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필름이 생산되지 않는다면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것.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이 말한 영화광의 3단계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라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추가할 수 있겠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비디오 가게에서 오랫동안 일할 정도로 열성적인 영화광으로 알려진 그는 다수의 기자들을 상대로 한 회견임에도 불구하고 새 영화를 놓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이하 <장고>) 촬영 당시 위험했던 현장을 묘사할 때는 연기에 가까운 재현으로 호응을 이끌어냈고, 19년 전 서울을 찾았을 때 감정 표현이 적극적인 한국 관객에게 받은 인상 또한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직접 질문을 받을 기자를 지목하고, 예정된 시간을 넘겨가며 더 얘기하길 원한 그의 얼굴은 영락없이 신나는 영화광의 그것이었다. 첫 영화 <저수지의 개들>로 세상을 놀라게 한지도 벌써 21년. 그동안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함께 작업하길 원하는 거장이 되었지만 여전히 영화 때문에 설레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장고>의 캐스팅부터 사건, 사고까지 낱낱이 밝혔다.

Q. 이번 영화는 유독 촬영 기간이 길었다. 실질적인 러닝타임 2시간 50분으로 길기도 하지만, 다른 영화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와 어떤 측면에 중점을 두고 연출 했는지 궁금하다.
쿠엔틴 타란티노: 예정돼 있던 스케줄을 넘겨서 촬영한 것이 사실이지만 <킬빌> 같은 경우는 거의 1년이 걸렸다. <장고>가 오래 걸린 이유는 대서사시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가 멋지게 완성되길 바랐고 급하게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3주 늘어난 추가 분량에 대해서는 내 돈을 직접 투자하기도 했고. 그래서 우리 영화가 더 잘됐으면 좋겠다. (웃음) 내 돈을 들여도 상관없었던 건 지난 영화들로 돈을 좀 벌기도 했고, 더 중요했던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영화를 완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Q. 크리스토퍼 왈츠는 말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실제로 손에서 피를 흘리며 연기하기도 했는데 배우들의 혼신의 열연을 끌어내는 특별한 디렉팅 비법이 있나.
쿠엔틴 타란티노: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여러 가지 작은 사고들이 많았다. 크리스토퍼 왈츠는 말 타는 훈련을 하는 첫 날 말이 그를 팽개치는 바람에 수술을 받기도 했고, 제이미 폭스는 촬영 전에 몸을 너무 열심히 만들다가 어깨 수술을 받았다. 돈 존슨은 말을 타다가 등을 다치기도 하고 이래저래 이상한 사고가 계속 있었다. 내가 배우들에게 이상한 걸 시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웃음) 어쩌다 보니 그런 일들이 있었다. 물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경우는 다르다. 여러 번 리허설을 했는데도 실제 카메라가 돌고 그가 식탁을 내리칠 때 식탁 표면의 조각이 깨지면서 손에서 피가 났다. 모두가 헉하고 깜짝 놀랐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 연기를 했다. 그래서 캐릭터의 강렬함이 그 장면에서 잘 나온 것 같다. 피가 나는데도 무시 하고 연기를 한 자체가 캔디라는 캐릭터 측면에서 보면 너무도 무서웠다. 그는 거의 최면에 걸린 것처럼 우리를 매료시켰다.

“<장고>는 복수영화가 아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필름이 생산되지 않는다면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
Q. <킬 빌>부터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까지 복수가 중요한 테마가 되어 왔다.
쿠엔틴 타란티노: 왜 사람들이 내 영화를 얘기할 때 복수 영화라고 하는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복수는 대부분의 장르 영화에서 필수 요소다. 서부 영화 5편 중 3편이 복수를 다루고 있고, 쿵푸 영화 5편 중 4편은 복수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나는 <킬 빌>을 복수 영화라고 보지 않는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영화도 복수가 일부분 있긴 하지만, 복수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장고> 속 장고도 캔디 랜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긴 하지만 장고의 여정은 복수의 여정이 아니라 로맨스의 여정이다. 아내를 사악한 왕국에서 구하는 것이 목적이지, 캔디 랜드의 나쁜 놈들을 혼내고 그곳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나는 이 영화의 테마가 복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Q. 미국의 노예제도를 비판하는 동시에 KKK단 같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조롱하기도 한다. 영화를 통해서 미국의 어두운 역사를 조명하고 싶었던 건가.
쿠엔틴 타란티노: 그렇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과거에 저지른 비극적인 범죄에 두 가지 방법으로 대처한다. 미국의 경우 노예제도에 대해 잘 대처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언론이나 문학에서 다른 국가들처럼 대처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노예제도는 미국의 원죄 중 하나로 남아있고 아직까지 씻지 못했다. 그것은 아직까지도 흑인과 백인이 사회적으로 서로 대하는 것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노예제도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원했고, 이 이야기를 통해서 노예제도에 대처하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미국의 잔혹사를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



Q.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잔혹한 나치스트였던 크리스토퍼 왈츠가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백인 캐릭터로 등장했는데, 재미있는 캐스팅이었다.
쿠엔틴 타란티노: 크리스토프 왈츠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유태인 사냥꾼이었다가 이번 영화에서는 장고를 도와주는 유일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백인이라는 점이 참 재미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유일하게 선한 인물이었던 이유는 백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닥터 킹을 북부 출신의 미국인으로 설정할 수 있었겠지만 그럴 경우 미국을 대신해 사죄하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미국의 입장에서 사죄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미국에 인종차별 철폐 움직임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영화에서 다루고 싶었던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인종 차별이 없는 나라에서 온 인물이 좋은 사람이라는 점, 그가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미국의 노예제도에 굉장히 당혹하게 된다는 것이 중요했다. 관객들 역시 닥터 킹의 시점에서 이러한 잔혹한 노예제도에 놀라게 될 것이다.



