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연X한예리X윤여정 주연 '미나리'
이민자인 감독의 자전적 경험 담아
담백한 작품을 완성한 배우들의 일상적 연기 '인상적'
영화 '미나리' 포스터 / 사진제공=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포스터 / 사진제공=판씨네마
따스한 햇빛이 온몸으로 내리쬐는 듯한 기운을 주는 작품이 있다. 영화 '미나리'다. 티격태격해도 사랑스러운 한국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는 어쩐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미국의 대도시 캘리포니아에 살던 한국인 이민 가족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 앤(노엘 조), 데이빗(앨런 김)은 아칸소의 시골로 이사가게 된다.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한 제이콥이 이곳에서 농장을 꾸리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벌판에 덜렁 놓인 바퀴 달린 컨테이너형 집. 모니카는 말문이 턱 막힌다. 폭우가 내리자 누수로 퉁퉁 불은 나무 집기들은 위태롭기 그지없다. 꿀 떨어졌던 신혼일 때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부부. 모니카는 이런 시골에서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막내아들 데이빗의 건강을 제대로 챙길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제이콥은 미국인 폴(윌 패튼)과 농장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모니카 역시 돈을 벌기 위해 병아리 감별 공장에 일을 나간다. 아이들을 돌봐줄 이가 필요한 부부는 고민 끝에 한국에서 모니카의 엄마인 순자(윤여정)를 미국으로 부른다.

'미나리'는 70~80년대 미국 사회에 정착하려는 한국인 이민 가족의 애환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이 영화는 정이삭 감독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때문에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관객을 현혹시킬 만한 겉치장이 없는데도 러닝타임 내내 마음을 붙들고 가는 영화다. 화려하지도 않고 잔혹하지도 않고 억지 눈물을 빼내려 하지도 않는다. 참으로 무해한 아름다움이 가슴으로 스며드는 작품이다.
영화 '미나리'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
영화 '미나리' 스틸 / 사진제공=판씨네마
영화는 제이콥 가족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미국에 정착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타향살이를 보여준다. 10년간 "병아리 똥구멍만 봤다"는 제이콥에게선 가장의 무게와 함께 "빅 가든 하나 만들거야"는 희망을 보게 한다. 시골살이가 낯선 모니카가 느낄 심정도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가정을 지키고 싶은 아내이자 엄마로서 책임감을 다하려는 모니카의 모습이 안쓰럽다. 영화에는 미국 사회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토종 한국인 할머니 순자 간의 서로 다른 생활방식과 가치관도 드러난다. 다른 '미국 할머니'들처럼 쿠키도 만들 줄 모르고 거친 입담을 자랑하는 '한국 할머니' 순자가 손자 데이빗은 불만이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담백한 영화를 완성해낼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공도 크다. 감독뿐만 아니라 스티븐 연 역시 이민자의 삶을 겪었기에 이 작품에 대한 이해도가 더욱 높을 수 있었다. 또한 한예리가 없었다면 이 가족의 유기적 연결이 어색했을 것이다. 윤여정이 이 영화로 미국의 각종 크고 작은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휩쓸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미국 사회에서 보지 못했던 '한국 할머니'만의 정서를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족의 딸, 아들을 연기한 아역배우들 역시 일상적이고 편안한 연기를 보여준다. 노엘 조는 실제 누나처럼 의젓하고 앨런 김은 이 가족의 막내답게 짓궂어도 사랑스러운 매력을 자랑한다.

순자는 "미국 애들은 미나리가 뭔지 모르지?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 미나리 이즈 원더풀!"이라며 흥얼거린다. 영화의 제목이 '미나리'인 이유가 이 대사를 통해 드러난다. 낯선 땅에 뿌리내리려는 이 가족을 향해 더욱 응원하고 싶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미나리'는 제78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작품상 부문의 최종 후보에 올랐으며, 오는 4월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미나리'의 수상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오는 3월 3일 개봉. 12세 관람가.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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