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무환(無患) : 영화를 보면 근심이 없음을 뜻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장 파행을 겪고 있는 곳 중 하나가 학교다. 학교 생활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교우관계, 놀이, 방과후 시간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곳이다. 세상의 축소판, 학교를 소재로 한 영화 여섯 편을 소개한다.
영화 '우리들' 포스터./
영화 '우리들' 포스터./


우리들 2016년

그럼 언제 놀아? 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친구가 때리고..... 나 그냥 놀고 싶은데!”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평론가중 한 사람인 이동진 씨는 2016년, 그해 개봉된 한국 영화 베스트 10을 뽑으면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을 <곡성>에 이어 두 번째로 올려놨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다룬 생소한 제목의 이 저예산 독립영화에 왜 이렇게 높은 점수를 준 걸까. 영화를 찬찬히 보다보면 그 탄탄한 구성력과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와 닿는 주제의식, 감독이 영화를 장악하고 끌어가는 힘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 여자 어린아이가 나란히 서 있다. 한 아이는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볼에도 불그스레 상처 자국이 난 채 딴 곳을 응시하고 있고, 한 아이는 두 손을 가운데 모은 채 눈을 아래로 깔고 있다. 이 어색해 보이는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신이다. <우리들>은 학교 따돌림이라는 정신적 폭력에 대한 영화다.

엄마가 조그마한 분식집을 하는 초등학교 4학년생 선(최수인)은 방과 후면 어린 남동생을 돌보느라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안 다니고, 그 흔한 핸드폰도 없고, 집엔 에어컨조차 없다. 피구 시합 때마다 아무도 지명하지 않아 끝까지 ‘깍두기’로 남는 ‘왕따’ 신세다. 그런 선에게 단짝이 생긴다.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 새로 전학 온 지아(설혜인)를 만나 급속도로 친해지고, 그해 여름은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하다.

그러나 새 학기가 되자 어찌된 영문인지 지아는 선을 따돌리는 반의 주류 세력에 끼여, 선에게 등을 돌린다. 선은 지아와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지만 일은 계속 꼬이고, 결국 교실에서 서로 뒹굴며 싸우다 얼굴에 서로 생채기까지 입는다.

둘만 있을 땐 좋았던 사이가, 무리가 형성되면서 뒤틀어진다. 약한 하나를 궁지로 몰아넣고 상처 입고 피 흘릴 때까지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고, 대신 자신들은 상처입지 않기 위해서 상처 입히는 대열에 서야 한다. 그것이 집단 따돌림의 폭력 구조요, 관계라는 삶의 그물이 우리를 옥죄는 가장 큰 해악 중 하나다.

선은 남동생 윤(강민준)과 대화에서 무언가를 깨달은 듯 하다. 선이 친구와 놀면서 싸우다 시퍼렇게 눈에 멍이 든 윤을 보곤 친구에게 왜 앙갚음하지 않았냐고 나무라자, 윤은 "연우(친구)가 때리고, 나도 때리고, 연우가 때리고, (내가 또 때리고).....그럼 언제 놀아?"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다음날 학교 피구시합 때 선은 밟지 않은 라인을 밟았다며 억울하게 밀려 나가게 될 지아 편을 강하게 든다. 지아 역시 전학 오자마자 1등을 한 뒤로 따돌림 대상이 돼가고 있던 터다. 학교 운동장 피구 라인 밖에 덩그러니 서 있는 두 아이를 보면서 눈물이 글썽여진다. 우리가 살면서 입은 상처, 남에게 줬을지 모를 상처들에 대한 잠재의식들이 교차하면서. 그리고 두 아이 사이의 거리가 왠지 좁혀질 것 같은 기대감과 함께. 이 영화가 단순히 아이들 영화가 아니라 관계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 살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영화인 이유다.

