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기생충’ 미국 포스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영화 ‘기생충’ 미국 포스터.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미국 할리우드에서 기적같은 일이 펼쳐졌다.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4관왕을 차지했다. 한국영화 101년 역사는 물론,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 ‘기생충’이 세계 영화사에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

10일 오전(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렸다. 이날 ‘기생충’은 ‘아카데미’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작품상의 주인공이 됐다.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 ‘아이리시맨’ ‘조조래빗’ ‘포드V페라리”조커’ ‘작은아씨들’ ‘결혼이야기’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오스카를 품에 안았다.

‘기생충’이 작품상 주인공으로 호명 된 순간, 현장에 자리한 모든 영화인들이 기립박수를 보냈다. 제작자인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와 봉준호 감독을 필두로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박명훈 등 주역들은 무대에 올라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곽신애 대표는 “정말 기쁘다. 지금 이 순간, 의미 있는 역사가 쓰여지는 기분이다. 이러한 결정을 해준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상식에서 ‘기생충’은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장편영화상(구 외국어영화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이 가장 유력한 상황에서 감독상, 작품상 등에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결과를 예측하긴 힘들었다.

‘기생충’은 ‘아카데미’에서 비(非)영어 영화로 작품상 후보에 오른 역대 11번째 영화다. 지금까지 작품상과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동시에 이름을 올린 작품은 ‘기생충’을 포함해 모두 6편에 불과하다. 지금껏 비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적은 없었다. 작품상과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함께 오른 영화들은 예외없이 국제장편영화상 만을 받았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현지 유력 매체들은 시상식 전날까지 ‘기생충’과 ‘1917’이 감독상, 작품상 등에서 끝까지 경쟁할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도 아카데미 레이스의 분위기와 흐름상 ‘기생충’이 받을 것이라는 것과, 기생충’이 받길 원한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미국 CNN도 9일(한국시간 10일)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외국어로 제작된 영화가 한번도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적이 없었다. 이 기록을 ‘기생충’이 깰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기생충’ / 사진=박소담 인스타그램
‘기생충’ / 사진=박소담 인스타그램
시상식에서도 그 분위기가 이어졌다. ‘기생충’은 각본상부터 국제장편영화상, 감독상까지 수상하며 작품상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였다. 특히 감독상 수상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봉 감독은 “국제장편영화상을 받고 오늘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고 기쁘다”며고 말했다. 봉 감독은 대만 이안 감독에 이어 아시아 감독으로는 두 번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품에 안았다.

이어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경쟁작 ‘1917’이 촬영상, 음향믹싱상, 시각효과상 등 기술 부문의 상만을 차지하면서 작품상은 ‘기생충’ 쪽에 더 우세한 흐름으로 이어졌다. ‘작품상’ 발표 전까지 ‘1917’과 ‘기생충’은 각각 3개 부분에서 수상하며 3:3으로 팽팽한 경쟁을 펼쳤다.

결국 아카데미는 ‘기생충’의 손을 들어줬다. ‘기생충’이 작품상을 수상하며 길고 길었던 아카데미 레이스에 마침표를 찍었다. 온 몬에 전율이 느껴질만큼 대단하고 역사적인 일이다.영어권을 대표하는 시상식인 ‘아카데미’에서 한국영화인 ‘기생충’이 감독상과 작품상 트로피 모두를 거머쥔 것은 물론, 4관왕을 차지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든 사건이다.

최근 ‘아카데미’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세계적인 영화 시상식으로 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백인 중심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시선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처럼 ‘아카데미’가 변화를 갈망하던 시의적절한 때에 ‘기생충’이라는 훌륭한 작품이 나타난 것이다.

이현경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해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 등) 3개 주요상을 휩쓸었다는 건 아카데미의 변화와 쇄신을 의미하는 새 역사의 시작이다”라며 “양강 구도였던 ‘1917’이 20세기 인류가 겪은 전대미문의 대재앙에 대한 사후적 성찰의 영화라면 ‘기생충’은 21세기 현재, 세계와 인류가 당면한 계층 갈등과 빈부문제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즉 현재진행형의 주제의식과 참신한 영화적 형식에 손을 들어준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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