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 다시 살펴보면 좋을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영화 ‘결혼 이야기’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 포스터. /사진제공=넷플릭스


인류 역사를 굳건하게 지탱해온 제도들 중 하나로 결혼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어떤 학문적인 근거에서 나온 추론이 아니라 인간은 흔히 남녀가 결혼해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는 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구 어디인가에는 아직 일부다처가 허용된다지만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인 상식이 된지 오래다. 이렇게 당연한 말로 평을 시작하는 이유는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감독 노아 바움백)가 결혼 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미스트리스 아메리카’(2015)나 ‘위 아 영’(2013) 등 주변의 자잘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바 있는 바움백 감독이 이번에는 이혼으로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린 영화를 선보였다. 제목은 아이러니 하게 ‘결혼 이야기’로 붙였는데 결혼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기보다 오히려 영화를 통해 관객 자신의 결혼에 대해 심사숙고해보라는 의미가 담겼을 성싶다. 감독은 자료를 얻기 위해 “내 주변에 이혼한 친구들이 많이 늘었다. 그래서 실제로 이혼한 부부와 그들을 지켜보는 친지들, 심리상담가, 변호사, 판사들과 인터뷰를 가능한 한 많이 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간접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사진제공=넷플릭스
연극연출가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배우 니콜(스칼렛 요한슨) 부부는 8살 아들 헨리와 뉴욕에 살고 있다. 연극무대라는 게 굶기 딱 알맞은 곳인지라 부부 역시 어렵사리 인생을 지탱해 나가던 중에 니콜에게 TV연속극에 출연해 달라는 솔깃한 제안이 들어온다. 그런데 LA로 이주하는 조건이고 그에 따라 부부가 떨어져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안 그래도 서로에게 약간씩 짜증이 나는 판이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각자의 입장을 밝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혼으로 가기에 적당한 환경이 형성된 셈이다.

감독의 수소문(?) 덕분인지 어떻게 이혼 절차가 진행되는지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선 부부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면 조정기간을 가진다. 이 때 조정관으로 활약하는 사람은 심리전문가다. 여기서 해결나지 않으면 부부 중 한 쪽에서 이혼 전문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어서 다른 한 쪽도 변호사를 선임한다. 부부의 법률지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범위로 이혼 절차가 넘어가기 때문이다. 대체로 재산권과 양육권이 법정투쟁의 주요 사안이고 결국 판사의 결정으로 마무리된다. 여기서 가족의 현 상태를 감정하는 전문가까지 등장한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비슷한 설정의 영화로 ‘크레이머 vs 크레이머’(1979)가 있지만 ‘결혼 이야기’의 분위기는 훨씬 냉정하다. 말하자면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혼 절차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에는 세 명의 변호사가 나온다. 노라(로라 던)와 제이(레이 리오타)와 버트(알란 알다)이다. 버트는 의뢰인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제이는 합리적인 해결을 원하고 노라는 의뢰인의 승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만일 찰리 쪽에서 노라를 고용했더라면 영화의 결말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이들 변호사들은 이미 수차례 맞붙은 바 있어, 만나면 서로의 안부를 묻는 등 예의를 갖추지만 일단 법정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인다. 이 대목에서 노라와 제이의 대사는 환상적이었고, 이는 또한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도대체 변호사들의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기는 하는 걸까? 멋진 연기 덕에 로라 던이 2020년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획득했다. 니콜을 처음 만난 날, 노라가 옆으로 찰싹 붙어 앉는 장면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사진제공=넷플릭스
첫눈에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른 찰리와 니콜은 딱히 사랑이 식었다고 보긴 어려운 경우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서로에게 어느 정도 지친 상태지만 곧바로 이혼으로 연결되기는 아직 여지가 있어보였다. 그런데 니콜이 노라와 만나자 상황이 급변한다. 변호사를 고용하는 순간, 주사위가 던져지고 루비콘 강을 건너는 셈이다. 노라가 법정에서 찰리를 파렴치한 남편이자 불량 아빠로 낙인찍을 때 니콜의 맘이 잠시 아팠지만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만다. 그러니 이혼전문 변호사를 고용하기 전에 일단 심사숙고할 일이다.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좋았지만 어쩔 수 없는 끌려가는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정말 뛰어났다. 사랑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르는 노래가 심금을 울리는 이유다. 같은 남자라서 그런가? 마지막으로 치른 치열하고 살벌한 싸움 끝에 마침내 찰리는 소리 지른다. “나는 당신이 차에 치어 죽기를 바래!” 끝장 부부싸움은 그렇게 서슬이 시퍼랬으나 다른 한 편 가슴을 울리는 구석이 있었다.

“나를 잠시 추켜세우고, 곧 지옥을 경험하게 만드는 사람, 내가 살아있도록 만드는 사람. (Somebody pull me up short, and put me through hell, and give me support for being alive.)” 뮤지컬 Company에 나오는 Being alive의 가사다. 아담 드라이버가 그렇게 노래를 잘 하는지 미처 몰랐다. 영화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빤한 내용이지만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와 탄탄한 각본 덕분이다. 한 때 그처럼 사랑한 사람이었는데.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사진제공=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 스틸. /사진제공=넷플릭스
다시 결혼 제도로 시선을 돌려보겠다. 감독은 탄탄한 이야기와 기막힌 대사들로 영화를 채웠다. 아마 자신이 수집한 이혼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자극적인 부분만 취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그의 성공작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장차 인류는 150세까지 너끈히 살고, 30세에 결혼 한 후 무려 120년 결혼생활을 내다봤다. 하라리의 예측에는 그 지경에 이르면 결혼 제도 자체를 재고해야하지 않는가라는 행간의 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찰리가 아들 헨리에게 니콜이 쓴 편지를 읽어준다. 조정 관 앞에서 미처 듣지 못했던 편지다. 감동적인 장면이긴 하나 되돌릴 수 없는 과거는 몹시 야속해 보인다. 시간은 왜 이리 잔인할까?

비록 수상을 못했지만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노아 바움벡) 후보에 올랐다.

박태식(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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