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식 평론가가 추천하는 이 작품]
수많은 관객에게 사랑 받는 대작부터 소수의 관객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숨은 명작까지 영화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텐아시아가 '영화탐구'를 통해 영화평론가의 날카롭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우리 삶을 관통하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박태식 평론가가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보테로'입니다.
'보테로'는 '색채의 마술사',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는 예술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인생과 작품을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보테로는 다채로운 색감과 관능적이고 풍만한 인물, 여기에 유머와 해학을 담은 작품을 선보이는 예술가입니다. 영화는 콜롬비아의 가난한 시골 소년이었던 그가 독자적인 '보테로 스타일을 창조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예술가가 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합니다.
영화 '보테로' 포스터 / 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보테로' 포스터 / 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1985년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인에서 폭탄테러 사건이 있었다. 유명한 마약왕 에스코바르가 이끌던 메데인 카르텔에서 저지른 짓이었다. 그 사건으로 중앙 광장에서 파티를 즐기던 무고한 사람들 26명이 사망했고 수많은 부상자들이 나왔다. 조직이 폭탄을 설치한 곳은 메데인 출신의 예술가 보테로가 시에 기증한 청동 비둘기 조각상이었고 조각상은 폭발로 인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그 일 이후 메데인을 방문한 보테로는 똑같은 비둘기 상을 기증해 바로 옆에 세우게 했다. 그렇게 '전쟁의 새와 평화의 새'가 탄생했다. 보테로의 딸 리나는 아버지를 대신해 말을 전한다. "예술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지만 영원히 기억되도록 증언을 남길 수는 있다." 예술의 역할을 단적으로 정리한 셈이다.

지난달 개봉한 '보테로'(감독 돈 밀라)는 세계적 화가이자 조각가인 페르난도 보테로(1932~)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다룬 기록물이다. 영화는 보테로가 식당에서 리나, 페르난도, 후안 등 세 자녀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세 자녀는 내레이터 역할도 하는데 아버지의 예술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세 사람 역시 대단한 실력을 가진 미술평론가들로 여겨졌다.
영화 '보테로' 스틸 / 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보테로' 스틸 / 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보테로는 이라크의 정치범 수용소인 아부 그라이브에서 미군이 그들을 어떻게 학대하고 고문했는지를 보도한 르포를 읽었다. 그러고 나서 2004~2005년에 '아부 그라이브 연작'을 내놓았는데 이는 그가 평생 그려왔던 인물상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었다. 보테로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인간은 대체로 행복한 뚱보이기 때문이다. 감시견에 위협받고, 발가벗긴 채 철창에 걸려있고, 시체처럼 쌓여있는 정치범들의 그림. 톰킨스는 "아름다운 그림체들이 섬뜩한 주제와 만난 것이 충격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고 했다. 이 그림들과 드로잉들은 모두 버클리 대학에 기증돼 수 천 명이 관람했는데 이 역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는 행보이다.

보테로는 자신의 스타일이 작은 사건으로 비롯됐다는 말을 이렇게 전한다. 만돌린의 소리구멍을 아주 조그맣게 그렸더니 "오히려 대상 안에 숨어있던 폭발적인 힘이 느껴지는 중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대상의 볼륨감과 입체감, 관능과 풍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깨닫는 순간이었고, 그 때부터 평생 변치 않는 그의 스타일이 시작됐다. 그렇게 불현 듯 머리에 떠올라 즉시 그린 그림이 '의자와 기타가 있는 정물'(1957)이다. 손녀 안드레아는 할아버지가 늘 "겸손해라. 그리고 현재를 즐겨라. 작은 일에도 인생이 바뀔 수 있으니까"라 했다는데 선후를 따져보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렇게 선후를 섬세하게 연결한 감독의 눈썰미가 뛰어나다.

보테로는 늘 새로운 시도를 한 예술가로 유명하다. 수채, 유채, 목탄, 파스텔 등 재료를 가리지 않았고, 투우, 서커스, 독재정권, 거기에 빌붙은 종교권력, 고문과 학살 등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으며, 사람을 배치한 한 정물화를 그렸다. 그에게 처음 충격을 안겨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외에도 반 야이크, 카라바조, 앵그르, 다 빈치, 루벤스, 벨라스케스의 회화를 자신의 스타일로 재해석했으며, 90년대 들어서는 마침내 조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을 빌리자면 "지금 아니면 못하기" 때문이었다.
영화 '보테로' 스틸 / 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보테로' 스틸 / 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고향인 콜롬비아를 떠나 멕시코, 스페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보테로는 창작활동을 했다. 그리고 수많은 나라에 초청받아 전시회를 열었으며 그의 거대한 조각상들이 도시 중심가에 열을 지어 전시된 것은 이전에 볼 수 없던 전시형태였다. 특히 보테로처럼 살아 있는 예술가에게 파리의 상젤리제 거리를 통째로 내 준 것은 역사상 처음이었다. 길을 지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팝아트와 추상주의가 휩쓸던 뉴욕에서 파리로 옮겨가며 보테로가 한 말도 기억할 만하다. "나는 여기서 마치 우유 속에 든 파리와 같아."

보테로의 작품은 흔히 피카소와 비교되는데 실제로 엑상 프로방스에서 '보테로, 피카소와 대화'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었다. 과문한 탓에 나는 영화에서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1951)을 처음 보았다. 콜롬비아 마약조직의 테러사건을 그린 보테로의 '학살'(2004)과 잘 통하는 작품이다.

보테로를 비판하는 이들은 "그의 작품은 형편없다. 그저 뚱뚱한 캐릭터에 불과하다"(R. 크라우스)며 깎아내린다. 그러나 보테로가 생존하는 예술가 중 가장 주목받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아마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테로 작품의 뛰어난 상징성이 원시부족들이 제작한 풍산신(豐産神) 조형물들을 연상시킨다는 점도 그에 더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보테로' 스틸 / 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영화 '보테로' 스틸 / 사진제공=마노엔터테인먼트
생활이 넉넉해지자 보테로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사들였다. 실로 엄청난 숫자로, 평생 모은 수집품 전부를 콜롬비아 정부에 기증했고 정부는 '보테로 미술관'을 만들어 전시했다. 그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베이컨, 발튀스, 피카소, 샤갈, 미로, 로트렉, 보나르, 부탱, 피사로, 르노아르 등등 100편이 넘는다. 심지어 기증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모네의 작품을 일부러 구입해서 미술관에 보냈을 정도다. 한 번에 이 모든 그림들을 볼 수 있다니! 콜롬비아에 가면 반드시 보테로 미술관부터 방문해야겠다.

영화 '보테로'에는 주변 인물들 외에 보테로 자신의 설명도 많이 포함돼 있다. 감독에게는 살아생전에 그를 완벽하게 평가하고픈 욕심이 있었을 테고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과 경향과 해설과 증언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원 없이 보았고 한편의 인물 다큐멘터리로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보테로'가 수 십 년 뒤에도 걸작 다큐멘터리로 평가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빈틈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일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테로의 풍자와 유머가 맘에 들었다. '잠자는 주교, 졸고 있는 추기경'(1957), '죽은 주교들'(1965) 등이 눈에 띄었다. 콜롬비아 독재정부에 빌붙어 민중을 깔아뭉갠 채 권력을 누렸던 교회의 실상을, 풍만한 주교들이 마치 아기처럼 잠자듯 표현한 데서 해방감을 느꼈다. 보테로는 결코 현실을 외면하는 눈 뜬 장님이 아니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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