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데칼코마니]
누구나 상반된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같은 듯 다른 '극과 극' 매력 대결.
배우 이정재, 정우성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재, 정우성 /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 1990년대 청춘스타 이정재X정우성

"도시에 저런 태양은 없지."


절망에 빠진 이정재와 정우성이 도시에서 도망쳐 바닷가 모래사장에 앉아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호기롭게 바라본다. 영화 '태양은 없다'의 한 장면이다. 남들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복싱에 온 열정을 쏟아붓는 도철(정우성 분)과 압구정 30억짜리 건물 주인을 꿈꾸며 온갖 일을 벌이는 홍기(이정재 분). 극복할 수 없는 높은 현실에 가로막힌 청춘들의 방황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영화 '태양은 없다'의 이정재, 정우성 / 사진제공=우노필름
영화 '태양은 없다'의 이정재, 정우성 / 사진제공=우노필름
이정재와 정우성은 1990년대 청춘의 아이콘이었다. 조각 같은 얼굴, 큰 키, 탄탄한 몸매에 슬픔을 간직한 반항아 같은 이미지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흔들 수밖에 없는 조건. 외모로만 보면 둘은 부잣집 도련님이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정우성은 심지어 판자촌 출신.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이정재와 정우성에게 가난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가져다줬다. 직업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던 이정재는 학원비를 벌기 위해 압구정 카페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연예계 관계자의 눈에 들어 모델로 발탁된다. 정우성 역시 압구정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스카우트 돼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이정재와 정우성은 각각 1993년, 1994년 데뷔한다. 나이도 1972년생, 1973년생으로 한 살 차이. 비슷한 점이 많은 둘은 지기지우가 될 운명이던 모양이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이정재(위)와 영화 '비트'의 정우성 / 사진제공=SBS 영상 캡처, 우노필름
드라마 '모래시계'의 이정재(위)와 영화 '비트'의 정우성 / 사진제공=SBS 영상 캡처, 우노필름
이정재는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로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당시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듣던 터라 과묵한 보디가드로 설정됐는데, 오히려 이게 먹혔다. 돈과 명예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묵묵히 지키는 우직함!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친 포인트였다.

정우성은 1997년 개봉한 영화 '비트'로 남자들의 우상, 여자들의 로망으로 떠올랐다. 오토바이를 탄 채 눈을 감고 두 팔을 펼치는 모습은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세기말의 명장면. 강렬하면서도 애잔한 눈빛, 고독하면서도 서글픈 색채를 지닌 정우성만의 아우라는 독보적이다.

그런 두 명의 스타가 1999년 개봉작 '태양은 없다'로 만났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태양은 없다'는 허세스러움이 가득하지만 조폭, 주먹질, 담배 등 90년대 특유의 반항적 감성에 화려하고 세련된 미장센, 눈호강을 선사하는 두 미남 배우가 담아내는 젊은이들의 불안과 욕망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요소를 전부 갖고 있었다. 둘의 연기력이 다소 미흡하긴 했으나 지금에 와서 보면 풋풋한 청춘스타의 분투가 귀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가지 재밌고도 씁쓸한 점은 극 중 홍기가 그토록 건물주를 꿈꾸는 걸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 팍팍하고 막막한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는 두 청년의 모습이 관객들의 가슴에 송곳 같은 치명상을 남겼다. 이정재는 '태양은 없다'로 그 해 열린 청룡영화상의 남우주연상을 가져간다.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 사진=텐아시아DB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 / 사진=텐아시아DB
◆ 베테랑 배우, 그리고 신인 감독 이정재X정우성

"우정의 비결은 존중이죠."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이정재는 정우성과 돈독한 사이를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두 미남 배우는 어느덧 잘생긴 외모를 뛰어넘는 연기력과 중후한 분위기로 충무로 대들보로 자리 잡았다. 그런 두 배우가 영화 '헌트'로 같은 작품 속에서 호흡을 맞추게 됐다. '태양은 없다' 이후로 21년 만에 알린 소식이다.

'헌트'는 안기부 에이스 요원들이 남파 간첩 총책임자를 쫓으며 거대한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이정재와 정우성은 극 중 라이벌이자 동료 요원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이번 영화는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 첫 연출 작품인 만큼 그는 4년 동안 시나리오를 집필하며 심혈을 기울였다.

정우성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고요의 바다'를 통해 제작자로 나섰다. '고요의 바다'는 황폐해진 미래의 지구에서 대원들이 달에 버려진 연구기지에 의문의 샘플을 회수하러 가는 이야기. 정우성은 영화 '보호자'로 장편영화 감독 데뷔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은 자신에게 남은 단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다. 앞서 정우성은 단편영화 제작, 연출 등을 한 경험도 있다.
영화 '관상'의 이정재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정우성 / 사진=각 배급사
영화 '관상'의 이정재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정우성 / 사진=각 배급사
2000년대 초반 이정재와 정우성의 흥행 성적은 다소 부진했지만 두 사람은 기존 이미지에 국한되지 않는 다채로운 캐릭터로 연기 폭을 확장해나간다. 2010년 '하녀'로 변곡점을 맞은 이정재는 이후 '도둑들'(2012), '신세계'(2013) 등 필모그래피에 굵직한 한 줄을 남긴 작품들을 만난다. '관상'(2013)으로는 압도적인 등장신을 탄생시키며 역대 가장 섹시한 수양대군으로 남았다. '신과 함께' 시리즈(2017, 2018)에서는 염라대왕으로 출연해 '염라언니'라는 재밌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정우성은 2008년 개봉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훌륭한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염세적인 현상금 사냥꾼의 치명적 매력은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달리는 말 위에서 양손을 놓은 채 총을 돌려서 장전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 CG나 대역이 아니라 정우성이 실제로 연기했다. 이후 흥행의 기복을 겪다가 따뜻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준 '증인'(2019)으로 제40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절친 이정재가 '태양은 없다'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지 20년 만에 자신도 같은 상을 타게 됐다. 평면적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품은 것이 지금의 두 명배우를 만들어낸 기반이었다.

두 사람은 2016년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를 함께 설립하기도 했다. 둘의 오랜 우정 비결은 존중과 인정. 정우성은 최근 인터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조용히 서로의 작업에 대해 충분히 존중하고 응원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정재 역시 "'내 편'이라는 동질감이 강하게 느껴지니 든든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둘은 아직까지도 서로 존댓말을 쓴다고 한다.

이정재는 진작 정우성에게 '헌트' 출연 제의를 했지만, 4년간 퇴짜 맞았다고 한다. 이정재의 삼고초려 끝에 성사된 둘의 만남. 각자가 하나의 브랜드로 거듭났다 해도 과언이 아닐 둘이 의기투합한다. 영혼의 단짝이 발휘할 시너지에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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