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BIFF)는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들의 성지 순례이기도 하지만 부산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겸사겸사 즐기기 위한 ‘서울 촌놈’들의 여행이기도 하다. 영화 스케줄표만큼 부산의 맛집과 관광지 체크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여기, 처음으로 BIFF 및 부산 방문을 앞둔 남녀 커플이 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지만 아직 준비는 부족한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시행착오 없이 BIFF를 십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아, 커플이 아니라고? 걱정 말라. 솔로들을 위한 매뉴얼은 이틀 뒤 공개된다.

BIFF 2011│부산국제영화제 즐기기 - 커플편
BIFF 2011│부산국제영화제 즐기기 - 커플편
이번에 부산 가서 뭐 하면 좋을지 계획은 잘 짜고 있어?
뭐 6일부터 영화제 시작이니까 5일에 내려가서 주말까지 놀면 되는 거 아니야?

나 방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유, 날짜만 정해지면 그 기간 동안 가서 잘 놀고 잘 먹으면 그게 계획이지. 부산 가면 먹을 게 얼마나 많은데. 속이 허할 땐 돼지국밥 먹고, 밥 말고 다른 거 먹고 싶을 땐 밀면 먹고, 밤에는 회나 장어구이에 소주 한 잔 하고. 응? 그리고 바닷가라고 회만 먹으란 법 있나. 사람 사는 동네면 또 고기를 팔잖아. 삼겹살이나 이런 것도 좋지. 어딜 어떻게 가냐고? 그런 건 그냥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부산 맛집’ 검색 돌리면 그냥 다다다다 나오는 거야. 영화가 있고, 시간이 있고, 먹을 게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러니까 우리 만난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같이 여행 겸 영화제 관람 하러 가는데 달랑 표만 끊고 아무 준비 없이 내려가자고.
아니 지금 내가 말한 게 준비…

야! 준비라는 건 밀면 하나를 먹어도 부산에 유명한 밀면집은 춘**동 밀면, 가* 밀면, 개* 밀면이 있는데 세 집 스타일이 어떻게 다르고 내 입맛은 어디에 더 맞을 것 같으니 그곳으로 가면 좋겠다, 라고 제시하는 게 준비인 거지.
어… 갑자기 날이 추워져서 영화제 기간에는 밀면보다는 따뜻한 돼지국밥이 좋지 않을까?

그럼 돼지국밥은 어느 집이 좋을까.
그러니까 내려가면서 검색을…은 훼이크고, 자 지금 그럼 찾아볼까? 부산 맛집, 돼지국밥, 이렇게 검색하면 봐봐, 이렇게 쌍*이 돼지국밥, 마*산식당 이름이랑 장소가 뜨잖아. 어디 보자… 쌍*이 돼지국밥은 깔끔한 맛이 좋고…

그건 그냥 정보 수집이고. 그 다음부턴 동선을 정해야 그게 계획이고, 진정한 준비인 거지.
아니 뭐 그 날 그 날 입맛 당기는 거 먹으러 가면 되지, 뭘 또 동선씩이나.

꼭 이런 애들이 지하철 탈 때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몇 번 출입문으로 나와야 2호선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는 최단거리라고 여자들한테 엄청 아는 척 한다니까. 지금 우리가 가는 게 어디야. 부산국제영화제지? 영화를 봐야 한다고. 어떤 영화가 있는지, 그 영화를 언제 볼 건지, 그 영화가 개봉하는 상영관이랑 가까운 음식점은 어딘지, 최소 이 정도 동선은 정해야 시간 안 버리고 놀 수 있을 것 아냐.
그… 그럼 어떤 영화를 보고 싶은데.

완전 빨리 물어본다. 영화제 끝나면 물어볼 줄 알았는데. 우선 당연히 소지섭이 (웃통을 벗고) 나오는 개막작 을 봐야지. 그런데 이게 센텀시티 쪽에 있는 영화의 전당에서 한단 말이지. 자, 그럼 여기서 네가 해야 할 일은 뭐겠어?
예매?

그건 기본 옵션이고! 영화가 오후 8시니까 그 전에 밥을 먹을 만한 곳과 영화 보고 나서 어디서 커피든 술이든 할 만한 곳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 우선 커피야 센텀시티의 백화점 내부에 체인점들이 있으니까 그렇다 치고 밥은 어떡할래?
그러면 센텀시티, 돼지국밥으로 검색을…

아우! 부산에서 며칠 동안 그것만 먹을 거야? 첫날 첫 영화 보러 가기 전인데다 저녁이니까 너무 몸이 무겁지 않게 근처 비스트로 타입 식당에서 깔끔하게 커틀렛 같은 거 먹고 가면 좋잖아. 국밥은 그 다음날 점심에 배를 든든히 할 때 먹으면 좋고.
어, 정말 센텀시티 쪽에 비스트로 맛집이 있네. 여기 갈까?
BIFF 2011│부산국제영화제 즐기기 - 커플편
BIFF 2011│부산국제영화제 즐기기 - 커플편
오늘 정말 눈치가 광속으로 빨라서 아예 과거로 달려가는구나, 너. 그러니까 이런 걸 내가 일일이 지시를 해야겠냐고. 이 정도는 기본으로 좀 알아서, 응?
알았어, 알았어. 그럼 일단 둘이 볼만한 영화를 정한 다음에 영화를 보러 돌아다니는 시간이랑 동선을 맞추면 되는 거잖아, 그치?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다. 자, 그럼 둘이서 볼만한 영화가… 미드나잇 패션 섹션의 이란 영화가 그렇게 피가 터지고 살이 터지는 게 액션이 제대로 화끈하다던데.

너 부산에서 서울로 다시 올라올 때 되게 편하겠다?
왜?

혼자 올라와서.
또 내 잘못이야?

미드나잇 패션 좋지. 좋은데 그렇게 피가 난무해도 괜찮은 영화는 안 돼. 그래도 되는 건 원빈이 나오는 하나야. 여전히 애매하지? 자, 내가 가르쳐 준다. 미드나잇 패션이 있어. 공포 영화 아니면 액션일 거란 말이지. 혼자 갈 땐 액션, 둘이 갈 땐 공포, 알았어? 그리고 공포 중에서도 피가 터지고 징그러워서 고개를 돌리게 되는 거 말고, 갑자기 뭐가 튀어나와서 옆에 있는 사람을 붙잡게 되는 거. 오케이?
그러면 영화 설명에 ‘잔인하면서도 충격적 결말’이라고 나온 이랑 ‘적당한 시기에 놀라움을 배가 시키는’ 랑 둘 중에서는…

당연히 인 거지.
그렇구나. 이게 9일 밤 11시 59분에 영화의 전당에서 하니까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아 이런 식으로 데이트 동선을 짜는 거였군! 아니면 일몰부터 밤 11시까지 조명을 켜주는 문탠로드라는 산책길이 유명하다는데 거길 좀 걷고 미드나잇 패션을 보러 가도 되겠다! 어때, 이런 동선?

장하다.
아, 미안해, 미안해. 이런 게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래. 대신 부산에서 정말 하고 싶은 거 얘기하면 그건 꼭 들어줄게.

음… 센텀시티 백화점이 워낙에 커서 명품 가방이 그렇게 많다던데…
쌤**이트?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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