'은 유하 감독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스타일의 케이퍼 무비다. 그의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이라면 재미있다 없다를 떠나, 낯설다는 느낌이 먼저 들 것이다.

그렇다면 유하 감독 영화 중 그의 색깔이 가장 잘 묻어난 작품은 뭘까.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비열한 거리', '쌍화점', '강남1970' 등 여러 화제작 중, 가장 많이 회자 되는 작품은 단언컨대 '말죽거리 잔혹사'다. 탄탄한 시나리오, 그 시절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사실적인 묘사로 호평받았고, 311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무엇보다 '유하' 하면 '말죽거리 잔혹사'를 떠올리는 이들이 상당인 만큼 유하 감독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1970년대 후반, 폭력과 강압, 비리가 난무하던 군사 정권 시절 대한민국과 그 안에서 분투하고 있는 고등학생들,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우정을 리얼하게 담아낸 영화다. 지금까지도 '친구'(2001), '써니'(2011) 등과 함께 가장 완성도 높은 복고 청춘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춘물이라지만, 이 영화에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다. 15세 등급이라는 것이 의아할 정도다. 게다가 고등학생인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가 떡볶이집 아줌마(김부선 분)와 이상야릇해지는 분위기까지 가는데, 부모님 세대 이야기라 해서 중학생이 엄마, 아빠와 함께 보다 보면 적지 않게 당황할 수도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최근까지도 OCN 등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했는데, 그나마 TV 버전에선 이른바 쌍욕은 걸러냈고 문제의 떡볶이집 장면은 거의 그대로 전파를 탔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스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스틸./
"누구나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내겐 1978년이 그런 해였다. 그해 봄 우리 집은 강남으로 이사를 왔다. 강남의 땅값이 앞으로 엄청나게 오를 것을 예견한 어머니가 서둘러 결정한 일이었다. 내가 전학 간 곳은 말죽거리 근방에 있는 정문 고등학교였다. 나는 정문고의 악명을 어렴풋이 듣긴 했지만, 그 소문이 제발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 (영화 초반 권상우의 내레이션 중)

영화의 배경인 정문 고등학교의 모티브가 된 학교는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상문고등학교다. 강남 8학군 지역 고등학교로, 유하 감독을 비롯해 '말죽거리 잔혹사' 제작을 맡았던 노종윤 이사, 선도부장 차종훈 역을 맡은 배우 이종혁, OST를 부른 가수 김진표 모두 실제 이 고등학교에 다녔다.

또한, 극 중 은주(한가인 분)가 다닌 학교는 은명여자고등학교인데, 이 학교는 진짜 말죽거리인 양재역 근방에 위치한 은광여자고등학교다. 실제로 1970년대 강남이 개발되기 전, 은광여고와 상문고 학생들은 영화에서처럼 같은 버스로 통학하던 관계였다고. 특히 은광여고는 송혜교, 이진, 한혜진, 백지영, 이의정, 김준희 등 미모의 여성 연예인들이 나온 학교로도 유명하다. 현수가 버스에 앉아 있는 은주를 보며 첫눈에 반한 것처럼, 아마도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도 비일비재했을 것이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스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스틸
앞서 언급한 '떡볶이집' 장면과 관련해서도 여담이 많다. 떡볶이집 아줌마로 출연한 김부선은 짧은 등장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젊은 관객들에게도 이름을 알리게 됐다. 극 중 떡볶이집 아줌마가 고등학생을 유혹하게 되는데, 다소 자극적인 내용이다 보니 권상우는 연기 중에 실제로 귀까지 빨개져 어쩔 줄 몰라했다는 후문이다.

김부선의 경우 짧지만 잘 살려보겠다는 마음에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는데, 권상우가 당황하자 '후배 앞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며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부선은 '안영미 최욱의 에헤라디오'에 출연해 "장면 자체가 윤리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성이 안 느껴져 고민했다. 감독님에게 '이런 또라이같은 여자를 어떻게 연기하냐'고 묻자, 유하 감독은 "실제 저의 경험담이에요'라고 답했다"라고 털어놨다. 김부선은 당시 유하 감독이 선해 보였는데,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 테지만, '말죽거리 잔혹사'엔 인상 깊은 배우 2명이 등장한다. 조진웅과 안내상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지금은 대배우가 된 조진웅의 데뷔작이다. 극 중 차종훈 패거리로 등장해, 진짜 일진과 같은 사실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옥상 결투에서 차종훈에게 파운딩을 날리는 현수를 뜯겨진 유리창으로 내려치는 선도부 따까리가 바로 조진웅이다. 또한 안내상은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수학 선생님이자 현수의 담임 역할로 열연했는데, 비주얼부터 연기까지 말 그대로 리얼해서 진짜 교사를 데려다 연기시킨 것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았다.
[노규민의 씨네락] '말죽거리 잔혹사' 권상우·한가인 만난 버스, 현실에선 송혜교가 탔을텐데
요즘 세대 고등학생들도 따라 한다는 희대의 명대사가 있다. "옥상으로 따라와" 이후 이어지는 현수와 종훈의 옥상 결투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다. 해당 장면은 어떤 장치나, 대역 없이 100% 리얼 액션으로 찍었다. 현수는 애써 절권도를 수련하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개싸움을 펼친다. 결국 그 개 싸움이 리얼한 장면으로 완성됐다. 또한 싸움은 1대1에서, 현수가 우세를 점하자 상대 패거리들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패싸움이 된다. 실제 1970년대에는 홍콩 액션 스타 이소룡의 영향인지 5대 1, 6대 1이 유행했다고 한다.
[노규민의 씨네락] '말죽거리 잔혹사' 권상우·한가인 만난 버스, 현실에선 송혜교가 탔을텐데
영화 '두번할까요' 스틸
영화 '두번할까요' 스틸
2018년 개봉한 권상우, 이정현, 이종혁 주연 '두 번 할까요'에는 이 옥상 결투 장면이 다시 등장한다. 14년 만에 옥상에서 다시 만난 권상우와 이종혁이 또 한 번 개싸움을 펼친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2004년 개봉작이다. 17년이 지난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볼거리도 풍성하고 여담도 많은 명작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유하 감독이 내놓은 '파이프라인'은 어떤 색깔일까. 오는 26일 개봉하는 유하 감독의 신작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규민 텐아시아 기자 pressgm@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