Q.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카메오로 출연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사실 처음에는 전혀 출연할 계획이 없었다. 너무도 쉽게 찍을 수 있어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둔 장면이 일정이 지연되면서 원래 캐스팅 되었던 배우가 못하게 됐다. 그래서 결국 내가 찍게 된 거다. 또한 폭파 신이라서 다소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배우에게 맡기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만약 샘 워싱턴 같은 배우와 그런 장면을 촬영 했다가 잘못되면 정말 큰일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가장 편안하게 촬영할 수 있는 내가 하게 되었다. (웃음)

“<공동경비구역 JSA>의 엔딩은 지난 20년간 가장 멋진 마지막 장면”
쿠엔틴 타란티노 “필름이 생산되지 않는다면 영화를 만들지 않을 것”
Q.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하면 떠오르는 것이 독창적인 액션 신이다. 매 작품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액션에 관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나.
쿠엔틴 타란티노: 그저 난 관객들이 새롭게 봐주길 바라고 만들 뿐이다. 영화에서 음악이나 액션이 나오는 장면이야말로 순수한 영화적 순간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다른 부분, 대사나 캐릭터에 관한 것은 무대나 글에서도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액션이나 음악, 특히 이 두 가지가 조화를 가장 잘 이루는 것은 가장 순수하게 영화적인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감독이 되고 싶은 거다. 관객들이 내 영화를 보면서 휩쓸려가기를 원한다. 숨을 멈췄다가 액션 신이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후 하고 숨 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웃음)

Q.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우마 서먼처럼 배우들에게서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 다른 면을 성공적으로 포착했는데 어떻게 그들에게서 다른 요소들을 발견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나.
쿠엔틴 타란티노: 캐릭터를 만들 때 3차원 입체 캐릭터가 되기를 바라면서 만들고 있다. 사실 앞서 말한 배우들의 스타로서의 흡입력과 인기를 물론 이용하고 싶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우마 서먼을 좋아하긴 하지만 사실 난 내 캐릭터를 더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에게 어떤 캐릭터를 맡겨야 그 옷을 딱 맞게 입고 연기를 잘 할 수 있을 지가 가장 중요하다. 종종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떤 배우와 일하고 싶냐는 것인데, 앞으로 가장 일해보고 싶은 배우는 조니 뎁이다. 그렇게 된다면 참 좋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조니 뎁을 위해 그에게 딱 맞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조니 뎁을 캐스팅하면 그것이 바로 마법 같은 순간이 되는 거다. 내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일하고 싶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나와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에게 꼭 맞는 캐릭터를 썼기에 마법 같은 순간이 나올 수 있었다. 캐릭터가 늘 먼저다. 조니 뎁과 일을 하고 싶은 이유가 조니 뎁이 단지 유명해서가 되면 안 된다. 캐릭터가 우선이고 올바른 캐릭터가 올바른 배우에게 주어졌을 때 마법 같은 순간이 나오는 거다. 사실 스타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독일 외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크리스토프 왈츠도 그에게 딱 맞는 역할을 맡겼기 때문에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Q. 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장일 당시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에게 심사위원 대상을 줬고, 박찬욱 감독은 최근 할리우드에서 <스토커>를 만들고 개봉을 앞두고 있다. 혹시 영화를 미리 보았나.
쿠엔틴 타란티노: <스토커>를 아직 보지 못했지만 굉장히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대단한 팬이고, <괴물>과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도 굉장히 좋아한다. 두 감독 다 재능이 넘친다. <라스트 스탠드>는 아직 보지 못했는데 김지운 감독도 좋아한다. 특히 그의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좋아한다. 이런 재능 있는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와서 어떻게 할리우드식의 영화를 만드는지 지켜보는 것은 굉장히 흥미롭다. 아시아, 특히 한국 영화가 요즘 가장 흥미로운 영화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상당히 재미있는 점은 아시아에서는 6-7년마다 한 번씩 한 국가가 선두에 나서서 새로운 영화의 장을 만드는데 지금은 한국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살인의 추억>과 <공동경비구역 JSA>는 지난 20년 간 본 영화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영화이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엔딩은 지난 20년간 가장 멋진 마지막 장면이었다.



Q.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3D 같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고전 장르 영화의 기법을 더 선호하는데.
쿠엔틴 타란티노: 솔직히 말해서 난 3D 영화가 지겨워졌다. 내게 3D와 2D 영화 중 고르라고 한다면 2D 영화를 고를 것이다. 3D로 본다고 해서 뭔가 추가되거나 특별한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감독들의 영화는 꼭 3D 영화로 봐야 한다. <삼총사>,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만든 폴 W.S. 앤더슨 감독 같은 경우는 최고의 3D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필름으로 찍는 게 좋다. 그러면 사람들은 만약 코닥이 필름을 제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하는 데, 적어도 10년 동안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발리우드에서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그래도 필름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으면 어쩔 거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나는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 이다.

사진제공. 소니픽쳐스코리아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