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무환] 아카데미 시상식 백배 즐기기


올해로 93회째를 맞는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이 오는 4월 25일(현지시간) 열린다. 당초 올 2월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두달여 연기됐다. 최근 발표된 후보 명단을 보면 다문화·다인종을 포용하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역대 최대인 총 70명의 여성 후보를 냈고, 연기자 후보 20명중 9명이 유색인종이다. 무슬림계 첫 남우주연상 후보도 나왔다. 전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에 앞서 오스카상과 관련된 다양한 뒷얘기와 진기록들을 살펴본다.

두 번째 여성감독상 나올까?

100년 가까운 아카데미 역사상 감독상을 받은 여성은 단 한사람 뿐이다. 2010년 82회 시상식에서 이라크전에 투입된 미군 특수부대 EOD팀의 폭발물 해체 작업을 손에 땀이 나게 펼쳐 낸 <허트로커>의 캐서린 비글로우가 그 주인공이다. <허트로커>는 감독상 외에도 작품상, 각본상, 음향상 등을 포함해 총 6개 부문을 휩쓸었다. 신장 183cm의 비글로우 감독은 남성 연출자 이상으로 마초적 남성들의 세계를 다룬 작품이나 군사물의 걸작들을 쏟아냈다. 화면 가득한 서핑 장면과 함께 FBI 요원 키아누 리브스와 은행강도 패트릭 스웨이지간의 아슬아슬한 연기 대결이 묘미인 <폭풍 속으로, 1991>, HBO 시리즈 <체르노빌>을 연상케 하는 소련 핵잠수함의 고장 사태를 긴박하게 그려낸 해리슨 포드, 리암 니슨 주연의 , 9/11 사태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바탕으로 한 <제로 다크 서티> 등에 이어 <디트로이트>를 통해선 흑인 인권문제에도 돌직구를 던졌다. 비글로우 감독 이후에는 수상은커녕 후보에서조차 여성 감독들의 이름을 찾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번 시상식에는 그 어느 때보다 두 번째 여성 감독상에 대한 기대를 낳고 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것은 물론 전 세계 주요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고 있는 <노매드랜드>의 중국계 클로이 자오가 유력 후보로 올라 있다. 여기에 <프라미싱 영 우먼>의 에메랄드 페넬까지 포함해 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감독상 여성 후보를 냈다.

흑인 영화인들의 설움

오스카 시상식이 백인·남성 우월주의에서 다문화·다인종을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보하고 있다곤 하지만 흑인 영화인들에게는 여전히 한 많은 행사다. 지금까지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흑인 영화감독은 한명도 없다. 스티브 맥퀸 감독의 <노예12년>과 베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가 각각 86회, 89회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것으로 상대적으로 연출 역량을 인정받은 정도다. 감독상 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 수많은 흑인 배우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정작 오스카상을 받은 흑인 배우 역시 많지 않다. 흑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배우는 <몬스터볼>의 할리 베리가 유일하다. 상대역인 빌리 밥 손튼과 호흡을 맞춘 할리 베리의 뼈속깊은 외로움이 사무쳐 나오는 몸부림 연기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 같다. 2017년 <펜스>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비올라 데이비스(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가 이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두 번째 흑인 여우주연상을 배출할지 주목된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도 4명에 불과하다. 전설의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에가 1964년 36회 시상식에서 <들백합>으로 수상자가 된 이후 두 번째 흑인 남우주연상이 탄생하기까지는 38년이 걸렸다. 2002년 74회 행사에서 현존 최고의 배우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덴젤 워싱턴이 <트레이닝 데이>로 수상했고 그 뒤 제이미 폭스가 <레이>로, 포레스트 휘테커가 <라스트 킹>으로 오스카를 거머 쥐었다. 최근엔 마허샬라 알리가 <문라이트>로 무슬림 신자 최초의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자가 된데 이어 2년 뒤 <그린북>으로 또다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엔 지난해 세상을 떠난 흑인 배우 채드윅 보즈먼(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연기의 신들