윤가은 감독이 천착하는 테마는 상처인 것 같다. 19분짜리 단편작 <손님>에서도 결국 얼굴에 생채기를 형상화하고 만다. <우리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감상 포인트 하나. 철저히 아마추어 어린이 배우들을 데리고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연기력을 끌어 냈는지, 감독의 역량이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영화 '4등' 포스터./
영화 '4등' 포스터./
4등 2016년

"얘가 맞는 것 보다 4등 하는 게 더 힘들어"

국가권익위원회의 인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원을 받아 제작한 일종의 '관제 영화'다. 그러나 뚜렷한 주제의식과 호소력이 이런 선입견을 무색하게 한다. <우리들>이 심리적 폭력을 다뤘다면, <4등>은 '사랑의 매'로 미화되는 체벌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수영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다고 생각하는 준호(유재상)는 대회만 나가면 맨날 4등만 한다. 메달을 따서 아들을 수영으로 대학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는 '헬리콥터 맘' 정애(이항나)는 속이 터진다. 불교신자인 정애는 교회에 다니며 헌금조차 대신 내준다. 수영계의 '일타 강사' 광수(박해준)를 소개받기 위해서다. '이 사람한테 코치 받으면 얘가 상처 받을지도 몰라'라는 경고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광수의 고강도 훈련의 끝은 빗자루가 부러질 정도로 때리는 것이다. 그의 매질에는 늘 이런 말이 붙는다. "넌 폼은 예쁜데, 집중이 안돼" "다 니가 잘 돼라고 이러는 거야" 매질의 효과인지, 준호는 드디어 2등을 한다.

집안에서 파티를 하다가 기자 아버지 영훈(최무성)은 코치에게 매질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엄마 정애는 진즉부터 다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아빠의 만류와 코치의 매질에 신물이 난 준호는 수영을 그만둔다. 그러자 엄마의 헬리콥터 기질은 둘째아들 기호(서환희)의 과외로 옮겨 간다. 기호가 마침내 절규한다. "형이 다시 수영 시작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이젠 나만 괴롭히잖아~"

폭력은 감염되는 법이다. 광수는 고교 시절 아시아 기록을 보유한 수영 천재였지만 도박판에 끼여 태릉선수촌을 11일간 무단이탈한 벌로 코치에게 100대 매질을 당하다 뛰쳐 나온 뒤 인생이 꼬이게 된다. 그런 그가 택한 강습법의 결론은 매다.

광수에게 훈련이 끝날 때마다 매질을 당해온 준호는 집에서 동생이 자기 수경을 쓰고 놀았다고 때린다. 흡사 조폭들 사이에서 나 어울릴 법한 말과 함께. "몇 대 맞을지는 네가 정해."

수영이 좋은 준호는 결국 광수를 다시 찾아간다. 아침부터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광수가 준호에게 던지는 충고 한마디. "넌 엄마 없으면 1등 할거다." 새벽 혼자만의 훈련으로 준호는 대회에서 1등을 한다. 그러나 탈의실 거울에 비치는 그의 표정은 자신감을 되찾은 듯 하면서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1등하면 기분이 어때" 하는 후배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이다.

감독의 말대로 '찝찝한 1등'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준호가 다음 대회에도 계속 1등을 할지는 미지수다. 한가지분명한 것은 준호가 현재 수영을 좋아하고, 본인이 소질이 있고, 잘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엔 바뀔지도모른다. 엄마처럼 준호의 삶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지 말고, 아이가 어떻게 해 나갈지 기다리며 지켜보자는 메시지를 던지는 듯 하다.
영화 '파수꾼' 포스터./
영화 '파수꾼' 포스터./
파수꾼 2011년

"네가 날 한번이라도 친구로 생각한 적 있어?"

