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사진=텐아시아DB
봉준호 감독. /사진=텐아시아DB
영화인 1325명이 영화산업 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이른바 ‘포스트 봉준호법’에 서명했다.

이 법의 법제화를 추진하는 영화산업 구조개선 법제화 준비모임은 26일 보도자료를 통해 ▲ 대기업의 영화 배급업과 상영업 겸업 제한 ▲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금지 ▲ 독립·예술영화 및 전용관 지원 제도화 등 세 가지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번 서명운동에는 배우 안성기, 문소리, 정우성, 설경구, 송윤아, 조진웅, 강동원, 변요한 등도 참여했다.

영화산업 구조개선 법제화 준비모임은 “CJ·롯데·메가박스의 멀티플렉스 3사는 현재 한국 극장 입장료 매출의 97%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3사는 배급업을 겸하면서 한국영화 배급시장까지 장악하고 있다”며 “봉준호 감독이 성장해가던 2000년대 초중반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심각한 문제는 극장과 결합된 배급사들이 부당하게 극장을 살찌우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2019년에는 900만 명 이상 관객을 모은 한국영화가 3편이나 나오면서, 한국영화 극장매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면서 “그런데 극장매출로만 계산한 상업영화 45편의 평균 수익률은 –21.3%이다. 이는 배급사의 무능한 투자와 극장의 폭주가 빚어낸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한 인기 영화의 경우, 무려 81%의 상영점유율을 기록했다. 같은 날 상영작은 총 106편이었는데 한 영화가 상영횟수의 81%를 독점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우니라나 극장매출 상위 10편의 합계가 전체 극장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6%인데, 미국은 33%, 일본은 36%에 불과하다”며 “우리나라의 스크린 독과점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스크린 상한제를 통해 대형영화는 영화의 질에 비례하여 관객들의 선택을 받도록 하고, 소형영화에게는 기회의 평등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면 관객의 영화향유권은 더욱 확장되게 된다”며 “스크린 독과점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지원도 당부했다. 이들은 “독립·예술영화는 영화의 모태”라며 “독립·예술영화의 제작·상영이 활성화돼 건강한 영화산업생태계를 만듦과 동시에 관객의 영화향유권도 확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개봉된 독립·예술영화는 전체 개봉 편수의 9.5%에 달하지만 관객점유율은 0.5%에 불과합니다. 오늘과 같은 환경이었다면 2000년에 개봉했던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제작의 기회도 얻지 못했을 것이고, 따라서 지금의 봉준호는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또한 “영화법 개정을 통해 멀티 플렉스에 독립·예술영화상영관을 지정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인정한 독립·예술영화를 연간 영화 상영일수의 60/100 이상 상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모임은 영화인들의 바람을 각 당에 전달해 당론 채택을 요청하고, 대표들과의 면담을 진행하는 등 21대 국회에서 이 같은 세 가지 요구사항이 법제화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번 서명은 지난 17일부터 25일까지 영화인들에게 받았다. 이들은 “이외에도 많은 영화인으로부터 ‘지금 당장 대기업과 계약관계가 있어 서명하기 난처하다. 양해 바란다. 그러나 마음을 같이 한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당초 모임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여파로 이를 취소하고 보도자료 배포로 대체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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