아카데미가 인정한 현존 최고의 연기자는 영국 왕실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은 다니엘 데이 루이스다. 그는 아카데미 역사를 통털어 남우주연상을 세 차례 수상한 유일한 연기자다. 그는 극중 캐릭터에 자신을 완전히 이입시키는 메소드 연기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첫 수상작인 <나의 왼발>에서 뇌성마비로 전신이 뒤틀려 왼발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 화가 크리스티 브라운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촬영을 하지 않을 때도 늘상 휠체어만 타고 다녔다. 그의 '미친 존재감' 연기는 두 번째 수상작인 <데어 윌비 블러드>에선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광기의 석유 개발자역을 맡았다가 촬영도중 상대역이 그의 메소드 연기에 질려 촬영장에서 도망치자 결국 쌍둥이 형제로 설정을 바꾸고 이를 모두 소화한 폴 다노는 유명 배우의 반열에 오르는 기회를 얻었다. 세 번째 수상작인 <링컨>에서는 1년여간 100여권의 링컨 관련 서적을 읽고 수많은 사진들을 통한 준비 작업으로 관객들이 링컨의 실제 모습이 저랬을 것이라고 느끼게끔 그의 모든 것을 재현해내려 했다. 남우주연상은 고인이 된 말론 브란도와 함께 더스틴 호프만, 잭 니콜슨, 숀 펜 등이 2회 수상을 했으며, 특히 톰 행크스는 <필라델피아>와 <포레스트 검프>로 66회(94년), 67회(95) 등 2회 연속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현존 유일의 배우이다. 여자배우로는 메릴 스트립이 최다 후보에 올랐다. 그녀는 지금까지 무려 21번이나 후보에 올랐으며 <크레이머 vs 크레이머>로 여우 조연상을, <소피의 선택>과 <철의 여인>으로 여우 주연상을 받는 등 총 세 차례 수상했다. 어떤 역할도 막힘없이 소화하는 폭넓은 연기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으나, 일부 평론가들은 연기가 너무 과장되고 부자연스럽다고 꼬집기도 한다. 2018년 90회 시상식에서 <쓰리 빌보드>에서 성폭행 뒤 살해된 딸을 위해 묵묵한 복수에 나서는 밀드레드 역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프란시스 맥도먼드도 여우주연상 2회 수상자다. 첫 번째는 1997년 69회 시상식에서 <파고>를 통해서다. 그녀가 맡은 만삭의 시골 경찰 서장 마지 군더슨 역은 미국 영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파고>의 감독은 유명한 코엔 형제의 형 조엘 코엔으로, 프란시스 맥도먼드는 그의 부인이다. 맥도먼드는 이번에 <노매드랜드>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또 올라 만일 수상할 경우 현역 여배우로는 유일하게 세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된다. 이번 시상식에선 전체 20명의 남녀 주연상과 조연상 후보 중 9명이 유색 인종이다. <미나리>의 한국계 스티브 연은 아시아계 미국인 중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은 한국인으론 첫 연기상 후보자가 됐다.

멕시칸과 아시안 감독들의 아카데미 정복사

최근 오스카 감독상에는 이른바 ‘라티노’로 불리는 멕시코계와 대만과 한국 등 아시아계 감독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2010년대 들어 작년까지 10번의 시상식중 7개의 감독상을 멕시코계와 아시아계가 휩쓸어 갔다. 멕시코계의 약진은 2014년 86회 행사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그래비티>로 포문을 열었다. 이 영화는 감독상을 포함해 7개 부문을 석권했다. 이어 2015년(87회), 2016년(88회) 행사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나리투의 원맨쇼였다. <버드맨>과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현존 영화감독중 유일하게 2년 연속 오스카 감독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그 뒤 2018년(90회)에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세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으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한데 이어 2019년에 다시 쿠아론 감독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로마>로 감독상과 외국어영화상 등을 수상하면서 멕시칸 ‘쓰리 아미고(Three Amigos, 세 친구들)의 아카데미 정복사를 화려하게 이어갔다. 이들 멕시코계 감독들의 영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 있다. 아카데미 촬영상의 유일한 3연속 수상자로, 역시 멕시코 출신인 엠마누엘 루베즈키다. 커트 없이 하나의 쇼트를 길게 이어가는 롱테이크 촬영의 대가인 그는 <그래비티> <버드맨> <레버넌트>의 촬영감독을 도맡았다. 아시아계로는 단연 대만의 이안 감독과 한국의 봉준호 감독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이안 감독은 중국 무협물의 신기원을 연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데 이어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차례 감독상을 받는 등 총 세 번에 걸쳐 수상했다. 지난해 92회 시상식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감독상, 작품상, 각본상, 국제장편 영화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면서 한국 영화의 위상을 전세계에 드높였다.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이 이번에도 한국계 돌풍을 이어갈 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부럽다! 재주도 많지~
자신의 전공 분야는 물론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상을 받은 ’이도류‘들이 부러움을 산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로마>를 찍으면서 자신의 절친인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즈키가 스케줄상 합류하지 못하자 직접 촬영까지 맡아 감독상과 촬영상을 모두 받는 기록을 세웠다. 영국을 대표하는 배우중 한 사람인 엠마 톰슨은 1993년 <하워즈 엔드>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물론, 케임브리지 대학 영문학과 출신답게 1996년엔 19세기 영국의 유명 여류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서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각색까지 맡아 오스카 각색상을 받는 재능을 발휘했다. 배우 조지 클루니는 2006년 <시리아나>로 남우조연상을 받은데 이어 2013년에는 1980년 이란혁명 당시 미국 대사관 직원 구출 작전을 소재로 한 <아르고> 제작자로 작품상을 받는 만능 영화인의 능력을 보였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1968년 <화니 걸>로 여우주연상을, 1977년에는 <스타 탄생>으로는 주제가상을 받아 배우겸 가수로서 톡톡히 이름값을 했다.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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