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민·남주혁 주연 '조제'
포근함 주는 영상미 '눈길'
원작 묘미 살리지 못한 어설픈 전개
영화 '조제' 포스터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조제' 포스터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사람들에게 다 말할 거야. 몸도 성치 않은 나를…범했다고…."

영화 '조제'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조제(한지민 분)와 영석(남주혁 분)이 잠자리를 한 후 조제가 영석에게 떠나지 말아달라는 부탁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꼽히는 일본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2003)을 왜 굳이 리메이크하려 했나 싶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조제식의 귀여운 협박으로 녹여내고 싶었던 의도는 알겠으나 불편한 마음만 자아낼 뿐이다. 조제를 사랑의 주체가 아닌 수동적 인물로 전락시켜버렸다.

'조제'는 다리가 불편한 조제와 취업을 준비 중인 대학생 영석의 사랑을 그리는 작품이다. 책을 사러 나왔던 조제가 휠체어를 놓쳐 난처한 상황에 처하자 영석이 조제를 도와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자신만의 세계에 살며 외출도, 사람들과 소통도 거의 하지 않는 조제에게 영석은 점점 끌리기 시작한다. 영석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조제의 집을 찾아 먹을거리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밥을 같이 먹기도 하며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멀어지기도 했지만 이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에 빠진다.
영화 '조제' 스틸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조제' 스틸 / 사진제공=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조제'는 일본의 원작 소설과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김종관 감독이 각색한 작품이다. 영화는 원작을 본 이들에겐 당혹스러움을, 원작을 보지 않은 이들에게 혼란스러움을 준다. 원작이 일본 작품이라는 점, 개봉한 지 17년이 지났다는 점을 감안해 한국, 그리고 현재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며 영화를 새로 만들려 한 노력은 엿보인다. 하지만 감성은 원작만 못하고 시간의 순서는 뒤죽박죽인데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수작인 원작을 리메이크하는 데 부담감도 있었다는 김 감독이 굳이 그 부담감을 떠안고도 리메이크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의문점만 남는다.

원작의 조제가 순수한 몽상가라면 이 작품의 조제는 황당무계한 망상가에 불과하다. 어두운 기운을 내뿜으며 허언증 환자처럼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소리만 늘어놓는다. 원작에서 느껴졌던 신비롭고 독특한 조제가 아닌 비호감 캐릭터다. 난해하게 설정된 인물을 한지민이 어떻게든 끌고 가려한 노력이 엿보인다. 영석 캐릭터는 녹록치 않은 현실을 겪는 취업준비생들의 모습을 겉핥기식으로 그려놨을 뿐이다. 조제·영석의 사랑의 과정 또한 모두 '간주 점프'된 채 결말만 미화했다. 이들이 어떤 행복감과 불안감을 겪었을지 담아내지 않은 게 여운이라고 변명한다면 그건 스스로도 그 과정을 제대로 담아낼 방도가 없어 단지 관객들에게 해답을 떠넘긴 것이 아니냐고 하고 싶다. 주인공들의 절절한 감정을 관객들 스스로 동감하게 하지 않고 주입해 넣으려 한다. 결국 영화는 아름다운 로맨스도, 소외된 자들이 겪는 고충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급박하게 변하는 시대에 느리고 잔잔한 사랑 이야기는 휴식과도 같은 따뜻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조제'는 따뜻함 감성 로맨스라고 가장했을 뿐이다. 다만 뛰어난 영상미와 아름다운 색감이 때때로 안락함을 안겨준다.

15세 이상 관람가. 10일 개봉.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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