한 남자 고등학생이 죽는다. 영화에서는 딱히 그 장면이 보이진 않지만,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아들의 죽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조성하)는 생업을 미뤄두고, 아들의 삶을 역추적해 나간다. 장례식때 찾아온 아이도 만나고, 아들 앨범속에 있는 사진들을 보고 친구들을 수소문한다. 아버지는 아들 기태(이제훈)와 절친인 희준(박정민), 동윤(서준영) 사이에 우정에 금이 간 것을 짐작하게 된다. 한 아이는 전학가고, 한 아이는 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고 장례식에 조차 오지 않았다. '베프' 들이었던 그 세 친구들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이 영화는 윤성현 감독의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꼭 개봉을 염두에 두고 찍은 영화는 아니라고 한다. 배우들 총 출연료 518만원을 포함해 5000만원의 제작비만으로 청소년의 성장을 다룬 한국영화의 걸작을 남겼으니 감독의 천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이번에도 이제훈을 주연으로 써 올해 내놓은 <사냥의 시간>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친구들 중에 자신이 중심이 되지 못하면 못 견뎌하는 사람을 두고 있다면 이 영화에 대한 공감지수가 높아질 것이다. 영화제목이 왜 파수꾼일까. 냉철한 관계 인식 속에서 기태를 떠나 각자 삶을 살아가는 두 친구와 스스로 무너져 내린 기태 중에서 답을 찾으라고 하는 걸까.
[무비무환] 학교야 놀자, 학교영화 정주행
백자 영화평

날아라 허동구(2007년)
IQ 60의 지적 장애아 초등학생 허동구(최우혁)를 일반학교에서 졸업시키기 위한 눈물겨운 이야기. 아버지 진규(정진영)의 부성애도 애틋하지만, 짝 준태(윤찬)의 멘토 역할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심장이 약해 달리기를 못하는 자신 몫까지 운동장을 두 바퀴나 돈 동구의 따뜻함에 마음의 문을 연 준태는 우연히 야구부에 들어간 준태에게 생존을 위한 '아웃'의 의미와 삶의 기법으로 '번트'에 대해 가르쳐 준다. 끝까지 동구에게 기회를 주는 코치 길상(권오중)의 코믹 연기도 감초 격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역시 온 마을이 필요하다. 박규태 감독.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2014년)
B급 영화를 연상케하는 제목이지만, 내용은 A급의 일본 청소년 성장영화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의 전개 스타일이 독특하다. 영화의 첫 40분 가량은 금요일 하루의 학교생활을 여러 급우의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배구부, 야구부, 취주악부, 영화부, 배드민턴부 등 동아리 활동을 소재로 일본 고교생들의 진로에 대한 고민, 열정, 이성에 대한 감정 등을 다채롭게 그려낸다. 영화는 진로계획서 제출 마감일인 수요일 전날, 화요일까지의 얘기다. 키리시마는 배구부 최우수 선수이자, 전학교의 최고 스타로 모두들 그의 소식을 궁금해하지만 정작 영화에는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역시 영화의 흥미를 더해주는 감독의 묘한 기법이다.

명왕성(2013년)
중학교 교사 출신의 신수원 감독이 본인의 교단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현장의 과잉 경쟁 폐단을 스릴러물 형식으로 꼬집은 영화다. 복면을 한 젊은이들이 토끼몰이를 하는 장면에 이어 한 학생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아이는 명문 사립학교 부동의 전교 1등 유진 테일러(성준). 그는 전교 10등까지만 끼워주는 비밀 스터디그룹의 리더다. 그들이 남들에게 앞서기 위해 저지르는 상상하기 힘든 만행이 하나씩 드러난다. "67등? 간단해. 여기서 1등하려면 66명을 죽이면 돼." 태양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 명왕성은 태양계에서 퇴출됐다. 주인공 김준(이다윗) 이 과학 교사에게 이런 논문을 낸 적이 있다. '명왕성 퇴출에 관한 항명' 이 영화의 부제쯤 될 법하다.

글. 윤필영
주말 OTT 뽀개기가 취미인 보통 직장인.
국내 한 대기업의 영화 동호회 총무를 맡고 있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시각으로 영화 이야기를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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